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으로 당일에 약속 취소하는 지인... 나를 지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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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 기자]
"당신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약속: 다른 사람과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미리 정하여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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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KE IT HAPPEN 약속: 다른 사람과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미리 정하여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
| ⓒ SuziKim on Unsplash |
20대의 약속
초·중·고라는 의무교육을 벗어나 대학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약속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기한 내 리포트 제출은 기본이었고, 팀 과제에서는 각자 맡은 역할과 자신의 몫을 정해진 기간 안에 반드시 수행해야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곧바로 팀원에게 전가됐다. 한 번은 시험 시간을 착각해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F를 받을 뻔한 적도 있었다. 약속이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결과를 좌우하는 기준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됐다.
졸업 후 직장생활의 약속은 돈과 신뢰로 연결됐다. 지키지 못한 약속에는 즉각적인 불이익이 따라왔다.
그러나 이런 공적인 약속과 달리, 친구들과의 약속은 쉽게 미뤄지거나 취소되곤 했다. 갑작스러운 마음의 변화나 귀찮음, 피곤함 같은 사소한 이유로 약속을 깨도 상대도, 나도 크게 상처받지 않았다. 돌아보면 20대는 공적인 약속의 무게를 처음 배운 시기였던 반면, 친구들과의 사적인 약속은 여전히 가볍게 여겼던 때였다.
30대의 약속
사회 초년생 시기를 지나 직장에서는 과장급으로 자리를 잡았고,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흔히 말하는 '진짜 어른'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20대와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워킹맘이었다. 어린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둔 채, 하루를 숨 가쁘게 보내야 했다. 시간은 분 단위로 쪼개 써야 했고, 작은 변수 하나가 하루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약속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었다. 이미 치밀하게 설계된 일정 속에 간신히 끼워 넣은, 계산된 스케줄 그 자체였다. 약속은 웬만한 일이 아니면 반드시 지켜야 했고, 상대 역시 그러길 바랐다. 약속이 변경되거나 취소되는 순간, 공들여 맞춰놓은 도미노가 무너지는 듯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계획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흔들림 없이 예정된 대로 흘러가야만 유지될 수 있었다.
40대의 약속
삶을 대하던 엄격한 기준이 서서히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약속을 대하는 방식 역시 달라졌다. 아이가 대여섯 살쯤 되자 아이를 매개로 한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겼고, 여기에 코로나 시기까지 몇 년간 겹쳤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병치레나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변수들로 인해, 약속은 더 이상 개인의 의지만으로 지킬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세상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요즘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 말랑해진 쪽을 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약속을 정하는 일에는 여전히 책임을 느낀다. 사람들을 모으고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일에 익숙하다. 날짜와 시간, 장소가 분명한 약속이라면 참석 여부를 확정한 사람은 당일 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약속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약속 당일의 갑작스러운 취소는 여전히 힘이 빠진다. 같은 인물에게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마음속에 경고등이 켜지고, 애써 돌려 말하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다. 그래서 요즘은 나를 지키기 위해 되도록 모임의 주체가 되지 않으려 한다.
요즘 약속이 인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더 이상 20대의 가벼움도, 30대의 엄격함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하다.
인연을 대하는 자세
그러던 나에게 인간관계의 위기 하나가 찾아왔다. 작년 겨울부터 이어진 관계의 균열이었다. 한때는 마음을 나눴다고 믿었던 인연이었기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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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처럼, 인연도 그렇게 흘러가게 두는 것일까? 바닷가에서 본 하늘 |
| ⓒ 김선아 |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흘러가는 관계가 결국 '시절인연'이 되는 것일까. 이 관계를 내가 앞서서 해결하려 들기보다, 시간에 맡겨 두고 싶다. 애써 밀어내지도, 그렇다고 억지로 이어 붙이지도 않은 채 인연이 스스로 제 갈 길을 가도록 두고 있다.
어쩌면 시절인연이란, 완전히 놓아버리는 일이 아니라 기다림에 더 가까운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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