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국방부, 박진경 훈장 서훈 취소 검토 착수...어떤 결론 내릴까

윤철수 기자 2025. 12. 1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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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통령 긴급 지시 후...무공훈장 서훈 근거자료 집중 확인
"1950년 서훈, 자료 확인 어려워"...참전 아닌 '4.3진압' 공로?
4.3당시 강경진압, 학살 책임 정황 확인...취소 절차 불가피할 듯
15일 박진경 추도비 옆에 설치된 '박진경과 제주4.3'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 안내판에는 그의 4.3당시 행적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로 이어지게 한 강경진압의 책임자인 박진경 대령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방부가 박 대령에게 수여됐던 무공훈장에 대한 서훈 취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보훈부에 박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를 검토할 것을 지시한데 따른 조치다. 이번 국가유공자 지정이 1950년 수여된 을지무공훈장이 결정적 이유로 제시되면서, 국방부 차원에서는 당시 훈장 서훈이 적정하게 이뤄진 것인지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경호 국방부 부대변인은 지난 15일 진행된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법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과 등 종합적으로 검토를 해서 가능한 조치사항을 판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재 '무공훈장'의 서훈이 적정하게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 자료를 집중 확인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뚜렷한 공적이 없는데도 무공훈장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다면 관련 법률에 따라 서훈 취소를 위한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무공훈장이 취소되면, 국가유공자 지정 근거도 사라져 취소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국방부의 검토 작업은 초반부터 어려움에 직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1950년 서훈 자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경호 부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박 대령은)1950년에 서훈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당시 공적 내용은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서 확인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6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도 자료 확인 자체가 난관에 직면한 점이 확인됐다.

정빛나 대변인은 박 대령의 무공훈장 수훈 관련 자료와 관련해 "1950년에 서훈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지금 자료 확인이 어렵다"며 "계속 확인은 하고 있고, 유관기관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서훈이 된 공적사항을 담은 객관적 자료는 '확인 불가'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박 대령이 6.25 참전 등 전시상황의 공로로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 대령은 1948년 제주4.3 당시 제주도민들에 대한 강경진압 작전을 벌이다 부하들에게 암살당했는데, 이후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전몰군경이라는 이유로 을지무공훈장에 추서됐다.

전시에 공적을 세워 무공훈장을 받은게 아닌, 사실상 4.3당시 진압작전의 공적으로 훈장을 받은 셈이다.
15일 박진경 추도비 옆에 세워진 '박진경과 제주4.3' 진실 안내판. 

박 대령은 4.3진상조사보고서 등을 통해서도 4.3당시 양민 학살로 이어지게 한 강경진압을 지휘한 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15일 제주도에 있는 박 대령의 추도비 옆에 세운 '4·3 역사 왜곡 대응 안내판'에도 그의 4.3행적이 기술돼 있다. 

안내판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박진경은 1948년 5월 6일 제주도에 와서 40일 남짓 강경한 진압 작전을 벌였고 그 대가로 상관을 앞질러 대령으로 특진했다. 그 무렵 미군 비밀보고서에 "3,000여 명이 체포됐다"고 기록될 정도로 박진경은 무리한 작전을 전개했다.

"30만 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 "양민 여부를 막론하고 도피하는 자에 대하여 3회 정지명령에 불응자는 총살하라고 명령했다" 등의 발언 사실도 기재됐다.

강경 작전을 펴던 박진경은 결국 그해 6월 18일 부하인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에게 암살됐다.

그를 암살한 손선호는 "30만 도민에 대한 무자비한 작전 공격 명령"이 암살 동기라면서 "박진경이 15세가량 되는 아이가 그 아버지의 시체를 껴안고 있는 것을 보고 무조건 살해했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박진경의 작전참모 임부택 대위도 법정 증언을 통해 "박진경 연대장이 조선 민족 전체를 위해서는 30만 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 양민 여부를 막론하고 도피하는 자에 대하여 3회 정지명령에 불응자는 총살하라고 명령했다"고 밝혔다.

박 대령이 국가유공자가 아니라, 4.3 강경진압의 책임을 묻고 단죄를 해야 할 대상임을 보여준다.
사진은 지난 2022년 4.3단체 등이 제주도에 있는 박진경 비석에 설치했던 '역사의 감옥' 모습. 박진경 추도비는 1952년 제주시 관덕정 옛 제주경찰국 앞에 군경원호회 명의로 세워졌다. 당시 전쟁 중인데다 제주4.3이 끝나지 않아 주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던 때로, 제주도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추도비는 1980년대 제주시 충혼묘지로 옮겨졌다. 2022년 제주국립호국원이 개원했으나, 국립묘지에는 개인·단체의 추도비는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어 호국원으로 이설이 어렵게 되자 어승생 한울누리공원 인근 도로변으로 옮겨진 상태다. 

그럼에도 국가보훈부는 지난 11월 4일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삼아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증서를 발급했다. 

유공자 증서 발급은 유족의 신청에 대해 국가유공자법 제 4조 및 6조에 근거한 행정처분이었다"며 법 절차에 의한 정당한 지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가 서훈 자료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국가보훈부 심사 과정에서조차 '무공훈장'의 구체적인 공적사항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제주4.3 당시 강경진압을 통한 학살의 책임을 제기받고 있는 '작전'을 수행한 공로라는 이유만으로 무공훈장을 받은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날 경우, 서훈 취소 절차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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