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인생이 가짜 같아" 조지 클루니의 후회와 질문
[안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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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이 켈리> 스틸컷 |
| ⓒ 넷플릭스 |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이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되거나 아무도 아닌 것이 훨씬 더 쉽다."
실비아 플라스의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영화 <제이 켈리>는, 평생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온 배우가 정작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아이러니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노아 바움백 감독이 이 문장을 영화의 초입에 배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이 켈리는 실패한 인물이 아니라, 너무 오래 '역할'로 살아온 사람이다. 플라스의 문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거는 셈이다.
"너는 성공했지만, 너 자신이 되는 책임은 감당해왔는가?"
노아 바움백 감독은 조지 클루니와 애덤 샌들러라는 두 거물을 통해,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자아를 상실한 사람들의 초상을 그린다. 그런데 이 영화가 묻는 건 단순히 "진짜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다. 어쩌면 "진짜 나 같은 건 애초에 없었던 건 아닐까?"라는 더 불편한 질문이다.
영화는 중년의 스타 배우 제이 켈리(조지 클루니)가 자신의 멘토였던 감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여정을 따라간다. 그의 곁에는 수십 년간 그를 돌봐온 매니저 론(애덤 샌들러)이 있다. 파리에서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기차 안에서, 호텔 방에서, 토스카나의 헌정식장에서, 제이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옛 연기 동기와의 불편한 재회, 소원해진 딸들과의 어색한 대화, 그리고 자신의 젊은 시절 영상을 보는 순간. 화려한 커리어 뒤에 감춰진 상실과 공허함이 서서히 드러난다. 론 역시 제이를 돌보며 유예해온 자신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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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이 켈리 공식 티저 예고편 |
| ⓒ 넷플릭스 |
클루니는 허구와 현실을 교차시키며 자신의 스타 이미지를 활용한다. 제이는 켄터키 출신이고, 토스카나를 사랑하며, 영화 말미에는 클루니의 실제 과거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 자전적 요소들은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우리는 클루니를 보는가, 제이 켈리를 보는가? 특히 토스카나의 헌정식 장면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영상을 보며 눈물짓는 순간은, 클루니 본인의 진짜 반응을 담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장면은 배우로서의 연기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진솔한 순간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 장치는 양날의 검이다. 클루니를 잘 아는 관객에게는 강렬한 울림을 주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에게는 충분한 감정적 무게를 전달하지 못할 수 있다.
반면 샌들러의 연기는 이 영화의 숨은 심장이다. 론은 큰 제스처 없이도 수십 년간 자신을 지워온 사람의 고단함과 체념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제이를 자식처럼 대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자기 아이들의 학예회는 놓쳐왔던 남자. 파리에서 론이 혼자 호텔 복도를 걷는 장면, 그가 잠시 멈춰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은 대사 없이도 그의 내면을 웅변한다. 다만 영화가 론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쉽다. 그의 이야기가 제이의 여정을 지탱하는 배경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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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이 켈리> 스틸컷 |
| ⓒ 넷플릭스 |
특히 티모시와의 재회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뼈아픈 순간 중 하나다. 처음엔 따뜻한 포옹으로 시작하지만, 대화는 곧 오래된 원한으로 변한다. 티모시는 제이가 자신의 배역을 가로챘다고 비난하고, 두 사람은 주차장에서 주먹다짐까지 벌인다. 이 장면은 성공의 이면에 숨겨진 배신과 죄책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크루덥은 오랜 시간 삭혀온 분노를 절제된 연기로 표현하며, 제이의 화려한 커리어가 누군가에게는 빼앗긴 꿈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제이의 옛 연기 선생(레니 헨리)은 영화 초반 회상 장면에서 등장해 핵심적인 한마디를 남긴다.
"이제 두 번 연기해. 한 번은 배역을 연기하고 또 한 번은 너 자신을 연기해."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테제다. 제이는 평생 관객들이 원하는 '제이 켈리'를 연기해왔다.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 하지만 카메라가 꺼지면? 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플라스의 문장처럼,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너무 무거운 책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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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이 켈리> 스틸컷 |
| ⓒ 넷플릭스 |
이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책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 〈거울〉(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출판 마음산책, 2022년)이다. "나는 은빛이고 정확하다. 나는 선입견이 없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거울이 화자가 되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자를 묘사한다.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여자는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늙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다.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녀는 내 속에 어린 소녀를 익사시켰고, 한 늙은 여인이 내 속에서 매일 그녀를 향해 솟아오른다. 끔찍한 물고기처럼."
플라스는 평생 자아와 씨름했던 시인이다. 그녀는 시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고,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역할-아내, 어머니, 시인-사이에서 진짜 자신을 찾으려 애썼다. 그 과정은 치열했고, 때로 파괴적이었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이 왜 책임인지, 왜 두려운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
플라스의 시집을 읽다 보면, 자아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흔들리는 무언가라는 걸 깨닫게 된다.
제이가 토스카나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영상을 볼 때, 그가 마주한 건 바로 이 거울의 잔인한 진실이다. 화면 속 젊고 빛나던 자신과 지금 늙어가는 자신 사이의 간극. 그 사이에서 제이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누구인지, 누가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제이는 평생 다른 사람의 얼굴을 빌려 입으며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렸다. 거울은 진실을 말하지만, 제이는 그 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었다. 론 역시 제이의 삶을 돌보며 자신의 삶을 유예했다. 두 사람 모두 타인의 얼굴, 타인의 기대 속에서 살아왔다. 거울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누구의 얼굴로 살고 있는가?
영화 <제이 켈리>는 완벽하지 않다. 느리고, 때로 산만하며,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바움백의 절제된 연출은 장점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절제가 지나쳐 감정의 고조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책임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이 되거나, 아무도 아닌 척하는 편이 더 쉽다고 느낀다. 제이는 평생 그렇게 살았고, 론은 제이의 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지워왔다. 영화는 그들에게 구원을 주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갈 이유를 건넨다. 불완전하더라도, 늦었더라도,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는 일.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직시하는 일. 그것이 바로 시작이라고.
삶은 리테이크가 없다. 나는 지금, 어떤 거울 앞에 서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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