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전 레시피 지키며 진화…천안의 성심당 '할머니 호두과자' [비크닉]
■ 뉴 로컬, 비 로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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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 위기, 로컬 산업이 해결할 수 있을까?’ 지역 기반으로 시작해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글로컬’ 브랜드가 나오는 요즘, 로컬은 지역 고유의 가치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는 미래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입니다. 비크닉은 이러한 잠재성에 주목, 지역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키워가는 브랜드·크리에이터·이벤트를 집중 조망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시리즈 ‘뉴 로컬, 비 로컬’를 통해 정부·지자체·기업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지역 활성화의 움직임도 담아냅니다.
」

고속도로 휴게소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먹거리, 바로 호두과자입니다. 밀가루 반죽 안에 팥앙금과 호두 알갱이를 넣어 만든 이 구움과자는 저렴하고 먹기 편한 대표 간식이죠. 최근 한 연예인의 결혼식에 호두과자 부케가 등장해 화제가 되는가 하면, SNS에서는 초록색 말차로 만든 호두과자가 인기를 끌기도 했어요.
이처럼 변주와 진화가 거듭되는 호두과자의 시작은 ‘학화호도과자’입니다. 1934년 개업해 91년째 이어지는 백 년 가게이자 ‘천안 호두과자’라는 지역 명물을 탄생시킨 주인공이죠. 지금도 본점에서만 하루 평균 4500박스가 팔릴 만큼 고객 충성도가 높다고 하는데요. 비크닉이 4대째 가업을 잇는 조경찬 대표(32)를 만나 변함없는 맛을 유지하며 명맥을 이어온 비결을 알아봤습니다.
할머니 로고로 통했다…교통 중심지에서 탄생한 호두과자 원조

충청남도 천안시는 호두과자의 대표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그 명성이 생겨난 걸까요. 시작은 193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천안의 제빵 기술자였던 조귀금(1915~1987) 할아버지가 일본인이 운영하는 제과점에 근무할 당시, 팥 앙금을 넣은 화과자 형태의 간식이 인기를 끕니다. 그는 여기에 아이디어와 기술을 더해 지역 특산품인 호두를 넣은 과자를 개발합니다. 천안 광덕면은 고려 시대 때 호두가 처음 들어온 곳으로 양질의 호두를 생산하는 주산지였거든요. 가마솥에 찐 팥을 3번 거피한 흰 앙금과 굵직한 호두 알을 넣은 호두과자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조 할아버지는 이 개발로 도지사 월급이 80원이던 시절, 120원을 받는 대접을 받았다고 해요.(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민속자료)

광복 후 그는 아내인 심복순(1913~2008) 할머니와 제과점을 인수해 학화호도과자를 설립합니다. 지리적 특수성도 호두과자를 알리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천안역은 경부선의 중간 기착점이자 유명 관광지였던 온양온천을 가기 위한 경유지였어요. 역 근처에 자리 잡은 학화호도과자의 제품은 허기진 여행객들에게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열차 내에 납품할 수 있게 되면서 철길 따라 전국으로 퍼져서, 90년대 ‘마이카’ 시대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호두과자를 쉽게 볼 수 있게 됐죠.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자 이를 모방한 가게뿐 아니라 원조를 주장하는 곳들이 생겨났는데요. 심 할머니는 학화를 한눈에 구별할 수 있게 초상을 넣고, 포장지에는 ‘고과산방(古菓山房, 한적한 산중에서 옛 과자를 즐긴다)’ 문양을 새기게 됩니다. 이후 ‘할머니 호두과자’로 맛과 명성을 이으며 천안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죠. 지난 2000년에는 충청남도 전통문화의집 호두과자 제조 인증 제1호를 부여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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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과 카운터만 7년…가업 잇는 90년대생 대표
학화호도과자는 가족이 대를 잇습니다. 천안에 7개, 서울에 2개 점을 자손들이 각자 나누어 운영하고 있는데요. 본점은 90년대생 조경찬 대표가 맡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축구 유학 후 스포츠 지도사를 꿈꾸던 그는 스무살 무렵, 가업을 이어받으라는 ‘미션’을 받게 됩니다. 우연히도 1대인 조귀금, 2대 조국태, 3대 조원호·이인희 부부를 잇는 장손 라인이죠.
그가 처음 맡은 일은 호두과자의 기본인 반죽과 앙금을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제조 과정과 매장 판매를 익히는 데 7년이 걸렸죠. 가게를 이끌려면 대표가 모든 과정을 다 알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철칙이었습니다.

기본기를 쌓은 그는 2020년부터 대표로 나서게 됩니다. 조 대표는 가업을 잇는 일이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역사가 깊은 브랜드는 사람들의 기억과 함께 숨쉬기 때문이죠. “중학교 때 매장에 놀러 가면 늘 할머니가 계셨어요. 연세가 많으신데도 항상 손님 응대하시거나 박스를 접고 계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손님들은 지금도 생전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거나, 예전에 도움받았던 일화를 전해준다고 합니다. 조 대표는 “매장에 3대가 함께 와 ‘여기 할머니 살아계실 때부터 내가 호두과자 사 먹는 곳이다’라며 이야기하시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라고 회고합니다.
딸기·말차·슈톨렌 맛까지, 호두과자의 변신



이처럼 변함없는 맛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브랜드에는 한 가지 숙제가 있었습니다. 기존 고객의 충성도는 높지만, 젊은 세대의 인지도가 너무 낮았던 겁니다. 조 대표는 학화가 100년, 200년 이상 지속하기 위해선 맛의 다양화를 통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도 다른 재료를 넣어본 적 없는 제조 파트와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어요. 몇 번이나 거절당했지만, 사업계획서를 차근차근 준비한 끝에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두툼한 버터를 넣은 앙버터, 인절미를 접목한 호절미, 천안 딸기를 넣은 딸기 호두과자, 보성 녹차를 넣은 말차 호두과자를 선보였어요.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매출은 1.5배 이상 늘었고, 다른 지방에서 이 맛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이 생겼습니다. 매장 손님 기준 예전에는 40대 이상 고객이 70% 이상이었다면, 지금은 젊은 세대가 거의 반을 차지하죠. 조 대표는 요즘 감각에 맞게 리브랜딩도 진행합니다. 기존 학화의 핵심은 유지하되, 브랜드의 정체성이 도드라지도록 디자인을 바꿨어요. 많은 사람이 기념품 혹은 선물용으로 사는 만큼 감각적인 패키지도 중요하다 판단한 거죠.
대전에 성심당 있다면, 천안에는 학화 있다
지난달 26일, 성수동에서 열린 29CM 스위트하우스 팝업은 6곳의 로컬 제과 브랜드를 소개했습니다. 학화호도과자도 그중 하나로 서울에서 처음 팝업에 참여한 건데요. 조 대표는 “천안에만 70여개의 브랜드와 400개의 호두과자 매장이 있다”면서 “우선 본거지에서 입지를 확실히 구축할 계획”이라며 그간 여러 곳의 제안을 마다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한창 학화의 다음을 이야기하는 조 대표에게 로컬 브랜드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단순했어요. “한 마디로 자부심이죠.”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학화호도과자가 지역의 자부심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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