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건 아파트가 아니었다, '대홍수'가 던진 질문

안상우 2025. 12. 2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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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안상우 기자]

인류를 구할 것인가, 아이를 지킬 것인가
▲ 대홍수 공식티저예고편
ⓒ 넷플릭스
"엄마! 우리 집 진짜 수영장 됐어!"

아이는 사방 물 천지가 된 것이 마냥 신나지만, 엄마는 아파트 창문 밖으로 거대한 물결이 차오르는 모습에 기겁한다. 이렇게 영화 <대홍수>는 물에 잠기는 아파트라는 강렬한 비주얼로 시작한다. 발목을 적시던 물이 어느새 목까지 차오르고, 도시 전체를 삼킬 듯한 거대한 물결이 아파트를 향해 밀려오는 장면은 분명 한국 재난 영화에서 보기 드문 스펙터클이다.

대홍수가 덮친 지구의 마지막 날, 물이 차오르는 아파트에 갇힌 싱글맘 구안나(김다미)와 아들 신자인(권은성). 구출 요원 손희조(박해수)가 전하는 충격적인 진실. 현생 인류는 오늘 끝났고, 안나가 새 인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나는 평범한 엄마가 아니라 '이모션 엔진'을 개발하는 핵심 연구원이었고, 자인은 특별한 유전자를 가진 실험체였다. 인류를 구할 것인가, 아이를 지킬 것인가.

영화 제작 발표회에서 김병우 감독은 "물은 생명의 원천이자 우리 몸의 많은 부분을 이루는 것"이라며, 처음엔 재난으로 느껴질 물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다르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이 영화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던질 수 있었던 질문, 흐려지는 서사
▲ 대홍수 공식티저예고편
ⓒ 넷플릭스
김병우 감독은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방송 부스라는 작은 공간 안에 관객을 가두고 숨 막히는 긴박감을 선사한 바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의 극한 몰입감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대홍수> 역시 물에 잠긴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싱글맘 안나와 아들 자인이 탈출구를 찾아 위로 올라가고, 무너지는 구조물을 피하고, 한정된 공기와 싸우는, 재난 영화의 문법은 초반 30분 동안 제 역할을 한다. 물이라는 재난이 주는 공포, 아파트라는 폐쇄 공간의 긴장감. 80% 이상을 수중에서 촬영한 영상의 디테일은 인상적이다. 차오르는 물, 깨지는 유리창, 좁아지는 공간. 재난의 물리성을 체감하게 만드는 연출은 여전히 날카롭다. 안나가 아들을 등에 업고 침수된 계단을 뛰어오를 때, 관객은 그 절박함에 동참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연구소 인력 보안팀 요원 손희조가 재난 현장을 뚫고 안나를 찾아오면서 재난 스릴러는 어느새 SF로 변한다. 희조의 질문이 흥미롭다. "왜 굳이 사람 마음을?" 새 인류를 만든다면서 왜 결함투성이인 인간의 감정을 복제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의 냉소는 타당하다. 헬기가 도착하면 주민들은 서로 달려들고 싸우며, 부모 자식도 없이 제 살기에 바쁠 것이다. 사람 마음에는 이기심도 있고 폭력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 마음을 새 인류에게 물려주어야 하는가?

이건 영화가 던질 수 있었던 질문이다. 철학적이고 도발적이며, SF가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이다. 만약 영화가 이 질문을 진지하게 파고들었다면 어땠을까? 인간의 감정이 가진 양면성-사랑과 증오, 연대와 배신, 희생과 이기심-을 SF적 설정 안에서 구체적으로 탐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 인류는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가? 완벽하게 이타적인 존재가 가능한가? 아니면 결함이 있어야 인간다운가?

하지만 영화는 이 질문을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이모션 엔진'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안나만이 만들 수 있는지. 이 모든 SF의 기본 설정이 불명확하다. 영화는 이런 질문들을 던져놓고는 "당신이 필요합니다"라는 추상적인 대사만 반복한다. SF 세계관의 구체성이 없으니, 희조의 질문도 공허하게 들린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지구 멸망(재난)이라는 위기 앞에서 인류는 블랙홀과 5차원(SF)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 SF 설정을 대충 넘기지 않았다. 블랙홀의 중력, 시간 지연, 5차원 공간의 작동 원리를 영화 안에서 시각적으로, 논리적으로 구현했다. 관객은 왜 딸이 빠르게 늙어가는지, 왜 아버지가 책장 뒤에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지 이해한다. 그리고 그 SF 설정은 부녀 관계라는 감정선과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SF가 감정을 뒷받침하고, 감정이 SF를 의미 있게 만든다.

