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음식과 약] 스트레스에 대한 치명적 오해

우리는 스트레스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흔히 스트레스라고 하면 직장 상사의 잔소리나 입시 압박 같은 정신적 부담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생물학에서 말하는 스트레스의 범위는 훨씬 넓다. 내 몸의 생존 균형, 즉 항상성을 깨뜨리는 모든 자극이 곧 스트레스다.
그러니 시험이나 인간관계만 스트레스가 아니다. 수면 부족, 감기 바이러스의 침입, 수술, 겨울철 매서운 추위도 몸에는 강력한 스트레스다. 몸은 이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코르티솔 같은 방어 호르몬을 쏟아내며 사투를 벌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한 해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연말 파티는 조금 모순적이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기름진 음식으로 잠시 즐거울지 모르지만, 오장육부의 입장에서 연말 회식은 가혹한 신체적 스트레스의 현장이다. 특히 추운 날 과식은 몸에 커다란 부담을 주는 행동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 모임에서의 과식은 신체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부른다. [중앙포토]](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4/joongang/20251204000950907fzjg.jpg)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겨울의 낮은 기온은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높인다. 몸은 추위라는 스트레스와 싸우느라 교감신경이 잔뜩 날 서 있는 상태다. 여기에 고지방·고칼로리 안주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면 몸의 부담은 더 커진다. 소화를 위해 위장으로 가는 혈류가 크게 늘어나고, 동시에 체온을 유지하고 전신에 혈액을 순환시키기 위해 심장은 더 빠르고 강하게 뛰어야 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한 번의 과식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성질환자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무리해서 일하는 심장 근육에 평소보다 더 많은 산소와 혈액이 필요한데, 이미 좁아진 관상동맥 탓에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심장에 탈이 나는 것이다. 미국심장협회(AHA)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과식 후 2시간 동안 심근경색(심장마비) 위험이 평소보다 약 4배나 높아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17개 연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격렬한 신체 활동, 식사, 정서적 스트레스가 심근경색을 유발하는 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과식은 정신적 스트레스나 격렬한 운동처럼 심근경색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 운동 부족, 흡연과 같은 위험요인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위험하다.
여기에 술까지 더해지면 대사적 스트레스가 완성된다. 간은 알코올이라는 독소를 분해하기 위해 다른 대사 기능을 미루고 비상 체제에 돌입한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신 술이 간에는 야근을 넘어선 철야 근무를 종용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송년회를 모두 취소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몸이 겪을 스트레스의 총량을 줄여줄 수는 있다. 천천히 여유를 두고,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부터 먼저 먹으면 포만감을 늘리고 과식을 피할 수 있다. 술잔은 줄이고 대화는 늘리자. 모쪼록 연말 모임이 몸과 정신에 모두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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