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3'의 안이한 선택... 새로운 게 하나도 없네
[김성호 평론가]
롤랑 조페의 명작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밖에 없다. 칸영화제 수상감독이기도 한 롤랑 조페는 이른바 휴먼 3부작이라 불리는 일련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미션>도 그중 하나로, <킬링 필드> <시티 오브 조이>와 함께 인간성을 탐구한 수작으로 분류된다.
오늘날 <미션>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테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브리엘 신부의 오보에 연주가 영화 자체보다 유명할 정도. 필름시대의 유산들이 골동품쯤으로 취급되는 오늘의 세태 가운데, 로버트 드니로와 제레미 아이언스 같은 대배우의 열연조차 철지난 것처럼 치부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이 영화 <미션>이 곧 오늘의 <아바타> 3부작의 데칼코마니, 어쩌면 그 이상이라 한다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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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바타: 불과 재 스틸컷 |
|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영화는 두 신부가 과라니족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는다. 천주교 예수회 선교사인 가브리엘과 그에게 감화돼 과라니족 마을로 들어온 멘도자 모두 어떤 의미에선 서구 문명의 첨병이 아닌가. 그런 그들이 저들의 배경이자 배후일 수 있는 서구 문명에 맞서 과라니족을 지키려 든다. 식민 당국과 종교는 과라니족을 내쫓고 숲을 개척하려 하고, 가브리엘과 멘도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에 맞선다. 교황의 명을 받고 현지에 파견된 추기경보다 가브리엘과 멘도자로부터 기독교 가르침을 받은 과라니족 사람들이 더욱 종교적으로 보이는 건 인상적인 순간이겠다. 이 영화 <미션>, 나아가 조페의 휴먼 3부작에 대하여 오리엔탈리즘이며 백인우월주의적 시각이 읽힌다는 비판이 따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들이 나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아바타>를 조페의 <미션>을 다시 쓴 작품이라 이해한다. 남미 과라니족 마을은 그대로 판도라 행성과 나비족 마을과 닮았다. 침입자인 해병대원이었다가 나비족의 영웅 투르크 막토가 되는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 분)에게선 서구 문명의 첨병이었으나 이들의 수호자가 되는 선교사 가브리엘과 노예상 멘도자의 모습이 엿보인다. 기독교적 박애정신, 예수가 걸은 그 길이 겉으로는 그를 추종하는 추기경이며 식민당국자들이 아니라 원주민 과라니족에게서 드러나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아바타>에서도 협동심과 희생정신 같은 인간적 덕목을 인간이 아닌 나비족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인간에겐 자본과 제국주의적 야욕만이 읽히니 <미션>과 <아바타>, 두 작품의 구조가 상당히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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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바타: 불과 재 스틸컷 |
|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아바타: 불과 재>에서 판도라는 여전히 인간과 나비족 간의 극렬한 대립 가운데 놓여 있다. 첫편의 주된 무대였던 숲과 하늘, 두 번째 편의 무대가 된 바다를 모두 활용하여 그 규모를 키운 작품은 다시 한 번 양 세력의 피할 수 없는 전면전을 알린다. 전투에선 이겼으나 전쟁에선 주도권을 놓친 나비족이다. 인간은 전보다 더 공고한 세력을 판도라에 구축했고, 바다의 지적생명체인 툴쿤을 아예 씨를 말리려 든다. 모든 개체를 일망타진하겠다는 무지막지한 계획이 현실화되고, 그날을 기점으로 인간과 나비족이 또 한 번 피할 수 없는 일대 대전을 치른다.
달라진 점이라면, 인간들에겐 우군이 하나 생겼다는 것이랄까. 재의 부족이라 불리는 망콴족이 행동대장 격인 마일스 쿼리치(스티븐 랭 분) 대령에게 붙어 제 동족인 나비족을 해하는 것이다. 황폐한 화산지대에 터 잡은 탓인지 망콴족은 다른 이들을 약탈하며 살아가는 호전적인 부족으로, 인간들이 제공하는 강력한 무기에 혹하여 그들을 돕기에 이른다. 실제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며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원주민 부족을 첨병 삼은 일과 통한다 볼 수 있겠다.
