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이제는 국가도 ‘내로남불’인가

원래 국가는 해도 되지만 국민은 하면 안 되는 일은 많다. 빚을 안 갚는다고 제3자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면 개인은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지만, 국세청은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 공개 제도를 정의의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일에는 정도가 있다. 어디까지나 공동체 유지에 득이 된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뒤엔 이런 원칙이 무너지는 모양새다. 어떤 근거로 그렇게 하는 건지 모를 일이 늘고 있다.
비등한 예가 돈을 빌리는 일이다. 좋은 집에 살고 싶어하는 개인의 욕망은 대출 봉쇄로 막으면서 현 정부는 돈을 마구 빌려대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55조원)로 증액한 새해 예산안이 통과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1.6%로 사상 처음 50%대에 진입하게 됐다. IMF 등 국제기구가 가파른 국가채무 상승에 경고음을 보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해외 투자는 어떤가. 국민연금이 해외 주식 투자를 92% 늘리는 동안 ‘서학 개미’는 74% 늘렸는데도, 고환율의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쿨해서” 한다는 비아냥에다가 세금 협박까지 한다. 초강대국 미국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매년 200억 달러(약 30조원)씩 현금 2000억 달러를 미국에 주는 협상을 매듭지은 담당자들은 자화자찬하기에만 바쁘다.
![지난 8월 구윤철 경제부총리(왼쪽)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은행에서 만난 모습. [뉴스1]](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4/joongang/20251204000742569qfjo.jpg)
치솟고 있는 물가도 그렇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물가 관리에 총력을 다하겠다”며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불공정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는데, 민생회복지원금(소비 쿠폰)을 뿌리고 국채를 발행해 적자 재정을 해서 물가를 올린 사람은 정작 누구인가. 명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행정고시 재경 직렬에 합격한 분들이 경제원론 수준의 원리를 모를 리는 없지 않은가.
산업 현장에서 사고가 나도 마찬가지다. “건설면허 취소 방안을 찾으라”는 대통령의 서슬 퍼런 지시에 사망 사고가 난 민간 회사는 현장소장부터 대표이사까지 모두 사표를 썼지만, 코레일 사망 사고에도 국토교통부 장관은 혼내는 역할만 한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엔 대통령이 또다시 나섰지만,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가 시스템이 멈춘 사고엔 행정안전부 장관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원래 인간이란 남은 추상 같이 대하고, 나는 춘풍처럼 대하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내로남불이 사자성어처럼 굳어졌을까. 하지만 국가가 이래선 안 된다. 국민에겐 너그러워도 국가 스스로는 엄격해야 하지 않나. 그렇지 않고 반대로 간다면 그건 전체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허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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