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개방 27년…‘은밀한 취향’에서 대중적 소비로 [J무비 전성시대②]

류지윤 2025. 12. 10. 11:4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62년 서울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영화제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츠바키 산주로', 마스다 토시오의 '위를 보고 걷자', 마스무라 야스조의 '아내는 고백한다', 타사카 토모타카의 '벌거숭이', 이치무라 히로카즈의 '강은 흐른다'까지 일본영화사 중심에 놓인 감독들의 작품이 초청됐지만, 공보부 시사실에서 허가받은 관계자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대중은 볼 수 없었다.

이미 수교 이전부터 반복되어온 금기와 경계의 감정, 식민지 경험이 남긴 역사적 기억, 정치적 부담이 모두 얽히며 일본 영화는 공식적으로는 ‘볼 수 없는 문화’로 규정됐다. 일본 영화 개방이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민감한 금기였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그러나 1990년대로 접어들며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변화의 신호탄은 1996년 첫 회를 연 부산국제영화제였다. 그동안 일본 영화는 외교적·정치적 부담 속에서 제한적으로만 소개됐지만, 한국이 주체적으로 개최하는 국제영화제인 부산에서 일본작들이 정식 섹션에 포함된 것은 개방 논의 이전에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한층 유연해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동시에 1980~90년대 비디오·PC통신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본 영화는 이미 ‘지하 문화’로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어가 가능한 일부 관객층, 일본 문화원, 해외 체류자, 밀수, 불법 비디오 등 다양한 경로로 작품이 유통됐고, 특히 비디오 플레이어의 대중화 이후에는 암암리에 소비되는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는 정식 개봉 전부터 수십만 장이 불법으로 유통됐다는 소문이 돌 만큼 일본 영화는 이미 암암리에 ‘한국 관객의 취향 속’에 들어와 있었다.

당시 일본 영화는 제도권에서는 금지 상태였지만, 실제 관람 환경에서는 이미 일정한 수요와 소비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제도적 규제와 실제 소비 환경 사이의 간극이 커지면서 일본 영화 개방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암암리에 소비되던 일본 영화는 이미 대중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제도화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쟁점이었다.

불법 복제 시장 확산으로 규제의 실효성이 약화되고,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개방 요청, PC·비디오 기반의 콘텐츠 소비 증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일본 문화 수요 확대 등이 맞물리며 정책 논의가 필요해졌지만, 공개적 논의의 장에서는 역사·산업·정체성 문제를 둘러싼 찬반 여론이 강하게 충돌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부는 사회적 수용성과 여론 반응을 고려해 일본 대중문화를 점진적으로 개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1998년 시작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1~4차로 단계가 구분되었다. 1차 개방에서는 칸·베니스·베를린·아카데미 등 주요 국제영화제 수상작과 한·일 합작영화, 일본 배우가 출연한 한국영화에 한 해 수입과 상영이 허용되었다. 이 시기 공식적으로 상영된 작품은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 등이었다. 2차 개방에서는 ‘전체관람가’ 등급 작품까지 범위가 확대되었고,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가 이 단계에서 개봉해 140만 관객을 기록했다.

이후 3차 개방에서는 ‘18세 이상 관람가’를 제외한 영화와 국제영화제 수상 애니메이션이 포함되었으며, 2003년 이뤄진 4차 개방을 통해 일본 영화는 등급 제한 없이 전면 수용 체제로 전환되었다.

개방 과정에서는 찬반 의견이 분명히 나뉘었다. 찬성 측은 세계화 흐름에 맞춘 문화 다양성 확보, 불법 시장의 양성화, 한·일 문화교류 확대 등을 이유로 들었다.

반대 측은 식민지 경험을 고려한 역사 인식 문제,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저하 우려, 일본 대중문화의 상업적 영향력 확대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애니메이션과 성인 비디오 같은 분야는 일본 콘텐츠 유입이 국내 시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산업계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개방 이후 일본 영화의 흥행은 특정 장르에서 두드러졌다. J-호러인 ‘링’, ‘주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공포물과 애니메이션은 장기적으로 흥행 상위권에 자리했다.

한국 영화계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호러와 애니메이션 장르에서 일본 작품이 일정 부분 시장을 채웠고, 이러한 흐름은 이후 극장가에서 일본 콘텐츠가 관객층을 확보하는 기반이 되었다.

다만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 영화 전체가 두드러진 흥행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초중반 일본 영화는 꾸준히 개봉되었지만, 한국영화 르네상스(‘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달콤한 인생’, ‘괴물’)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양강 구도 속에서 일본 실사영화는 주목도를 확보하기 어려웠고, 관객은 주로 애니메이션·호러·청춘멜로 장르에서 일본 영화를 접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특히 실사영화는 '러브레터' 이후 '오늘 밤, 이 세계에서 사랑이 사라진다면'이 개봉했던 2023년까지 21년 동안 100만을 넘는 작품이 없었다.

대신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꾸준한 흐름이 이어졌다.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을 비롯해 ‘명탐정 코난’, ‘짱구는 못 말려’, ‘원피스’ 등 장기 시리즈가 매년 일정 규모의 관객을 모으며 안정적 관람층을 형성했고, 이러한 작품들은 가족 단위와 청소년 관객을 중심으로 극장 내 재방문 경험을 축적해 갔다.

눈에 띄는 대흥행은 드물었지만, 특정 장르·프랜차이즈 중심으로 관객 저변이 넓어지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은 국내 극장가에서 ‘지속적으로 찾는 콘텐츠’라는 인식을 서서히 갖추게 됐다.

이 과정은 세대별 취향 구조 변화와 함께 진행됐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TV·케이블·비디오·극장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자연스럽게 접했고, 이는 성인이 된 이후 OTT·극장 소비로 이어졌다.

이 흐름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후반 이후다. OTT 확산, 팬덤 기반 소비 패턴의 강화, 일본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시장 확장, Z세대의 문화적 장벽 완화 등 환경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장르와 세계관의 확장, 고정 팬덤, 굿즈·이벤트 기반의 수익 구조를 통해 극장 관람 경험을 강화했고, 이는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슬램덩크’ 같은 작품들이 대규모 흥행으로 이어지는 토대가 됐다.

특히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은 세대·감정·IP 전통성이 결합된 대표적 사례로, 1990년대 중후반 태어난 세대가 성인이 되어 극장 소비력을 갖추며 만들어낸 결과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주요 장르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러한 구조적 변화와 맞닿아 있다. 콘텐츠 소비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장르 편식이 완화됐고, 극장가에서 안정적인 관객층을 확보한 일본 IP가 다시 전면으로 부상한 것이다.

문화적 경계, 역사적 감정, 산업적 우려는 여전히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세대교체와 플랫폼 환경 변화 속에서 일본 콘텐츠의 위치는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개방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일본 영화는 지금 한국 극장가에서 신뢰 가능한 수요층을 갖춘 장르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