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전라도 사람 대화 방식이 다른 이유 [의사소통의 심리학]

2025. 12. 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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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오해 불러오는 ‘순서 바꾸기’

일본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뭔가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면, 아주 신중하게 ‘하이!’를 연발하며 듣습니다. 그러나 일단 자신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방해받지 않고 할 말은 끝까지 해야 합니다. 중간에 끼어들면, 얼굴이 벌게지며 무척 당황해합니다. ‘마~’ ‘음~’ ‘에~’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이를 대화 분석에서는 ‘순서 유지(turn-holding)’라고 합니다. ‘내 순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대답을 쉽게 안 합니다. 너무 신중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의 속만 터집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20세기 후반, 일본이 경제 강국으로 올라서자 미국 기업들은 앞다퉈 일본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회의실을 나오는 순간, 미국인들은 늘 ‘도무지 소통이 안 된다’며 불만스러워했습니다. 미국인은 질문을 던지는 즉시 상대방의 반응을 살핍니다. 상대방이 전문적이고 유능하다면 즉각적이고 빠른 대답을 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뭔가 잘못됐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질문을 듣고 나면 항상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미국인에게는 상당히 낯선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마(間)의 시간’, 즉 ‘사이의 시간’입니다. 일본인에게 이 시간은 상대에 대한 예의와 신중함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미국인에게는 거절 혹은 무반응의 표현으로 여겨지는 겁니다.

일본 문화에 익숙한 미국의 언어인류학자 로라 밀러(Laura Miller)는 이 불협화음을 ‘순서 바꾸기’의 문화적 차이로 설명합니다. 일본인과 미국인이 대화할 때 서로 다른 시간의 규칙을 따라 움직인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순서 바꾸기를 운용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미국인은 ‘이제 내가 말할 차례’라고 느끼는 순간 바로 이야기합니다(자기 선택, self-selection). 그러나 일본인은 상대방이 발언권을 줄 때까지 기다립니다(타자 선택, other-selection). 순서 바꾸기와 관련된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서로를 ‘소극적이다’ ‘무례하다’고 오해하게 만듭니다.

21대 대통령 선거 결과. 선거 결과는 매번 같은 색깔이다. 선거가 반복될수록 그 옛날 서로 다른 나라였던 백제와 신라 시대로 회귀하는 듯하다. 지역 갈등을 매개로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 세력이 근본적인 문제지만, 일상에서 경험하는 ‘순서 바꾸기의 속도’와 같은 대화 방식의 차이가 타 지역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연합뉴스)
대화의 방식이 다르면 오해는 필연적입니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충청도에서 자랐습니다. 성격상 말이 빠르기는 하지만, 내 말투에는 여전히 충청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당시, 같은 테이블의 부산 친구와 하마터면 멱살 잡고 싸울 뻔했습니다. 처음 접한 부산 사투리에 그 친구가 시비를 건다고 오해한 것입니다. ‘순서 바꾸기’를 연구하다 보니 경상도와 전라도는 전혀 다른 속도의 순서 바꾸기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의 속도’보다도 ‘순서 전환 시간(latency)’의 허용치가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상도 언어의 운율적 특징은 대화의 속도를 빠르게 느끼게 합니다. 군더더기가 없이 아주 경제적인 소통 방식이지요. 그러다 보니 듣는 사람은 빠른 대답을 강요받는 느낌이 듭니다. 반면, 전라도 말은 말끝을 끌거나 늘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리 빠르지 않습니다. 너무 급하게 말을 끊는 것은 무례하거나 성급하다고 오해받기 쉽습니다.