지난 두 편 모두 인간과 원주민 간의 대립을 그린 시리즈다. 판도라 행성의 통합이 아닌 그때 그때의 전투로, 두 편 간의 근본적 차이는 없었다 해도 좋다. 투르크 막토가 되고 부족을 통합할 수 있는 힘을 얻기는 하였으나 군림하고 질서를 세우는 대신 그 힘을 봉인한 제이크의 선택은 나비족을 첫 편부터 마지막 세 번째 편에 이르기까지 꼭 같은 상황에 처하도록 한다. 제이크는 지난 편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멧카이나 부족에 몸을 의탁한 상태다. 투르크 막토가 되라는 제안도 무시한 채 그저 평범하게 지내는 게 제 의지라 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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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바타: 불과 재 스틸컷 |
| ⓒ 월트디즈니픽처스코리아 |
<아바타> 시리즈의 성취를 이야기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실상 최초의 3D 상업 장편영화로, <타이타닉> 이후 오랫동안 할리우드 최전선에서 떠나 있었던 전대 최고의 흥행감독 제임스 캐머런의 숙원이란 점이 성공의 주요한 이유가 됐다. 이야기는 기술적 혁신을 바래지 않게 할 정도면 충분했다. 3D 기술력은 아바타란 영화 속 기술과 맞물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각적, 감각적 혁신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두 번째 편에 이르러 그 성취는 상당 부분 소실됐다. 영화 바깥 세계는 첫 편과 별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되풀이한 영화 속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던 때문이다. 3D는 더는 혁신적 기술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실 세계에선 3D를 넘어 증강현실과 같은 개념이 현실화되고 있었고, 유튜브며 틱톡, SNS 등을 통해 확산되는 영상 또한 전과는 완전히 다른 속도의 감각으로 대중을 길들였다. 그런 와중에 전편과 다를 바 없는 얼개에다 가족주의로 귀결되는 2편이 새롭지 않게 다가왔을 건 자명하다. 3편에서 괄목상대할 승부수가 필요했던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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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바타: 불과 재 포스터 |
|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1편은 <미션>으로부터 기술적 혁신을 더했다. 그러나 그 혁신이 소실된 뒤엔 <미션>의 구조로부터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제레미 아이언스의 고뇌도, 로버트 드니로의 절규도 없는, 그저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와 공동체에 받아들여지고 싶은 이의 이야기 정도로 퉁치려 든다. 이건 안이함이다. 대중의 수준을 무시하고 쉽게 승부하려는 나태함이다. 이제껏 제임스 캐머런에겐 찾아볼 수 없었던 태도다.
당초 장기 프로젝트로 계획됐던 <아바타> 후속편이 나올 수 없으리란 우려도 거듭된다. 변화한 제작환경이 전과 같은 초대형 극장 개봉영화의 내실을 위협하고 있는 때문이다. 제임스 캐머런은 이후 시리즈를 책과 같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겠다고 말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영화적 새로움을 더는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테다. 다른 말로 하자면 더는 던질 승부구가 없는 때문이겠다.
<아바타: 불과 재>는 그래서 사족이다.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됐을 이야기다. 1차전과 2차전, 3차전 사이에 따로 다루어야 할 의미가 전무하다. 세 번의 싸움 동안 제이크는 나아지지 않았다. 나비족 또한 마찬가지. 거듭 돌아가 같은 방식의 전쟁을 거듭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50차례에 걸쳐 찍는다 해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모두가 하나의 <아바타> <미션>의 다시 쓰기일 뿐이다. 관객은 이 같은 안이함에 결코 관대하지 않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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