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훈의 마켓 나우] 풍차 세운 넷플릭스, 담장 무너진 할리우드

지난주 할리우드를 강타한 뉴스는 미국 문화콘텐트 산업 판도의 재편을 예고했다. 100년 넘게 월트디즈니·파라마운트와 함께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빅3로 군림하던 워너브러더스(WB)가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한 지 채 20년도 되지 않은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에 인수되기로 합의한 것이다.
물론 할리우드는 이전에도 비슷한 충격을 겪었다. 2011년 글로벌 영화 시장을 석권하던 소위 ‘여섯 깃발(six flags)’인 월트디즈니·파라마운트·WB·20세기폭스·컬럼비아픽처스·유니버설픽처스가 온라인 불법복제와 사투를 벌이던 와중에 유니버설픽처스가 케이블 사업자 컴캐스트에 인수됐다. 당시에도 ‘아군이 적군에게 넘어갔다’는 비유가 나왔지만, 이번 WB 매각은 충격파가 그때보다 더 크다. 100년 전통의 할리우드 산업 구조 자체가 해체되는 신호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조는 분명하다. 북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는 애플과 테슬라 같은 혁신 기업을 기업가 정신의 상징으로 떠받든다. 반면 남캘리포니아의 ‘실리콘비치’, 즉 영화와 문화콘텐트 기업들이 밀집한 LA 해안 지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극장 개봉 중심의 1차 배급, 부가 판권을 통한 2차 배급, 소장용·시즌용 3차 배급이라는 질서를 흔드는 파괴적 혁신은 오랫동안 환영받지 못했다.

DVD 우편배달 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한때 WB의 모기업 타임워너 CEO였던 제프 뷰크스로부터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애송이 기업”이라는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끊임없는 혁신과 사업모델 전환, 그리고 영화 콘텐트 배급 방식 자체를 바꾸는 대범함으로 비웃음을 당당히 되갚게 됐다.
미국 극장 산업과 TV 방송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제 WB가 제작하는 영화들은 극장이나 TV 방송에 배급되지 않고 넷플릭스 스트리밍에서만 제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영화·드라마의 공급 부족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한국 영화 산업도 충무로 시대를 거쳐 상암동 시대를 지나 이제 강남·판교 시대로 대변되는 K-콘텐트와 OTT 시대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넷플릭스는 WB라는 대형 영화 제작 엔진을 갖춤은 물론, 100년 넘게 축적한 방대한 콘텐트 아카이브를 확보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한국 감독들에 대한 영화 제작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아시아보다 미국 시장에 무게 중심을 둘 가능성도 있다.
기존 영화 산업이 해체되고 새로운 시장 질서가 자리잡는 대격변의 시대가 개막됐다. 변화의 바람이 불 때 어떤 기업은 변화를 억누르는 담장 쌓기에 집중하고, 또 다른 기업은 그 바람을 활용할 풍차를 만든다. 대한민국 영화 산업의 선택을 주목한다.
심재훈 법무법인 혜명 외국 변호사·KAIST 겸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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