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라이너의 비극적 죽음, 그가 남긴 영화적 유산
김성호 평론가
한 감독의 죽음이 영화계, 나아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롭 라이너의 이야기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롭 라이너가 아내 미셸 싱어 라이너와 함께 집에서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는 충격적 뉴스가 보도됐다. 마약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던 아들이 용의자로 지목돼 수사를 받고 있다.
떠나간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건 사람이 사람을 떠나보내는 인간다운 자세다. 롭 라이너의 마지막을 대하며 그의 작품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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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 바이 미 스틸컷 |
| ⓒ 컬럼비아픽쳐스 |
이후 발표한 작품 여럿이 대성공을 거두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 반열에 올라섰다. 1989년 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90년 작 <미저리>, 1992년 작 <어 퓨 굿 맨>에 이르기까지의 연출작들이 하나같이 시대적 고전으로 기록됐다. 무엇보다 각 작품이 서로 다른 장르란 점을 주목할 만하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로맨틱코미디, <미저리>는 스릴러, <어 퓨 굿 맨>은 법정영화이고, <스탠 바이 미>는 성장드라마이자 로드무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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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 바이 미 스틸컷 |
| ⓒ 컬럼비아픽쳐스 |
<스탠 바이 미>는 오늘날까지 청춘 버디물, 또 여행을 소재로 성장을 다룬 일련의 드라마 가운데 대표적 명작으로 언급된다. 시체를 찾아 영웅이 되기 위해 떠나는 네 명의 소년을 주인공으로, 이들의 이틀 간의 여정을 뒤따른다.
1950년대 미국 오리건주 작은 마을 캐슬록에 네 친구가 산다. 극중 화자가 되는 고디(윌 위턴 분)는 일찍 죽어버린 형의 그늘에 가려 있는 아이다. 형의 빈자리를 삶 곳곳에서 느끼는 심약하고 섬세한 소년인 그가 훗날 작가가 되어 하는 회상이 곧 영화의 줄기를 이룬다. 그와 함께 떠나는 친구는 크리스와 테디, 그리고 벤이다.
크리스(리버 피닉스 분)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아래서 억눌려 자라는 아이다. 집안 환경 때문인지 거친 행동을 일삼아 동네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기도 하다. 반대로 테디(코리 펠드만 분)는 2차대전 참전 군인인 아버지가 우상인 아이다. 하지만 실제 아버지는 전쟁 후유증으로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테디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번(제리 오코넬 분)은 끊이지 않고 농담을 하고 허세를 부리는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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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 바이 미 스틸컷 |
| ⓒ 컬럼비아픽쳐스 |
선 곳이 달라지면 보는 것 또한 달라진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 다른 시야를 얻기 위해서라면, 여행은 나를 다른 땅 위에 두기 위한 여정일 테다. 계획이 망가질 때에야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는 말은 바로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안전한 영토에서 벗어나 낯선 대지 위에 발을 딛을 때에야 전과 다른 시야로 사물을 보고 전에는 닿지 않던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여행이 지닌 참된 미덕이다. <스탠 바이 미> 속 아이들이 겪어내는 일도 이와 같다.
예기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 가운데서 아이들은 차츰 세상과 친구들을,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대면한다. 전에는 감추거나 도망치기 일쑤였던 일들을 마침내 대면하고 감당하려 한다. 조금씩 이해와 성숙에 다가서던 아이들이 마침내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은 어떠한가. 상상과 허영에 기반한 소년들의 낭만적 여정은 마침내 현실이 무언가를 보인다. 그 선택의 기로 앞에서 아이들은 여행 전이라면 감히 해낼 수 없었을 선택을 이어간다.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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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 바이 미 포스터 |
| ⓒ 컬럼비아픽쳐스 |
원작자 스티븐 킹이 이 영화에 크게 감동하여 롭 라이너에게 감사를 표했단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스스로에게도 자전적인 작품이었던 원작이 이 영화를 통해 더욱 자전적인 이야기로 다가섰음에 감탄했다고 했다. 롭 라이너가 이 영화로부터 그 같은 격찬을 이끌어낸 동력이 무엇일까. <스탠 바이 미>를 본 많은 이들이 이 작품으로부터 언어로 쉬이 낚아챌 수 없는 감동을 얻은 것은 분명한 일이다. 영화 속 네 소년이 겪은 여러 사건들과 그 속에서 불거진 갈등과 해소가, 명확히 무엇이 변했다고 확언할 수는 없는 결말이, 어쩌면 비극이라 해도 좋을 이야기까지가 하나하나 그렇다. 그러나 영화를 본 이들은 무언가가 분명히 변했고, 그건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롭 라이너가 이 영화를 통해 해낸 일일 것이다.
1980년대 초부터 1990년까지 약 20여 년 동안 전성기를 맞이한 소년·소녀를 주인공 삼은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서도 <스탠 바이 미>의 위상은 확고하다.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명확한 성취를 성공의 지표로 삼지 않았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흔히 해피엔딩이라 여기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명확한 성장의 징표를 획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기존의 삶을 전혀 뒤바꾸지 못하고 심지어는 악화시킬 수도 있는 상실만이 남겨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실패와 좌절, 상실 가운데서도 얻어진 것이 있다는 것이 있지는 아니한가. 이 영화를 유달리 좋아하는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롭 라이너에겐 섬세함과 다정함이 있었다. 코미디와 스릴러, 로드무비와 법정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각 장르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에 집중해 진짜 매력을 이끌어내는 역량이 있었다. <스탠 바이 미>에서도 그랬다. 아직 특별함이 여물지 않은 어린 배우들에게 그들이 가진 독자적 매력을 이끌어냈다. 리버 피닉스란 전설적 배우의 출발이 이로부터 비롯됐다.
만남과 이별이 엇갈리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인간사의 법칙이다. 떠나가는 인물들과 새로 등장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룬다. 영화계 또한 마찬가지다. 새 시대를 책임질 걸물들이 새 시대의 관객과 만나는 동안, 지난 시대를 대표했던 거목들이 제 자리에서 퇴장하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게 된다. 롭 라이너가 빚어낸 작품들은 엄혹한 시간의 세례를 견디고 시대의 명작으로 자리했다.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으로부터 오늘의 사람들이 감동을 느낀다. 암울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기꺼이 나아가야만 한다는 의지, 그것이 이룰 수 있는 변화에의 가능성을 롭 라이너의 작품들이 변함없이 품고 있었음은 명백하다. 나는 이야말로 떠나간 이 거장을 기억할 이유라고 여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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