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왜 지금 ‘우뇌경제’인가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5. 12. 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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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 만능주의 ‘좌뇌경제’ 이미 한계에
‘정답 없는 시장’에선 ‘우뇌경제’가 살길

지금까지 한국 기업은 분업과 효율성을 중심에 둔 제조업 기반 성장 전략으로 고도 성장을 일궜다. 핵심성과지표(KPI)·투자수익률(ROI)·속도를 특징으로 한 이런 속성은 좌뇌에서 비교우위를 보이는 기능으로 평가된다. 학계에서는 좌뇌가 우세한 경우 논리적이고 현실 지향적이며 계획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한다. 반면, 우뇌가 우세한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이상을 좇으며 혁신을 추구하는 특성을 갖는다고 진단한다. ‘정답이 정해진 시장’에서 범용 제품을 찍어내던 시절에는 효율성을 좇는 좌뇌형 성장 공식이 잘 들어맞았다. 지금은 경영 환경이 180도 달라졌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산업 질서가 재편되는 국면에서는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 즉 우뇌형 사고방식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제조업식 좌뇌경제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혁신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효율성 등 좌뇌 기반 경쟁력에 우뇌경제 요소를 접목할 때 한국 경제의 질적 도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 주력 산업은 예측 경영이 가능하던 시절 범용 제품에 특화한 중앙집중적 생산 구조로 눈부신 성장을 일궜다. 계열사 간 수직계열화로 생산 플랫폼을 공유하며 비용 절감과 점진적 기술 혁신을 좇았다. 수년 전부터 범용 제품에 특화한 기존 성장 공식은 금이 갔다. 학계에서는 이를 ‘좌뇌경제(계획·효율 중심)’와 ‘우뇌경제(위험 감수·이상 추구·혁신 등)’ 프레임으로 진단한다. 범용 제품 시대 종언과 인공지능(AI) 확산 등으로 한국이 강점을 가졌던 ‘좌뇌경제’ 경쟁력이 무력화되는 추세가 뚜렷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효율성 중심 좌뇌경제 성장 모델이 한계를 노출한 만큼, 우뇌경제를 접목해 고부가 신산업으로 구조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범용 제품 시대 종언과 인공지능(AI) 확산 등으로 한국이 강점을 가졌던 ‘좌뇌경제’ 경쟁력이 무력화되는 추세가 뚜렷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지난 11월 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로보월드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관람객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연합뉴스)
좌·우뇌 기능 편향

우뇌, 창의·혁신 기능 활발

학계에 따르면, 좌뇌와 우뇌 사이 명확한 분업은 존재하지 않지만, 특정 기능의 편향은 관찰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현대 신경과학(Neuroscience)은 뇌 기능이 좌·우처럼 국지적인 영역에서 단절된 채 작동하는 게 아니라 좌·우뇌를 동시에 동원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좌·우뇌 사이 완벽한 분업(Separation)은 근거가 없다는 게 일치된 견해다.

그럼에도 학계에서는 ‘기능적 편향(Specialization)’에 중점을 둔 연구가 활발했다. 대체로 좌뇌가 언어·분석·규칙 기반 처리에 비교우위를, 우뇌가 공간·직관·상상·은유·통합적 판단에 비교우위를 보인다는 것이다.

가령, 무스타파 일마즈 튀르키예 네지메틴 에르바칸대 교수 논문(Investigation of Human Brain in the Relationship between Entrepreneurship and Economic Growth·2023년)에 따르면, 우뇌는 직관·상상·감성·공간 인지에 강점을, 좌뇌는 언어·분석·규칙 기반 사고에 강점을 보인다. 이 논문에서 일마즈 교수는 우뇌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뇌 영역으로, 우뇌가 지배적인 개인은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가적 성향이 강하다고 결론 내린다.

