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쿠팡, 과로사 원인 '클렌징' 폐지? 프레시백 회수 등 점수표 만들어 고지

전선정 2025. 12. 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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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배송률·프레시백 회수율' 등급 매겨, 재계약에 활용... 쿠팡CLS "주요 택배사 모두 해당 제도 운영"

[전선정 기자]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부천 물류센터 건물 외벽.
ⓒ 연합뉴스
쿠팡CLS가 과로 원인으로 지적된 '클렌징' 제도를 폐지한 이후에도, 유사한 기준으로 서비스 점수를 매달 측정해 택배 대리점에 고지하고, 재계약 요건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에 따르면 지난 11월 10일 새벽배송을 하다 숨진 고 오승용씨를 포함해 올해 들어 총 4명의 쿠팡 택배기사들이 사망했다. 고용노동부는 10일부터 쿠팡의 야간노동에 대한 고강도 실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클렌징은 쿠팡CLS가 제시한 정시 배송률·프레시백(보냉백) 회수율 목표치 등을 대리점이 4주 연속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 즉시 배송 구역을 회수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고 정슬기씨(쿠팡 로켓배송 기사)가 지난해 5월 사망한 이후 택배노조 등이 문제제기해 공식적으로는 지난 2월 폐지된 바 있다.
 '2025년 쿠팡CLS - 대리점의 위·수탁 표준계약서 및 부속합의서' 중에는 "평가 결과를 재계약 여부의 판단 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며, 평가 결과가 저조한 계약노선의 재계약을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택배노조를 통해 입수한 '2025년 쿠팡CLS - 대리점의 위·수탁 표준계약서 및 부속합의서' 중 서비스 수준 협약(SLA)에 따르면, 쿠팡 CLS는 클렌징 제도를 폐지한 이후에도 비슷한 기준을 마련해 운영하면서 대리점과 택배기사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쿠팡CLS는 매월 정기적으로 ▲미수행률(15점) ▲반품 상품 미회수율(15점) ▲고객만족지표(정시 배송률 및 프레시백 회수율 50점) ▲고객불만 발생률(10점)에 따라 영업점의 서비스 수준을 점검하고 있었다. 애초 클렌징 기준이었던 정시 배송률·프레시백 회수율 등이 SLA 평가기준의 절반을 차지한 셈이다. 여기에는 "평가 결과를 재계약 여부의 판단 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며, 평가 결과가 저조한 계약노선의 재계약을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도 있었다.
 쿠팡CLS가 매달 대리점에 서비스 점수를 매긴 후, 하위권 점수에는 '빨간색'을 표기한 자체 점수표를 내부 전산망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위 표는 전국택배노동조합을 통해 제공받은 원본 자료를 재구성한 것이다.
ⓒ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
클렌징 제도에서 문제가 되던 '4주 연속 목표치 충족 못하면 즉시 배송 구역 회수'는 사라졌지만, 쿠팡CLS는 대리점이 보유한 각 배송 구역에 매달 서비스 점수를 매긴 후, 상위권 점수에는 '파란색', 하위권 점수에는 '빨간색'으로 표시한 자체 점수표를 공유하고 있었다.

대리점이 '빨간색'으로 표시된 배송 구역을 고지 받은 후, 계약기간(1년) 만료 후 쿠팡CLS와 재계약을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노선(배송 구역)별 SLA 평가지수 공유 드린다, 하위 점수 노선은 점수 참고해 개선 부탁드린다"며 택배 기사들을 압박한 정황도 곳곳에서 확인됐다.

