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성과급, 왜 행정직이 더 가져가나”···ETRI 연구직·행정직 갈등 확산
‘우수 연구자’ 재정의 등 타협점 찾겠다지만
연구직 직원들 반발 거세 갈등 장기화 전망

반면 행정직은 “임금 보전을 위해 이어져온 일종의 관행”이라는 입장이다. 연구수당이 연구직에 돌아가는 만큼 개발능률급은 행정직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단 의미다. ETRI 측은 노사협력회의 등을 통해 타협점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갈등의 골이 깊어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란 시선이 지배적이다.
‘연구 독려’ 위한 돈인데…
초임 성과급 행정직>연구직
연구직이 문제삼는 부분은 ‘성과급 역전’이다. 연구직보다 행정직이 받아가는 성과급이 더 많다는 지적이다. 기초과학 발전이라는 정출연 설립 목적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ETRI 등 정출연 성과급은 크게 연구수당과 개발능률급으로 구분된다. 연구수당은 말 그대로 연구 과제·사업에 참여한 ‘연구원’을 대상으로 지급되는 비용이다. 공헌도를 평가해 인건비(직접비)의 일정 비율(최대 20%)만큼 지급한다. 개발능률급도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 고취가 궁극적 목표다. 이를 위해 ‘우수한 연구자’와 ‘연구지원인력’에게 지급하는 성과급이다. 일반적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 중 ‘간접비’ 총액의 10% 내외가 재원이 된다. 간접비는 연구과제 수행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고 기관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의미한다. 앞서 ETRI가 11월 27일 개발능률급 관련 내부 직원 설명회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ETRI는 평균적으로 간접비의 6.5%를 개발능률급으로 활용했다.

이렇다 보니 행정직 총 성과급이 연구직(연구수당・기술료 포함)을 넘어서는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초임일 수록 차이가 확연하게 벌어졌다. ETRI를 포함한 정출연은 원급-선임급-책임급 구조로 이뤄진다. 원급에서 책임급으로 성장하는 형태다. 지난해 원급 연구직 총 성과급(연구수당・기술료・개발능률급 등)은 인당 1743만원이다. 같은 기준 원급 행정직 총 성과급은 1883만원이다. 기술이전 계약 체결시 제공되는 기술료 등 일시적 항목을 제외한 연구수당과 개발능률급만 놓고 보면 격차는 더 크다. 지난해 원급 연구직의 연구수당+개발능률급 합산액은 인당 1417만원이다. 반면 원급 행정직은 1727만원이다.
선임급도 마찬가지다. 선임급 연구직 연구수당+개발능률급 합산액은 인당 1719만원이다. 선임급 행정직(1967만원)은 물론이고 원급 행정직보다도 적다. 익명을 요구한 ETRI 선임급 연구원 A씨는 “원급은 30대 초임 직원들이 대부분이고 선입금은 40대 직원들”이라며 “3040 젊은 연구원들의 박탈감이 엄청나다. 이들은 정출연 연봉이 기업보다 낮다는 점을 알고도 연구개발 사명감으로 들어온 이들인데, 엑소더스(대탈출)를 부추기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행정직 수급은 ‘관행적 성격’
과거 정치권 판단도 한몫해
개발능률급이 행정직에 쏠리는 현상을 두고 ETRI 행정직 측은 ‘일종의 관행’이라고 설명한다. 연구수당은 대부분 연구직에 지급되는 만큼 그동안 개발능률급은 행정직에 ‘연봉 보전’ 성격으로 배분됐다는 의미다. 11월 27일 발표 직후 연구원 A씨는 “발표에선 행정직 연봉 보전의 성격이 짙다는 뉘앙스였다”며 “해당 성과급은 절대 그러라고 만들어진 수당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직원은 지급 기준을 두고도 비판을 쏟아냈다. ETRI는 연구직의 경우 ‘우수한 연구자(우수연구 성과기여자・업무파견 기여자・우수실적 포상자) 대상으로만 개발능률급을 부여한다.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수급자도 많지 않다. 지난해 기준 전체 대상자(457명) 중 연구직은 70명에 불과했다. 반면 연구지원인력은 사실상 모든 직원이 대상이다. 구체적으로 기획・행정・대외협력・감사・사업화 소속 직원 중 연구수당 미지급 인원에 지급된다.
행정직은 이 같은 관행적 배분 방식이 과거 국회 판단에서도 문제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ETRI 직원 설명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결산 검토보고서에서 “연구인력의 경우 연구수당과 연구개발능률성과급을 함께 지급 받을 수 있으나, 지원인력은 연구수당 수령이 불가능하므로 지원인력에게 연구개발능률성과급을 더 많이 지급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갈등이 커지자 ETRI 측은 연구직과 행정직간 타협점 찾기에 나섰다. ETRI 인적자원부문 관계자는 “11월 27일 발표에서 향후 조정 계획 등도 밝히려 했지만, 상황상 제대로 안내가 되지 않았다”며 “노사협력회의뿐 아니라 분기별 정기회의에서도 관련 이슈를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TRI 측은 노사 협의를 통해 개발능률급 지급 대상 중 ‘우수 연구자’ 조건을 재정의하고 개발능률급 지급 비중을 조정할 방침이다. 현재 9대 1 수준인 지원업무 수행자(행정직 등)과 연구직 개발능률급 비중을 7대 3 정도까지 개선하는 형태가 유력하다.
다만 이를 연구직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ETRI 선임급 연구원 B씨는 “연구원의 유일한 수익원인 과제 수주는 연구직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연구 역시 연구직이 맡고 있는 상황”이라며 “‘연구 고취’를 위한 성과급을 7대 3 수준으로 나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설명했다.
타 기관도 ETRI 행보 주목
“정출연 고질적 문제점”
ETRI에서 시작된 연구직과 행정직간 갈등은 다른 정출연까지 퍼지는 모양새다. ETRI의 직원 설명회 발표 자료를 통해 다른 연구기관의 개발능률급 배분 비중도 공개됐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출연 관계자는 “10년 넘게 다닌 책임급 연구원들조차도 몰랐던 내용”이라며 “상당수 연구원 개발능률급이 행정직 등에 쏠린 구조로 불합리한 조치”라고 말했다. ETRI는 발표 자료에서 “다른 기관도 유사한 상황”이란 점을 밝히기 위해 지난해 기준 23개 연구기관의 개발능률성과급 배분 비중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일부 연구기관은 개발능률급의 1%만 연구직에 배분됐다. 23개 연구기관 평균치는 연구직(11.2%), 지원업무 수행자(88.8%)였다.

연구과제 중심 운영제도(PBS)가 문제의 근원이란 지적도 나온다. 계약 연봉은 낮고 성과급이 중요한 구조인 탓에 성과급이 사실상 ‘임금 보전’ 역할로 인식돼 직종간 갈등이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내년을 시작으로 단계적 PBS 폐지를 선언했지만 구체적인 시행 방식이나 개선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개선안에 연구직들의 의견이 담기지 않고 있단 불만이 쏟아진다. 공공과학기술연구노조에 따르면 조합원 6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에서 응답자의 90%가 “의견 제출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과반이 “기본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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