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편에 서는 사법부, 탱크보다 더 위험하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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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돌프 히틀러가 1923년 11월 뮌헨의 ‘비어홀 쿠데타’ 사건으로 수감되었다 석방된 직후 나치의 전신인 바이에른 국가사회주의당을 방문한 모습. |
| ⓒ 위키미디어 공용 |
히틀러는 이 사건으로 국가 전복을 시도한 반역죄로 기소되었는데, 법원은 형식상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실제 복역은 고작 9개월 남짓에 그쳤고, 그 9개월 동안 감옥은 참회의 공간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도약대, <나의 투쟁> 집필실로 변했다. 내란의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했을 감옥 문이 결과적으로는 파시즘을 위한 집필실과 출세의 통로가 된 셈이다.
당시 판결문에는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노골적인 문장은 없었다. 그러나 내란 시도를 "잘못된 열정"쯤으로 격하해 다룬 이 판결은, 법원의 직무 유기이자 공범 선언에 가까웠다. 총은 거리에서 막혔지만, 법정이 히틀러를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떠밀었고, 그 순간 바이마르 헌정은 이미 무너질 운명을 선고받고 있었다.
이 역사적 장면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내란과 쿠데타를 심판하는 법정은 피고인의 형량만 정하는 곳이 아니다.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계속 지킬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여기서 포기하겠다는 서명을 하는지 세계 앞에 드러내는 자리다. 그 순간 판사는 단순한 법 적용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생사에 서명하는 사람이다.
오늘 세계 곳곳에서 법원은 같은 기로 앞에 서 있다. 어떤 법원은 탱크와 맞서 서고, 어떤 법원은 탱크가 필요 없도록 내란 세력의 길을 대신 닦아준다. 모두가 "법에 따라" 판결했다고 말하지만, 역사와 시민은 이미 한쪽을 헌법의 마지막 보루로, 다른 한쪽을 내란의 조력자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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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1일(현지시간) 브라질 브라질리아의 연방대법원에서 전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등에 대한 쿠데타 미수 재판이 열리고 있다. 보우소나루는 민주적 질서에 대한 음모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7년 3개월을 선고받았다. |
| ⓒ EPA 연합뉴스 |
이 과정의 정점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판결이다. 브라질 연방대법원 1부는 자이르 보우소나루에게 군사 쿠데타 모의와 민주주의 파괴 혐의로 징역 27년 3개월 형을 선고했고, 이 형은 상급심을 거쳐 집행 단계에 들어갔다. 쿠데타 음모를 "정치적 과잉"이나 "집회와 표현의 자유의 일탈"이 아니라, 헌정질서 자체에 대한 범죄로 명확히 규정한 것이다.
브라질 법원이 역사 전체를 통틀어 늘 모범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점 하나만큼은 분명해졌다. 국가 전복 시도와 헌법 유린 행위 앞에서 사법부가 선택해야 할 것은 사정과 이해가 아니라, 민주주의 공동체 전체를 향한 책임 있는 단호한 선고라는 사실이다.
헌정이 위협받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탱크가 직접 등장했고, 어떤 곳에서는 군복이 아니라 판결문이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든, 사법부가 그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각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되었다.
태국의 사법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1997년 새 헌법 이후 태국 헌법재판소는 타이락타이당과 국민권력당처럼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 연계된 정당들, 그리고 군부와 왕실 권한에 도전한 개혁 성향 정당들을 잇달아 정치 무대에서 퇴출시켜 왔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는 "유권자가 투표로 선택한 힘을 판결 한 번으로 지워버리는 장치"라는 평가를 감수하고 있다.
2024년 8월에는 총선에서 최다 의석을 얻은 무브포워드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정당 지위를 잃고, 지도부 다수가 10년간 정치 활동을 금지당했다. 군과 왕실 권한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법원이 유권자의 선택을 지키기보다 권력 엘리트의 지위를 지키는 편에 섰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선거는 계속 열리지만, 최종 결정은 투표소가 아니라 법정에서 내려지는 정치 질서가 고착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더 노골적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958년 '도쏘 사건'에서 파키스탄 대법원은 한스 켈젠의 이론을 빌려 "성공한 혁명은 새로운 법질서"라는 논리를 받아들이고, 첫 군사 쿠데타와 계엄령을 합법으로 인정했다. 이른바 "필요의 법리"라는 이름 아래 군부의 헌정 파괴가 법원 판결로 정당화된 것이다.