"이 상황이라면 전부 계약해지"

<오마이뉴스>가 확보한 택배 대리점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살펴보면, 프레시백 회수에 대한 압박이 가장 많았다. 프레시백 회수율이 서비스 점수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큰 비율을 차지하는 정시 배송률과 관련해, PDD 미스(Promised Delivery Date, 오늘 밤 12시 전 도착 보장·내일 새벽 7시 전 도착 보장과 같은 배송기한 -기자 주)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두 업무 모두 과로 원인으로 주되게 지적된 업무다. 특히 프레시백 회수 업무는 프레시백을 수거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분리수거·세척 전 펼침 작업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높은 업무다. 여기에 더해 프레시백 회수만을 위해 방문하는 경우가 발생해, 택배 기사의 배송 노선이 꼬일 뿐 아니라 이로 인해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업무라는 지적을 받았다.
 대리점 관계자와 택배기사들이 속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
한 대리점 관리자는 소속 택배기사들이 속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이 상황이라면 전부 (쿠팡) CLS와 계약해지"라고 압박했다. 이 관리자는 "(프레시백 회수 관련) 다시 보고받고 수치 확인해보겠다, 금일부터 당분간 데일리로 확인할 생각, 이 부분에 대해 개선 안 되면 개별적으로 연락드려 계약서대로 진행하도록 하겠다"라며 계약해지를 암시하기도 했다. 계약서상 프레시백 회수에 대한 평가는 대리점이 보유한 전체 배송구역이 아닌, 개별 구역으로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데도 "통으로 재계약 불가"라며 "(목표) 회수율에 맞춰 프레시백 무조건 회수하라"는 대리점도 있었다.
프레시백 무조건 회수 압박에 택배 기사들은 "미치겠다", "어떡하냐, 단독(회수) 다 하면 400가구인데", "둘이 하는 날 열심히 줍던가 해야겠다. 혼자는 절대 불가능"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리점 관계자와 택배기사들이 속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은 지난 11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쿠팡CLS에는 여전히 클렌징 제도가 살아 있다"라며 "삭제된 클렌징 기준 중 택배노동자들의 과로를 부추겼던 주요 기준인 미수행률, 정시 배송률, 프레시백 회수율이 SLA 평가기준이 되면서 현장의 압박은 이전보다 더욱 심해졌다"라고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지난 1월, '쿠팡 심야노동 개선' 관련 국회 청문회에서 쿠팡은 프레시백 회수 강요를 개선하겠다고 했고, 노동부도 해당 업무가 택배기사의 업무가 아니라고 했는데, 아직도 현장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라며 "프레시백 회수 업무가 사실상 의무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택배기사들의 부당한 업무부담과 과로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쿠팡, 관리·감독 책임 회피 말아야"

택배 표준계약서에 "택배사업자(쿠팡CLS)는 영업점이 종사자에게 적정 수준의 휴일을 제공해 종사자의 쉴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적시하면서도, 매달 서열화된 서비스 지표 점수를 대리점에 고지하는 것이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택배기사가 휴식할 수 없게 구체적인 점수체계를 만들어놓고, 쿠팡CLS가 대리점에 휴식권에 대한 지침을 내리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클렌징 제도 폐지 후에도 구체적으로 점수체계를 만들어 매달 점검해 공유하는 것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암시로 느껴질 수 있다"면서 "휴식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대리점에 휴식권에 대한 지침을 내림으로써 관리·감독에 대한 책임 회피를 가능하게 했다. 단시간 내, 이렇게 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건 이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쿠팡이 지난 9월부터 진행된 택배 분야의 3차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 만큼,업계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쿠팡이 책임감을 갖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지속가능한 택배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쿠팡CLS는 <오마이뉴스>에 서면 답변을 통해 "주요 택배사 모두 SLA 제도를 운영 중에 있으며, CLS도 운영 특성을 반영한 SLA 제도를 통해 영업점의 고객 서비스 수준을 평가하고 있다"면서 "CLS는 위탁배송업체가 계약 단계부터 백업기사를 확보해야 위탁이 가능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고, CLS 자체 배송인력(쿠팡친구) 배송 지원 등을 통해 백업기사 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영을 안착시켰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쿠팡 CLS는 자체 점수표 공유를 통한 프레시백 수거에 대한 압박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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