학계를 중심으로 뇌 기능 차이와 기업가정신, 그리고 경제성장에 관한 연구가 활발한 것은 ‘좌뇌 기반 효율성’보다 ‘우뇌 기반 창의력·혁신성’이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단 분석이다. AI 기술 고도화로 ‘피지컬 AI’ 대중화를 바라보는 시점에 기존 좌뇌형 성장 모델로는 세계 경제가 이전 세대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성장을 이룰 수 없을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한국이 딱 들어맞는 사례다. 한국 주력 산업은 ‘기능·효율’ 중심 좌뇌 경쟁력으로 고도 성장을 일궜다. 그러나 경영 환경 변화로 산업 질서가 재편되는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 Point)’과 맞닥뜨리자 한계를 노출했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미세공정·수율은 여전히 핵심 경쟁력이지만, 새 부가가치는 칩 아키텍처 설계 능력에서 갈린다. 특히, AI 반도체 같은 고객 맞춤형 칩(Customized Chip)은 커스텀 비즈니스에 해당한다. 시스템 반도체나 팹리스, 파운드리 등에서 반도체 밑그림을 설계하고 이를 고객 요구에 맞춰 양산 가능하도록 공정 프로세스를 재규정하는 등 고도의 설계 역량이 요구된다.

자동차와 가전 산업도 경쟁 규칙이 변하고 있다. 완성차 산업에선 내연기관 기술·주행 성능 경쟁은 한계에 도달했다. 자율주행이 상용화하면 기술 그 자체보다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어떤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느냐가 모빌리티 핵심 경쟁력이 된다는 게 이견이 없다. 가전 산업도 글로벌 시장에서 고부가가치를 확보하려면 라이프스타일 기반 경험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창업 생태계에도 우뇌경제 접목이 요구된다. 일마즈 교수의 창업가-비창업가 비교 연구에 따르면, 창업가는 일반인보다 우뇌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는 우뇌 발달과 적극적 활용이 창업 행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韓 경제, ‘좌뇌경제’ 몰두

규제 체계부터 확 바꿔야

그러나, 한국 경제는 여전히 계획·효율성 중심 좌뇌경제에 최적화된 시스템에 갇혀 있다.

정부 규제가 대표적이다. 우리 규제 시스템은 아직도 ‘포지티브(Positive)’ 방식에 얽매여 있다. 이는 법에 사업 가능한 항목을 열거하고 이외 애매한 영역은 모두 금지하는 형태다. 포지티브 규제는 한국 산업이 정부 주도로 빠르게 성장하며 예측경영이 가능했던 시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실험이 본질인 우뇌경제에는 구조적으로 맞지 않는다. 콘텐츠, 플랫폼, 소프트웨어, IP 산업 같은 우뇌경제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Learning by doing’을 통해 성장한다. 현재 규제 환경에서는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때마다 사전 승인·별도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규정에 명시되지 않은 모델은 시도조차 어렵다. 혁신 속도를 크게 떨어뜨리고 위험 감수형 아이디어가 싹트는 것조차 가로막는다. ‘네거티브(Negative)’ 규제 전환 목소리에 힘이 실린 이유다. 이는 포지티브 규제와 반대로 안 되는 것만 빼놓고 다 허용하는 형태다.

전문가들은 ‘우뇌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네거티브 중에서도 ‘포괄적 네거티브’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규제 대상이더라도 신제품과 신기술의 경우 일단 지켜보고 필요하면 사후 규제하는 방식이다. 가령, 새로운 콘텐츠 포맷, 실험적 플랫폼 모델, 데이터 기반 신사업 등은 사전 규정이 존재할 수 없다. 시장에서 먼저 실험이 일어나고 문제가 확인되면 사후 규제로 조정하는 방식이 자리 잡아야 속도감 있는 우뇌경제 확산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우리 기업도 자성할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과거 산업화 시대 관성이 여전히 뿌리 깊다는 평가가 많다. 국내 대부분 기업은 핵심성과지표(KPI)·투자수익률(ROI)·속도 중심으로 대부분 의사결정을 내린다. 제조업 중심 경쟁력 구조는 혁신보다 안정성을 좇도록 설계돼 있다. 이런 조직 운영 방식은 ‘정답이 있는 시장’에서는 강력하지만, ‘문제를 새로 만들어내는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우뇌경제에 기반을 둔 콘텐츠 등 신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K콘텐츠는 세계 최고 수준 팬덤 경제를 구축했다. 엔터 → 팬덤 → IP → 커머스 → 금융으로 이어지는 통합적인 가치사슬은 한국이 가진 우뇌경제 핵심 경쟁력으로 평가된다. 초고속망·모바일·온라인 소비 생태계 등도 우뇌경제 핵심 경쟁력으로 지목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잡한 규제 환경에서는 신사업이 제대로 육성되기 힘들다. 규제의 큰 틀을 포지티브가 아닌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속도와 실험이 목숨과도 같은 AI 산업에서 규제가 앞서면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7호 (2025.12.03~12.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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