사랑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 대홍수 공식티저예고편
ⓒ 넷플릭스
"구안나(김다미) : 아이는 완성됐으니까 이제 엄마를 만들라는 거죠?"

안나는 실험체를 아이의 엄마로 설정하고 수많은 반복 끝에 다시 아이를 만나게 되는 타임 루프를 시도한다. 마침내 자인을 찾아내지만, 안나는 또다시 아이를 두고 가야 한다. 엄마가 또 버리고 가서 미안하다고, 또 까먹을 거 같다고 말하는 안나에게, 자인이 엄마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아니야. 버리고 간 거.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때 옛날에 엄마가 꼭 온다고 기다리라고 했잖아. 귓속말로."

콧등이 시큰할 만큼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시인 박찬세는 '생일'이라는 순간을 통해 모든 인간이 한 번은 엄마의 몸을 통과해 세상에 나온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시에서 가벼운 말다툼처럼 보이는 대화 속에는,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모성애와 혈연의 절대성이 담겨 있다. 이는 재난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선택과 감정이 결국 가장 근원적인 관계, 즉 모성으로 되돌아감을 떠올리게 한다.

생일

엄마는 가끔 나에게 말한다.
내가 니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엄마 속에 들어갔다 나왔어.
-시인 박찬세 (출처 : <아침시>, 오민석, 살림출판사 2016년)

김병우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사랑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는 그 질문을 진지하게 탐구하기보다, 익숙한 답으로 빠르게 수렴했다.

'던질 수 있었던 질문'에는 망설이고, 결국 실제로 답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엄마는 세상이 끝나는 순간에도 아이를 버리지 않을 것인가?"

희조가 제기한 "왜 굳이 사람 마음을?"이라는 질문은 영화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공중에 떠돈다. 대신 영화가 집중한 건 "엄마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감정적 확인뿐이다.

물론 지구보다 아이를 먼저 구하는 선택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굳이 이 모든 설정을 동원해서 결국 모성애라는 익숙한 감정으로만 마무리해야 했을까? 안나는 연구원이라는 설정을 가졌음에도 그 정체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엄마'로만 기능한다. 장면 하나하나는 인상적이지만, 그것들을 연결하는 서사의 끈은 느슨하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건 영화 <컨택트>의 원작이기도 한 테드 창의 SF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다. 외계와의 조우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도, 테드 창은 한 여성 언어학자의 선택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 선택은 모성과 연결되어 있지만, 결코 모성애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언어학자로서의 정체성, 인간으로서의 고뇌, 시간과 인과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함께 작동한다. 영화 <대홍수>가 놓친 건 바로 이 복합성이다.

또한 영화 <컨택트>에서도 외계인 도착(재난적 혼란)과 외계 언어 해독(SF)은 시간 인식이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수렴됐다. 주인공은 언어학자이자 엄마지만, 그녀의 선택은 단순히 '엄마는 아이를 사랑한다'로 끝나지 않았다. 언어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엄마로서의 감정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인격 안에서 복합적으로 작동했다.

물에 잠긴 건 아파트가 아니었다

영화 <대홍수>의 시각적 완성도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수중 촬영의 몰입도, 침수 장면의 사실감, 아파트라는 밀폐 공간이 주는 숨 막힘. 김병우 감독이 <더 테러 라이브>에서 보여준 공간 활용 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수준의 재난 비주얼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술적 도전은 인정받을 만하다.

하지만 희조가 던진 날카로운 질문 "왜 굳이 사람 마음을?"에 대해 영화는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 재난과 SF 두 장르를 결합하겠다는 야심이 오히려 서사를 분산시켰고, 던질 수 있었던 질문들은 뒤로 밀려났다. 허구의 설정을 다룰수록 세계관은 더 정교해야 한다. SF는 상상력이 아니라 논리로 설득하는 장르다. 기술과 인간, 생존과 윤리라는 묵직한 질문들을 품고 시작한 영화가, 결국 익숙한 감동으로만 마무리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차오르는 물처럼 선명했어야 할 영화의 핵심은, 끝내 수면 위로 온전히 떠오르지 못했다. 아니, 떠오르려다가 익숙한 감정의 해안으로 되돌아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결국 물에 잠긴 건 아파트가 아니라, 영화가 던질 수 있었던 더 큰 질문들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ezmind921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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