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첩사의 눈물, 여인형의 메모...윤석열은 빠져나갈 수 없다

박소희 2025. 12. 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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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배신 ⑫] 계엄 후 1년, 쏟아진 증언과 증거... 내란우두머리에겐 사형 또는 무기징역뿐

[박소희 기자]

 국군방첩사령부
ⓒ 국방부
국군방첩사령부. 1948년 5월 조선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로 출발한 이래 군 보안과 방첩, 범죄 수사를 도맡아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보호'를 최고의 사명으로 하는 부대다. 그러나 역사의 굴곡마다 방첩사는 보안사, 기무사라는 이름으로 절대권력이자 공포정치의 일원으로 군림하며 '정치군인'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가장 반하는 12.3 비상계엄의 주역을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도맡으면서, 방첩사는 또 한 번 치욕의 역사를 남겼다.

법정에 증인으로 선 방첩사 군인들은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1월 28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의 재판에서 배정효 전 지휘협력과장(중령)은 눈물을 흘렸다.

"비상계엄이 발생한 다음 1년 동안 방첩사 부대원들이 정말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하... 방첩사 부대원들은 이른 시일부터 여인형 사령관에게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렸고, 출동 명령을 받고도 포고령을 무시하거나 한강과 편의점 등을 배회하면서 비상계엄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비상계엄을 발령한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실망스럽고 배신감을 느끼는 부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큰, 짙은 그늘에 가려서 방첩부대원들이 했던 정의로운 행동과 올바른 판단들이 가려지고 매도되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다."

항변과 자백

유재원 전 사이버보안실장(대령)은 11월 10일 윤석열씨 재판에서 "방첩사 내부에서도 불법계엄에 저항한 세력이 있었다는 게 기록에 남겨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태주 전 정보보호단장(대령) 역시 11월 13일 "선관위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던 것은, (정성우) 1처장이 임무를 하달할 때 실장들이 전부 다 위법성과 문제점을 제기해서 법무검토를 하도록하고, 이로 인해서 최초의 '선관위 확보'라는 임무를 '이동하되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변경시킨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모두 '방첩사의 선관위 부정선거 의혹 수사는 적법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문제의 지시를 내린 여인형 전 사령관조차 '부정선거 의혹 수사'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윤씨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첩사는 그런 권한이 없다.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그거는 방첩사 업무가 아니다.

'체포조' 인식도 다르지 않았다. 김대우 전 수사단장(준장)은 11월 28일 김용현 전 장관 재판에서 계엄 당일 이재명·한동훈 등 주요인사 14명을 불러주며 출동하라는 여인형 전 사령관의 지시에 "약간 체포의 뉘앙스가 있었다"며 "합수단이 구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첩사) 수사관들만 이동시키는 것은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절대 단독행동하지 말고 경찰과 같이 움직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이재명 체포조'와 '한동훈 체포조'를 맡은 소령들은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속도를 줄이거나 국회 인근에서 시간을 끌다가 계엄 해제 후 부대로 복귀했다.

방첩사 부대원들 스스로 선관위 확보, 주요인사 체포 등 임무에 의문을 품은 정황은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들이 증언하는 '불법'은 더 있다. 정성우 전 1처장(준장 진급예정)은 7월 17일 윤씨 재판에서 "방첩사는 계엄임무수행군이 아니라 합수부(합동수사본부) 요원"이라고 말했다. 계엄임무수행군이란 계엄 선포 시 질서유지, 소요 진압 등의 임무를 담당하는 병력으로, 원칙적으로 군사경찰이 담당하지만 다른 부대도 대통령의 승인을 받으면 투입될 수 있다(관련 기사 : 새 쟁점 '계엄임무수행군'... "6.25 사변" 끌어와 방어한 윤석열 https://omn.kr/2fo6u).

하지만 12.3 비상계엄 선포 후 방첩사든 특전사든 수방사든, 군사경찰이 아닌 부대를 계엄임무수행군으로 지정하는 절차는 없었다. 여인형 전 사령관 또한 11월 24일 윤씨 재판에서 "군의 계엄임무수행군을 1차로 누가 하는지 아는가? 군사경찰이 한다"며 방첩사가 계엄임무수행군이 아니었음을 인정했다. 설령 방첩사가 지정됐더라도 선관위 확보나 주요 인사 체포는 합법적 업무가 아니다. 어떤 의미든 본인의 지시는 '불법'이 맞다는 자백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은 증거들

