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설마했는데..." 역대급 수능 '불영어'에 교사도 분통

신정섭 2025. 12. 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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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교실 현장에선, 1등급 10%는 나와야... "TF 구성하여 영어 문항 난이도 근본 대책 마련해야" 지적

[신정섭 기자]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4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와 관련 총평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설마 설마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진짜 '뜨악'이었다!"

아이들이 수능 성적표를 받은 지난 5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대전의 한 고등학교 영어 교사는 기자의 전화를 받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올해 3학년 부장을 맡은 그는 "이번에 4명이 의대에 지원했는데 모두 최저학력기준을 못 맞췄다"라며 "영어 1등급 비율이 작년처럼 6%만 넘겼어도 이런 재앙은 없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공개한 2026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에 따르면, 영어 영역 응시생 48만7천여 명 중 원점수 90점 이상 1등급을 받은 인원은 1만5천여 명으로 전체의 3.11%에 불과했다. 지난해 6.22%의 딱 절반이다. 수시 최저학력기준을 못 맞춘 수험생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3.11%는 영어 영역에 절대평가가 도입된 2018학년도 수능 이후 가장 낮을 뿐만 아니라, 9등급 상대평가 과목의 1등급 비율인 상위 4%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수험생의 과잉학습 방지, 사교육 완화, 학교 교육과정 정상화 등을 목표로 도입한 절대평가의 취지가 심각히 훼손되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능 출제관리를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안일한 인식이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오승걸 평가원장은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절대평가 취지와 의도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면서, "사설 모의고사 문제지 등을 분석하고 문항을 교체 및 검토하는 과정에서 난이도를 면밀히 살피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난이도 조절 실패의 책임을 사교육 업체 등에 떠넘기는 듯한 발언이었다. 수능 검토 경험이 있는 한 고등학교 교사는 "(현장 교사들로 이뤄진) 검토 위원의 주된 임무가 사설 모의고사 및 문제집에 유사 지문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라며, "해마다 반복되는 출제 로드맵을 핑계 삼는 것은 궁색한 변명으로 보인다"라고 일갈했다. 이어 "검토 위원의 (난이도 관련) 의견을 평가원과 출제위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1등급 6∼10%가 적정 난이도?
▲ 수능 영어 1등급 비율 추이 절대평가로 치르는 수능 영어영역 1등급 비율이 아홉 번 중 두 번을 빼고는 8%에도 못미쳤고, 급기야 2026학년도 수능에서는 3.1% 수준으로 떨어졌다.
ⓒ 신정섭
오승걸 평가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영어 1등급은 6~10% 내외가 나왔을 때 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이 시험을 준비하는 데 무리가 없다"라고 언급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는 교육측정·평가 및 통계 전문가가 많으므로 그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발언한 것으로 보인다.

학교 현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난해 영어 1등급 비율이 6.22%였는데, 수험생이 7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풀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적잖은 교사들이 (위 그래프에 초록색 선분으로 표시한 것처럼) 최소한 8% 이상은 나와야 절대평가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1등급 비율이 10%를 살짝 넘긴 2018학년도(10.03%), 2021학년도(12.66%) 시험이 외려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역대급 '불수능'으로 기록된 올해 수능 영어 문항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속칭 '킬러 문항'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4백 건 이상의 이의신청이 쏟아진 24번 제목 추론 문항에서 볼 수 있듯이, 선지를 헷갈리게 구성하여 수험생의 시간을 뺏는 문항이 많았다. 독해력을 측정하기보다 '함정'에 빠지지 않는 능력을 재는 듯했다.

수능 영어의 난이도를 적정하게 유지하려면 (수학 영역처럼) 쉬운 문항과 어려운 문항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여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갖춘 학생들이 무난하게 풀 수 있는 상대적으로 쉬운 문항이 상당수 존재해야 1등급 10% 비율이 나올 수 있다. 해당 문항에서 아낀 시간을 3점짜리 어려운 문제에 투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사립대 영문과 교수는 "절대평가는 검사 도구의 동등성 보장을 위해 일정한 수준으로 난이도가 유지되어야 한다"라며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TF(전담팀)라도 구성하여 수능 영어 문항의 난이도 관련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영어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 그에 따라 국어, 수학, 탐구 등에 풍선효과만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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