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영화엔 장애인 배우가 없을까?

김성호 2025. 12. 1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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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1225] <새이와 도하> 서지우 배우 어머니 인터뷰

[김성호 평론가]

'대중이 불편해 하지 않을 선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소비한다고들 한다. 말 그대로 입맛에 맞으면 쓰고 아니면 버리는 식이다. 자본주의 가운데 자리한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스타는 그가 소위 '먹히는 때'까지만 스타다. 대중에게 소비되는 이유를 상실하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 이미지가 곧 상품성인 스타가 대중이 불편해할 요소를 철저히 관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디 스타뿐일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산업은 하나같이 대중이 불편해하는 것을 조심한다. 하도 조심하여 아예 눈에 띄지 않도록 솎아내기 일쑤다. 밭에서 뽑혀나가는 잡초처럼 사라진 불편한 것들이 우리 보는 대중문화 콘텐츠 가운데 수두룩하다. 뽑혀나간 것이 잡초만이 아닌 것이 문제다.

한국 영화계엔 어째서 장애인이 없을까. 그 사실이 궁금했다. 할리우드와 유럽에선 이미 스타급 장애인 배우가 여럿 탄생한 시점이 아닌가. 지난해 UCLA가 발표한 할리우드 다양성 연구보고서(UCLA Hollywood Diversity Report)는 할리우드 극장상영 영화 출연진 가운데 7%가 장애인이며, 이중 상당수가 눈에 보이는 가시성 장애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여전히 전체 장애인 비율에 비하여 과소대표된 점이 지적되고는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사가 다양성 증진의 측면에서 인종과 성별에 더해 장애를 적극 노출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영화판에 장애인 배우는 왜 안 보일까?
▲ 새이와 도하 스틸컷
ⓒ 배진아
반면 한국은? 영화평론가로 영화계 곳곳을 오간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소위 극장 개봉하는 상업영화 가운데 장애인 배우며 스태프를 만나본 기억이 없었던 일이다. 이것이 올해 장애 관계 단체의 청탁과 맞물려 장애를 가진 영화계 관계자를 수소문하기에 이른 계기가 됐다. 장애를 가진 영화인 여럿과 접촉해 그중 몇에게 심도 있는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이를 차례로 '씨네만세'를 통해 전하고자 한다.

18분짜리 단편영화 <새이와 도하>는 올 한 해 한국 여러 영화제를 오가며 관객과 만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대한민국대학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가치봄영화제,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인천독립영화제, 제주혼듸독립영화제, 도시영화제의 결코 낮지 않은 문턱을 넘었고, 제26회 제주국제장애인인권영화제선 영예의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영화는 일반학교에 진학한 장애인 급우의 학교 적응과 일상생활을 돕는 또래 도우미 제도를 소재로 한다. 같은 반 뇌성마비 학생인 도하와 그 도우미인 새이, 두 아이가 나는 한 철을 이 영화가 비춘다. 요 몇 년 주목할 만한 젊은 영화인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는 성결대학교 영화영상학과 배진아 감독의 졸업작품으로, 실제 뇌성마비를 가진 장애아동 서지우를 출연시켰단 점에서 도전적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사회가 장애를 소비하는 방식
▲ 새이와 도하 스틸컷
ⓒ 배진아
촬영현장에 동행한 서지우 배우의 어머니는 영화를 비롯해 기존 미디어가 장애인을 제가 보고자 하는 방식대로만 소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 배우의 어머니를 지난 11월 20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장애인 유형에 따라 보편적 가치를 부여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자폐 장애는 천재적 재능으로, 휠체어 장애는 신체적 제한을 극복한 성공한 캐릭터로 형상화하는 등이죠.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비장애인이었다가 삶의 중간에 장애를 입은 중도장애인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스토브리그>에서 주인공의 동생으로 나온 백영수가 그렇고, <미지의 서울>에 나온 이충구 변호사도 그렇죠. 실제 현실에선 신체적으로 큰 변형이 있거나 발음에 문제가 있고 아예 지적 장애를 동반한 장애인도 많아요. 그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지 않고 대중이 '불편해 하지 않는 선에서' 형상화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듣고 보니 과연 그렇다. <스토브리그>의 백영수 캐릭터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나는 장애인을 지상파에 방영되는 작품 가운데 등장하도록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도전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고작 휠체어를 탄 인물이 드라마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역할을 맡았다는 것만으로, 그것도 비장애인 배우가 휠체어에 앉아 연기한 그 모습을 진보라고 여겼던 것이다. 물론 여전히 장애를 가리는 수많은 작품에 비하여 이 작품이 나아간 부분이 있단 건 분명하다. 그러나 부족하다. 이것이 진보라면 턱없이 부족한 진보인 것이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실제 장애인 배우가 등장해 화제가 됐었죠. 다운증후군 영희, 청각장애 별이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로 장애인이었다고 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품에서 장애인들의 삶이 다양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비장애인처럼 예능에도 출연하는 장애인을 보고 싶어요. 작은 노출이 이슈가 되고 공론화가 되면 장애인 정책이 변화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장애인 배우가 보이지 않는 건 그만큼 한국 장애인들이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데 제약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죠. 장애인 역할을 비장애인이 한다는 건 장애인이 직업인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문화는 제도가, 사회가 만드는 거니까요."

보고픈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 달팽이 농구단 스틸컷.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연기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일까?
ⓒ 삼백상회
요점은 '보고픈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에 있다. 보는 이의 선호와 필요에 따라 들였다가 치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 그것이 미디어가 장애를 대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째서 예능프로그램에는 장애인이 없을까. 어째서 거리에선, 대중교통에선, 우리의 일상 가운데선 장애인이 없는지를 시민 스스로가 물어야 한다. 똑같은 인간으로, 나와 다르지 않은 주변인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지난 시대 배제와 격리, 무시의 대상이던 장애인과 동행하는 출발점이 된다.

"장애인이 어떤 일에 참여하면 너무나 대단하다고 바라보는 시선이 도리어 불편해요. 장애인을 다름이 아닌 특별함으로 여기기 때문이죠. 자연스럽게 나와는 크게 다를 것 없는 주변인으로 인식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장애는 사람이 가진 특징 중 일부일 뿐이에요. 이 특징을 전면에 내세워 전체로 바라보는 데서 왜곡이 생기죠. <스토브리그>처럼 장애인이 일반인 사이에 있을 땐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일반인들 사이에 온 것처럼 그려져요. 장애는 아픈 게 아닌데도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듯해요."

영화 <새이와 도하>는 장애인을 돕는 역할을 떠맡은 아이와 장애아동의 관계를 통해 '약자'와 '시혜를 베푸는 자'라는 장애와 비장애를 향한 통상적 인식에 의문을 던진다. 때로는 비좁은 인식이 장애와 그를 마주하는 비장애인까지를 편견과 오해 안에 가둔다. 그로부터 건전한 관계맺음을 방해한다. 한국 매체는, 또 우리는 지금껏 장애를 잘못 바라봐왔다. 세계적 경향이 바뀌어가는 와중에도 우리는 여전히 잘못된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 이제는 바꾸어야 할 때다.
▲ 새이와 도하 스틸컷
ⓒ 배진아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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