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왜 축구를 사커라고 부르지?...NFL 이름 바꾸자" 또 시작한 트럼프의 아무말 대잔치 [더게이트 이슈]
-'사커'는 영국이 만든 말, 역사 모르는 트럼프
-103년 전통 무시한 즉흥 발언의 전형

[더게이트]
뭐든 자기 멋대로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한국시간)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또 한 번 즉흥 발언으로 논란을 만들었다. 이번엔 축구를 가리키는 명칭이 표적이다.
이날 '급조된' FIFA 평화상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 트럼프가 무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축구가 어떻게 됐는지 보라. 미국에서는 사커라고 부른다. 우리는 풋볼이라고 절대 부르지 않는다. 풋볼이라고 불리는 다른 것과 약간 충돌이 있어서다."

'사커'는 영국 대학생들이 만든 말
트럼프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겠지만, '사커'라는 단어는 사실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그것도 19세기 옥스퍼드대 학생들이 만든 말이다.
1863년 영국에서 풋볼협회가 생기며 두 종류로 나뉘었다. 손을 쓸 수 있는 럭비 풋볼과 발만 쓰는 어소시에이션 풋볼. 당시 옥스퍼드대 학생들 사이에선 단어를 줄이고 끝에 '-er'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럭비 풋볼은 '러거(rugger)', 어소시에이션 풋볼은 '어소커(assoccer)'가 됐고, 이게 다시 줄어서 '사커(soccer)'가 됐다.
이 말은 20세기 전반까지 영국에서 흔하게 쓰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감독 맷 버즈비의 1973년 자서전 제목도 'Soccer at the Top(정상의 사커)'이었다.
한편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럭비와 축구를 섞은 새 스포츠가 탄생했다. 아메리칸 풋볼이다. 이게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국인들은 '풋볼'이라고 하면 아메리칸 풋볼을 먼저 떠올렸다. 대신 발로 차는 축구는 영국에서 건너온 이름 그대로 '사커'로 불렀다. 두 스포츠를 구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미국만 그런 게 아니었다. 캐나다에는 캐나다식 풋볼이, 호주에는 오스트레일리안 풋볼이, 아일랜드에는 게일릭 풋볼이 있었다. 이들 나라도 같은 이유로 발로 차는 축구를 '사커'로 불렀다. 미국 축구 국가 기구도 1974년까지 '미국 사커 풋볼 협회'라는 이름을 썼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정작 '사커'를 만든 영국이 1980년대부터 이 말을 버린 것이다. 1970년대 미국에 북미사커리그가 생기며 영국 스타 선수들을 빼갔다. 조지 베스트, 바비 무어 같은 스타들이 미국으로 갔다. 당시 세계 최고 선수 펠레까지 미국행을 택했다. 영국 팬들은 화가 났다. "왜 너희는 이걸 사커라고 부르냐? 풋볼이다!"

NFL은 103년 전통인데
트럼프는 "NFL을 위해 다른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무슨 이름으로 바꿀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무 대안도 없는 즉흥 발언이다. 평소 트럼프의 모든 말과 행동이 다 이런 식이다.
멕시코 국경 장벽?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관세 정책? 막 때려도 된다. 팬데믹 대응?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하면 된다. 이제 103년 전통의 NFL 이름도 바꾸자고 한다. 어떻게? 그건 중요하지 않다.
NFL은 1922년부터 쓴 이름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리그다. 슈퍼볼은 미국 전역이 시청하는 국민 이벤트다. 트럼프 본인도 NFL 열성 팬이다. 최근 워싱턴 커맨더스 경기를 관람했고, 폭스 중계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런 트럼프가 NFL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아일랜드 스타는 "트럼프의 발언은 케네디 센터 청중들로부터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다"며 "전직 NFL 스타 톰 브래디와 일라이 매닝도 객석에 있었다"고 전했다. 두 전설적인 쿼터백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AFP통신은 "골프 애호가 트럼프는 축구 지식 대부분을 19세 아들 배런에게 얻었다"고 보도했다. 축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명칭 변경을 들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게 트럼프답다. 모르면서 아는 척, 전문가인 척하는 건 트럼프의 오랜 습관이다.
기후변화? "중국이 만든 사기극"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독감보다 약하다"고 했다. 이제 축구 역사까지 들먹이며 NFL 이름을 바꾸자고 한다. '사커'가 영국에서 만든 말이라는 건 알 턱이 없다.
역사도 모르고, 대안도 없는 즉흥 발언이다. 103년 전통을 무시한 채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정작 말이 안 되는 건 트럼프의 발언이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이게 문제가 될까? 전혀 아니다. 틀려도 밀어붙이고, 사실이 아니어도 반복하고, 비판받으면 상대를 공격한다. 이게 트럼프 화법이다.
트럼프는 이날 "이건 인생 최고의 영광 중 하나"라며 평화상을 목에 걸었다. 10억 명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자신이 중심에 섰다는 게 중요했다. 축구? NFL? 역사?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트럼프에겐 오직 트럼프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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