여 전 사령관은 "저는 지시받는 입장"이라고 변명했다. 그는 계엄 전후 휴대전화 등에 남긴 메모로 '자승자박'하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궁여지책이라고 여겼을까? 여 전 사령관은 수사기관이 포렌식으로 확보한 메모들을 가리켜 "내 맘대로 쓴 일기"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또 실제로 선관위 서버 확보와 주요 인사 체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행동을 봐달라. 이렇게 백날 써놓고 그 행위는 그것과 전혀 반대되는 일이 생기면 어느 게 진실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공개된 메모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말하고 있다.
 내란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휴대전화·네이버 메모 내용으로 AI를 통해 생성한 이미지
ⓒ 오마이뉴스
 내란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휴대전화·네이버 메모 내용으로 AI를 통해 생성한 이미지
ⓒ 오마이뉴스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에선 입을 굳게 닫았던 인물들도 형사법정에선 조금씩 입을 열고 있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은 5월 20일 군사법원에서 "'본회의장에 가서 네 명이 한 명씩 들쳐업고 나오면 되지 않느냐'는 (대통령의) 말은 부관이 (계엄 선포) 3일 뒤에 말해서 저도 생각이 났다"고 증언했다. 조지호 경찰청장 역시 12월 1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재판에서 계엄 당시 윤석열씨가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 "처음에 국회를 통제해라. 나중에는 국회로 월담하는 의원이 많아지자 '다 잡아라. 체포해라' 했다"며 "그 워딩(표현)을 분명히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이외에도 수방사령관 부관, 참모장, 작전처장, 경비단장, 지역대장, 중대장과 특전사 참모장, 1공수여단장, 대대장, 707특임단장, 법무실장, 상사뿐 아니라 방첩사 1처장, 기획관리실장, 군사보안실장, 사이버안보실장, 정보보호단장, 지휘협력과장, 경호경비부대장 등 수많은 군인들이 법정에 나와 '그날 그 밤'을 증언했다. 군 검찰 등에선 '기억나는 것이 없다'던 수방사령관 운전관 이민수 중사는 윤씨 재판에 나와 "침묵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다"며 "(계엄 해제 후 윤석열씨가 사령관에게) 총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계엄을 다시 하면 된다라고(했다)"는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아무리 변호인단이 흠집내기식 질문으로 공격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도 흔들림 없는 목격자들의 말은 더욱 촘촘하게 윤씨를 옭아매고 있다. 이외에도 비화폰 통화내역, 관련자들의 통화 녹음파일, 메시지, CCTV 등 수많은 물증들도 존재한다. 아무리 사실을 비틀어도, 윤씨는 빠져나갈 수 없다.

헌재 결정에도, 대법원 판례에도... '틈'은 없다

물론 윤석열씨는 여전히 '경고성 계엄'을 운운하고 있다. 그는 11월 28일 '체포방해' 사건 공판에서 1979년, 1980년 계엄과 12.3 비상계엄을 비교하며 "일종의 연성 메시지 계엄"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1년 전, "계엄의 형식을 빌려 작금의 위기 상황을 국민들께 알리고 호소하는 비상조치"를 했다던 12.12 담화에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당시 윤씨는 "병력이 투입된 시간은 한두 시간 정도에 불과하다"며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는가"라고도 주장했다.

피고인은 자기변호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피고인은 '검찰총장' 출신으로 각종 법기술에 능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4월 4일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못 박으면서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나아가 계엄 선포부터 포고령, 군과 경찰 동원, 선관위와 국회 침투, 주요 인사 체포시도 등 12.3 비상계엄의 모든 장면을 놓고 '헌정질서 파괴' 목적까지 조목조목 따져가며 내란죄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피청구인이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한 후 군경을 투입시켜 국회의 헌법상 권한행사를 방해함으로써 국민주권주의 및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병력을 투입시켜 중앙선관위를 압수·수색하도록 하는 등으로 헌법이 정한 통치구조를 무시하고, 이 사건 포고령을 발령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한 일련의 행위는 법치국가원리와 민주국가원리를 구성하는 기본원칙들을 위반한 것으로서 그 자체로 헌법질서를 침해하고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으므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한다."

경고성 계몽이든 아니든 윤씨 주장은 형사법적으로도 크게 다퉈볼 여지가 없다. 1997년 4월 17일 '내란우두머리' 전두환 사건에서 대법원은 분명히 선언했다. 비상계엄 선포와 군경 투입 등 폭동행위로 국회 등 헌법기관의 기능을 상당 기간 정지시키려고 의도했으면, 국헌문란의 목적은 인정된다. 내란의 성공 여부는,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로서, 다수인이 결합하여 위와 같은 목적으로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행·협박행위를 하면 기수가 되고, 그 목적의 달성 여부는 이와 무관한 것으로 해석되므로, 다수인이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을 하였을 때 이미 내란의 구성요건은 완전히 충족된다고 할 것..."

피고인 윤석열은 결국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형법 87조는 내란우두머리에게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만을 예정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9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특수공무 집행 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첫 재판에 출석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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