충무공 서사·인간 면모, 생생하게 다가온다

손영옥 2025. 12. 24.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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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순신’ 전
성웅 탄신 480주년·광복 80돌 기념
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전 개최
‘난중일기’ 포함 국보 6건 15점 전시
판옥선·거북선 도면, 총통 등 공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이 개막 19일 만에 관람객 5만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왜기공도’ 중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 묘사 장면.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찢어진 하늘을 꿰매고, 흐린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補天浴日)가 있는 분이셨다.”

이순신(1545∼1598)이 노량해전에서 마침내 전사한 후 연합작전을 수행했던 명나라 장수 진린이 내린 평가다. 이순신을 과감히 발탁하고 좌천시켰다가 다시 불러들였던 선조가 그에 대해 묻자, 시대가 낳은 위인의 공적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비유했던 것이다.

세계 해전사에서도 빛나는 위업을 남긴 이순신을 조명하는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순신의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전시다. 무엇보다 전쟁과 전투 관련 유물이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찾은 전시장에서는 남성 관람객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이순신 장군의 친필본 ‘난중일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에는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와 ‘서간첩’을 비롯해 그가 쓰던 ‘장검’ 등 국보 6건 15점이 나왔다. 노량해역에서 출수된 지자총통 파편 등 보물 39건 43점이 쏟아지는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최대 관심거리인 판옥선과 거북선의 도면뿐 아니라 당대 쓰이던 철제 총통과 탄환, 포탄, 활과 화살, 갑옷까지 조선시대 전투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임진왜란 전투에서 희생된 유골까지 전시돼 전장의 실상을 그대로 전한다. 조선 후기에 그린 ‘수군조련도병’에는 불을 뿜는 거북선이 등장하고, 조선 전기 수영과 병영이 표시된 ‘조선 방영지도’도 나와 전쟁사 마니아를 유혹한다.

그러나 서사가 없다면 전시의 재미는 덜하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조선시대 전투사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영웅 이순신의 삶을 승리와 시련, 극복과 성찰이라는 드라마 공식을 사용해 우리 앞에 생생하게 불러낸다.

전시 1부 ‘철저한 대비, 그리고 승리’는 이순신의 철저한 대비와 한산도대첩으로 이어지는 승리를 조명하고, 2부 ‘시련과 좌절의 바다를 넘어’에서는 좌천과 백의종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결기와 전략의 문장으로 유명한 명량대첩의 기적, 그리고 최후의 죽음을 맞이한 노량해전의 승리까지 절망과 재기의 서사를 다룬다.

3부 ‘바다의 끝에서 나를 돌아본다’는 인간 이순신의 내면으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하이라이트는 실물로 전시된 ‘난중일기’다. 예상 외로 관람객들이 좋아하는 코너라고 한다. “어머님께서 평안하시다고 했다. 그러나 아들 면은 많이 아프다고 했다. 가슴이 지독히 탔다.” 절절한 문장에서 영웅 이전에 아버지이자 아들 이순신의 평범한 일상을 볼 수 있다. ‘꽃비에 젖었다’ ‘석양을 타고 돌아왔다’ 등 난중일기 곳곳에서 만나는 시적 표현에서는 본격적으로 무예를 공부하기 전 문과 공부를 한 문인의 기질도 엿보인다.

이순신 종가 소장 ‘귀선도(거북선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밋밋해질 수 있는 전시는 일본 화가가 당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그린 ‘울산왜성전투도’와 ‘정왜기공도병’으로 시각적 화려함을 보완했다. 명나라가 일본군을 정벌한 공적을 기념하는 내용이 담긴 ‘정왜기공도병’은 전반부를 스웨덴 금융 가문 발렌베리가로부터 기증 받은 스톡홀름 동아시아박물관이, 후반부를 영국에서 이를 구입한 국립중앙박물관이 각각 소장해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한 자리에서 만났다.

명나라 장수로부터 선물 받은 꽃 모양 술잔.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순신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정당화를 위해 무인을 부각하며 영웅화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순신이 사후 내내 기려졌다는 걸 4부 ‘시대가 부른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선조는 이순신 사후 좌의정 벼슬을 내렸고, 영조는 영의정으로 추증했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는 박은식과 신채호 등 민족사학자들이 식민 지배를 종식할 민족의 영웅으로 이순신을 재조명했고, 소설로 각색되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위인이 됐다. 해방 이후에는 남북한이 함께 기리는 위인으로 자리잡아 화폐, 우표, 훈장에 얼굴이 새겨졌다. 3월 3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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