이 판결은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1958년 계엄령 정당화는 이후 반복되는 군사 개입의 판례가 되었고, "정치가 불안정하니 군부 개입도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사법부 안에서 오랫동안 힘을 얻었다. 쿠데타 세력은 탱크를 내보냈고, 법원은 그 탱크에 합법이라는 장식을 달아주었다.
칠레의 경우에는 사법부의 두 얼굴이 시간차를 두고 드러났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 시절, 칠레 사법부는 광범위한 실종, 고문, 학살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했고, 군부의 인권 범죄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1978년 제정된 군부의 자기 사면법과 결합하며, 법원은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공범"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상황은 서서히 달라졌다. 칠레 법원은 수백 건의 인권 범죄 사건에서 군, 비밀경찰 책임자들에게 장기 실형을 선고했고, 지금도 피노체트 체제의 가해자들이 일반 교도소나 특별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에게 부여된 특혜 수감 시설을 해체하고, "인권 범죄에 특권은 없다"는 방향으로 제도를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이 네 나라에서 법원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브라질과 칠레에서는 사법부가 탱크와 독재의 상흔을 거친 뒤, 적어도 일정 부분 민주주의를 방어하거나 회복하는 쪽으로 몸을 옮겼다. 반대로 태국과 파키스탄에서는 법원이 군부와 권력 엘리트의 입장을 법의 언어로 왜곡해 판결문을 권력의 변명서로 바꾸어 놓았다. 그 아래에서 선거와 헌정은 껍데기만 남았고, 민주주의는 법원의 이름을 빌려 뒷걸음질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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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2일(현지시간) 브라질의 브라질리아에서 쿠데타 시도 혐의를 받는 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노동당 지지자들이 거리에서 환호하고 있다. |
| ⓒ AFP 연합뉴스 |
거리에서 실패한 내란이 법정 안에서 계속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시계는 이미 뒤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총은 눈에 보이는 폭력이지만, 타락한 판결문은 제도 안에서 진행되는 조용한 내란이다. 탱크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란 세력과 시민 사이에서 중립을 가장하면서 실질적으로 내란의 편에 서는 사법부다.
내란 시도 세력을 엄벌하는 것은 국가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일이 아니다. 모든 시민이 자기 표를 지키기 위해 국가에 맡겨둔 마지막 안전장치를 작동시키는 일이다. 이 안전장치 작동을 거부하는 사법부는 미래 세대의 민주주의를 볼모로 잡는 것이다. 그 순간 법원은 자기 정신과 양심을 권력 앞에 내어주고, 민주주의를 흥정의 대상으로 내모는 정신의 매춘에 가까운 자리에 선다.
히틀러 재판에서 우리는 이미 한 번 보았다. 쿠데타 주역에게 "잘못된 열정" 정도의 형량을 부여한 관용은, 결국 의회와 선거를 통해 완성된 독재로 이어졌다. 그때 법원은 탱크를 멈춰 세운 것이 아니라, 탱크가 다시 나올 수 있는 길을 정리해 준 셈이었다.
반대로 브라질에서 법원은 논란과 압력을 감수하면서도 쿠데타 기도자에게 27년 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한 사람의 운명만 바꾼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뒤엎으려는 시도에는 국가가 여기까지 간다'는 기준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 방조와 침묵, 그리고 책임을 끝내 회피하는 법의 결정들이 민주주의를 갉아먹는다. 역사는 총을 든 자의 이름만 기록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법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건네준 자들의 이름도 함께 적어 넣는다.
법원이 탱크보다 위험해질 때, 그 나라는 더 이상 내란을 막연한 가능성으로 말할 수 없다. 그때부터 내란은 제도의 일부가 되고, 그 나라의 DNA에 깊이 새겨진다. 비루한 판결들은 그 병든 구조를 떠받치는 나사와 못이 된다. 그 나라는 결국 법원 스스로 선택한 결말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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