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권오을 장관 "송구하다" 사과는 했으나...유공자 철회 요구 '거부'
"군인.경찰도 시대의 피해자"...유공자 인정 당위성 말하고 싶었나
사실상 철회 불가 입장...오영훈 지사와 비공개 면담, 내용은?

국가보훈부가 제주4.3 학살로 이어지게 한 강경진압의 책임이 있는 박진경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이 문제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권오을 장관이 11일 제주도청을 황급히 방문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를 만나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날 권 장관이 내놓은 '해법 카드'는 없었다. 사과 입장만 밝혔을 뿐, 국가유공자 지정 철회 요구는 사실상 외면하면서 들끓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권 장관은 이날 오후 6시 제주도청에서 오영훈 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번 파문과 관련해 제주도민에게 사과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내용은 전날 국가보훈부가 서면 입장을 통해 전한 내용의 범주였다.
오히려 발언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군인이나 경찰도 시대의 피해자"라는 말을 꺼내 의아스러움을 샀다.
권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제주도민들의 아픈 상처를 듣고 정말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변명이나 말을 더 붙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 정부이자 국민통합 정부인데, 이번 일로 그 기본 취지에 손상이 올까 우려된다"며 "제주4·3은 국가폭력 피해이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오랜 억울함과 한을 풀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데 국가보훈부가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저는 제주4.3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한 후, "거기에관계된 분들(제주4.3 유족)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고, 한 마디로 국가폭력 피해자이다"며 "더 중요한 건 그 희생자들 유족들이 오랜 세월 억울함, 그 한을 풀어주는게 우리 국가인데 국가보훈부가 거기에 대해서 보답을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제주4.3의 본질이 국가폭력에 의한 무고한 양민 학살이라는 부분을 언급하려했던 것으로 풀이됐다.
◇ "군인.경찰도 시대의 피해자"..국가유공자 당위성 강조하고 싶었나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말은 다소 의외였다. 권 장관은 "한편으로는 그 당시 에 동원됐던 군인, 경찰은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그 분들도 '시대의 피해자'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분들(군인.경찰) 이야기는 지금 할 필요가 없겠지만, 양쪽 다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래서 보듬어나가자는 국민 통합의 입장에서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권 장관의 이 대목은 국민통합의 의미로 양쪽을 다 아울러야 한다는 의미로 강조하려는 듯 했으나, 현 논란상황에 대한 해명으로 전해졌다.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의 당위성을 역설적으로 전해졌다.
권 장관은 "이 자리는 제주도민들께 좀 송구스럽다는 사과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부분 (말씀은) 드리지 않겠다"며 발언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4.3유족과 도민사회, 정치권까지 나서 강하게 국가유공자 지정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하지 않았다. 사퇴 요구에 대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결국 사과만 했을뿐, 도민사회 국가유공자 지정 철회 요구에 대해서는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국가보훈부가 철회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그대로 고수한 것이다.

◇ 오영훈 지사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인정 취소·제도 개선" 촉구
권 장관은 짤막한 모두발언 후 비공개로 오영훈 지사와 면담을 가졌다.
오 지사는 면담에서 권 장관에게 국가유공자 인정 취소와 함께 제도 개선을 강력히 촉구했다. 또 제주도민 사회에 제기된 깊은 우려와 상처를 직접 전달하고 역사적 맥락을 고려한 제도 정비를 요청했다.
오 지사는 4·3 당시 무차별적인 주민 연행으로 피해를 키운 인물을 역사적 맥락 없이 국가유공자로 인정한 결정이 도민 사회에 상처를 줬으며, 무공훈장 수훈만으로 국가유공자를 인정하는 제도가 4·3희생자와 유족의 아픔을 가중시킨 점을 설명했다.
이어 "국가보훈부가 조금만 더 들여다봤다면, 정부가 발행한 4·3진상보고서 내용만 확인했더라도 발급은 보류됐어야 했다"며 "저도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도민과 4·3유족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이번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또 "신속한 제도 보완을 통해 지정 취소가 이뤄져야 한다"며 "취소가 이뤄지지 않으면 도민과 유족의 아픈 마음을 다시 보듬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오 지사는 "현행 제도상 당장 취소할 수 없다면 반드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장관님의 결단과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이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무공훈장 수훈만으로 자동 인정하는 제도를 개선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국가보훈부의 책무"라며 "4·3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라면 제주도는 언제든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국가보훈부가 유사 사례 재발 방지와 제도 개선에 책임 있게 임하고, 4·3 왜곡 방지 법안의 조속한 처리에도 정부가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권 장관은 "후속 조치에 국가보훈부가 충분한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 성난 민심, "국민주권정부 철학 따르지 않는 장관, 즉각 사퇴해야"
이러한 가운데, 국가보훈부의 이번 국가유공자 지정 파문과 관련해 성난 도민사회 반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제주4.3단체는 물론 시민사회, 그리고 제주도의회, 정치권까지 나서 국가보훈부를 강력 규탄하고 나섰다. 12일에는 서울지역 4.3단체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급기야 11일 문대림 국회의원(제주시 갑)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보훈부가 '신중하지 못했다'는 짧은 사과문만 올려놓고,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는 불가하다는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전제한 후, "국민주권정부의 철학을 따르지 않는 장관은 이 정부에 더는 필요 없다"며 권 장관의 즉각적 사퇴를 요구했다.
◇ 제주도, 15일 박대령 추도비 옆에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 설치 예고
한편, 제주도는 오는 15일 박진경 대령에 대한 객관적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박 대령 추도비 옆에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을 설치한다.
안내판은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희생자유족회 명의로 설치되며, 4·3실무위원회, 4·3유족회, 4·3평화재단 등에서 추천한 자문위원들과 함께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내용을 구성했다.
아울러 제주도는 4·3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4·3 왜곡 처벌 조항이 포함된 4·3특별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시행될 수 있도록 적극 건의·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박진경 대령은 1948년 5월 당시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9연대장(이후 11연대로 통합)으로 부임한 후 제주도민에 대한 강경진압을 주도한 인물이다.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 명을 모두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발언하는 등 4.3 초기 국면에 주민학살까지 병행되는 강경진압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박 대령의 강경진압 주도로 수많은 도민들이 끌려가거나 희생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보훈부는 지난 11월4일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를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삼아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그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정부의 이같은 행태는 제주4.3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왜곡논리의 편승이자, 집단 학살에 대한 옹호에 다름 없다는 점에서 거센 비판을 불러오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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