아주 단순한 ‘식사했느냐’는 일상적인 질문에서도 문화 차이는 아주 두드러집니다. 경상도는 ‘밥 묵었나?’ 하며 물어보지만, 전라도는 ‘밥은 먹었능가~?’ 합니다. 질문의 속도가 다르니, 대답의 양상도 달라집니다. 경상도식 질문은 상대방에게 짧고 단정적인 대답을 요구합니다. ‘정말로 식사를 했느냐’는 팩트 체크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라도의 ‘밥은 먹었능가~?’는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경상도 말의 순서 바꾸기는 빠릅니다. 질문과 답변이 짧게 교차하며 대화의 순서가 즉각적으로 바뀝니다. 침묵을 최소화하고 신속한 정보 교환을 우선으로 합니다. ‘효율성(efficiency)’을 중시하는 순서 바꾸기의 리듬입니다. 반면, 전라도 말은 순서 바꾸기가 늘어지며, 일본어의 경우처럼 상대방이 자신에게 발언권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타자 선택’의 형식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관계성(relationality)’을 우선시하는 순서 바꾸기의 리듬입니다.

미국의 사회언어학자 데버라 타넨(Deborah Tannen)은 순서 바꾸기와 관련해 ‘고관여 스타일(High-Involvement)’과 ‘고배려 스타일(High-Considerateness)’을 구분합니다. 경상도는 대화의 공백을 참지 못하고 치고 들어가는 것을 관심의 표현으로 여기는 ‘고관여 스타일’이고, 전라도는 턴과 턴 사이의 여유로운 틈을 예의로 여기는 ‘고배려 스타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넨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화의 방식이 다르면 필연적으로 서로의 의도를 왜곡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영호남의 전혀 다른 ‘순서 바꾸기’ 양상은 단순히 언어 습관의 차이를 넘어, 정치·경제적 이유로 생겨난 두 지역의 오래된 갈등을 더욱 강화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미시적인 일상 대화에서 발생하는 반복적인 불편함과 오해는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적 증거를 끊임없이 축적합니다. 경상도 사람은 ‘답답하고 비협조적’이라고 느꼈던 대화 경험을 통해 ‘전라도 사람은 속을 알 수 없다’는 선입견을 강화합니다. 전라도 사람은 ‘무례하고 독단적’이라 여겼던 대화 경험을 통해 ‘경상도 사람은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다’는 인식을 고착화합니다. 서로의 대화 규범을 이해하지 못해 반복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는 단순한 오해를 넘어 문화적 단절감까지 만들어냅니다. 지역에 기반한 후진적 정치가들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며 즐깁니다. 요즘 같아서는 서로 다른 나라였던 신라와 백제의 단절된 시대로 회귀하는 듯합니다.

침팬지 님 침스키. 1970년대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의 언어 생득론을 반박하기 위한 유인원 언어 학습 프로젝트의 주인공이다.
침팬지는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 없습니다!

20세기 후반, 유인원에게 인간의 소통 방식을 가르치려는 실험이 다양하게 시도됐습니다. 언어는 인간만의 생득적 능력이라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언어 생득론(Language Nativism)’을 반박하려는 실험이 유행한 적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님 침스키(Nim Chimpsky)’ 프로젝트입니다. 유인원 이름 자체가 촘스키를 조롱하는 ‘침스키’입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허버트 테라스(Herbert S. Terrace)는 ‘침팬지도 언어를 배울 수 있다면 촘스키는 틀렸다’를 보여주려는 도발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그러나 허버트 테라스의 연구는 유인원 언어 연구의 흥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프로젝트로 기록됩니다.

처음 몇 년 동안, 테라스는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례들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인 사례가 반복됐습니다. 영상 자료를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며 테라스는 자신의 가설을 뒤집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단호했습니다. “침팬지는 언어를 배우지 않았다. 침팬지가 배운 수화는 단순한 모방과 보상 학습이었을 뿐이다.” 1979년에 실린 그의 유명한 논문 ‘Can an Ape Create a Sentence?’와 같은 해에 출간된 책 ‘Nim’은 유인원의 언어 연구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님 침스키 실험에 대한 테라스의 결론은 아주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침팬지는 인간과 같은 순서 바꾸기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과 같은 언어도 생기지 않는다.’ 님 침스키 실험은 의사소통이 정서조율, 순서 바꾸기와 같은 상호작용의 리듬에 기초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님 침스키 프로젝트’ 40년 후, 테라스는 ‘침팬지에게는 단어를 엮는 능력(구문)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과 마음을 나누려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 결여된 것이 근본 원인이다’라고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주장합니다.

‘정보혁명의 아버지’이자 ‘비트 개념의 발명자’ 클로드 섀넌.
자주 오해를 일으키는 ‘순서 바꾸기’ 개념

사실 ‘순서 바꾸기’라는 개념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다. 두 사람이 말의 순서를 주고받는다는 단순한 그림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용어는 순서 바꾸기가 불과 0.2초 사이에 이뤄진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순서 바꾸기는 서로의 시간을 엮어 만드는 아주 미세한 상호주관적 조율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의사소통을 ‘송신자-메시지-수신자’의 일방적 구조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연재 초기부터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의 자아가 형성된다는 설명을 반복해서 하는 이유는 이 일방적 의사소통 모델을 해체하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 많은 의사소통 모델은 1948년 섀넌의 이론에서 시작돼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이라는 기계적 도식에 기초한 인공지능(AI) 연구까지 변함없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미국 MIT와 벨연구소(Bell Labs)에서 활동했던 클로드 섀넌(Claude E. Shannon)을 수식하는 별명은 많습니다. ‘정보이론의 창시자’ ‘디지털 시대의 뉴턴’ ‘정보혁명의 아버지’ 등. 그러나 가장 의미 있는 표현은 ‘비트(bit) 개념의 발명자’입니다. 섀넌은 1948년에 발표한 논문 ‘의사소통의 수학적 이론(A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에서 정보의 최소 단위를 ‘비트’로 정의합니다. 당시 정보는 잡음이 섞일 수밖에 없는 전선을 통해 전달됐습니다. 섀넌은 잡음을 다루기 위해 통신을 ‘송신자-송신기-채널-수신기-수신자’라는 선형적 단계로 분해했습니다. 그리고 불확실성을 측정하는 정보의 기본 단위를 비트로 정량화해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비트’ 개념이 디지털 혁명의 토대가 되어, 오늘날 인터넷과 AI를 가능케 했던 것입니다.

정보를 0과 1이라는 비트 단위로 정량화하려는 섀넌의 혁명적인 발상은 역설적으로 의사소통의 본질을 소음으로 제거하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섀넌에게 중요한 것은 메시지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구성되는 의미가 아니라, 정보의 정확한 ‘전송(Transmission)’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의사소통은 두 사람이 공유하는 과정이 아니라, 파이프라인을 통과하는 물건처럼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데이터의 이동으로 정의됐습니다. 이 완벽한 수학적 모델은 오늘날 인터넷과 통신 혁명을 가능케 한 토대가 됐지만, 동시에 인간의 대화를 발신자와 수신자가 정보를 주고받는 ‘입력과 출력’의 과정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거대한 오해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 보여주는 놀라운 언어 구사력은 언뜻 보기에 완벽해 보이지만, 그 본질은 섀넌이 설계한 정보처리의 확률적 통계 연산에 불과합니다. AI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수만 차원의 가상공간에 벡터화해 그 숫자들 사이의 수학적 확률을 계산할 뿐입니다. 이 시스템에서 상대방의 언어는 처리해야 할 ‘프롬프트(prompt)’로 환원될 뿐입니다. 도대체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지식을 쏟아내는 AI지만, 0.2초의 시간을 두고 서로의 감정과 의도를 조율하는 상호주관적 의미 구성 과정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AI 기술은 섀넌의 유산 위에 정보 전송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지만, 인간이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며 만들어가는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은 결코 흉내 낼 수 없습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8호 (2025.12.10~1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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