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하나 까딱 않고 김장 김치 받아먹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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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고령화와 충분치 않은 노후대비는 노후생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55년생, 은퇴 후 전업 살림을 하는 남편으로서의 제 삶이 다른 퇴직자와 은퇴자들에게 타산지석과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자말>
[이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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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장에 넣을 쪽파를 다듬고 있다. |
| ⓒ 이혁진 |
아침부터 아내가 지시한 대로 무를 깨끗이 씻고 쪽파와 갓을 다듬어 놓았다. 간 마늘, 새우젓밥풀, 고춧가루 등도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사실 김장 준비는 전날부터 했다. 주문한 절임 배추가 도착하고 시장에서 김장 재료 몇 가지를 미리 사두었다.
무가 채칼에 썰리는 것이 다르다. 무채가 채칼 밑에서 경쾌하게 나온다. 채 썰고 남은 꽁지 무는 달고 맛있다. 이를 알면 살림을 조금 배웠다는 소리를 듣는다. 곁에서 아내가 무채는 따로 용기에 조금 담아두라고 한다. 김장과 별도로 나중에 '무밥'을 할 요량이다.
대야에 무채와 쪽파 등 각종 재료를 넣고 고루 비비기 시작했다. 김치소 모양과 색깔을 보고 간을 본 아내가 내게도 맛을 보라 한다. 솔직히 잘 모르지만 양념향이 좋다. 김치소를 배추에 넣는 작업부터는 아내가 등장한다.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배춧잎과 줄기 사이사이에 속을 바른다고 할까. 무조건 많이 넣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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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장 무를 채칼로 썰었다. |
| ⓒ 이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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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듬어 놓은 갓, 쪽파와 함께 김치소의 핵심 재료이다. |
| ⓒ 이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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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채를 고춧가루로 물들이고 있다. |
| ⓒ 이혁진 |
우리 집 먹을 김장은 20kg 절임배추면 충분하다. 과거 김장할 때는 식구당 몇 십 포기를 담갔다. 지금은 세 식구 김장도 부담스럽다. 아내와 둘이 만드는 김장은 오랜만에 손발을 맞춰보는 시간이다. 아내 머릿속에 작업 순서가 들어있고 나는 그에 따라 로봇처럼 움직이면 김장이 완성된다.
남자 동창들 모임에서도 '김장'이 화제
사실 올해 우리 집 김장은 약간 더 추우면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전 아내가 갑자기 김장 운을 뗐다. 김장 시기를 이것저것 저울질하고 있었다. "덤비면 금방 김장이 된다"는 건 살림 초보들이나 하는 생각이다. 김장 작업은 찌개나 반찬 한두 개를 만들거나 단순히 설거지하는 수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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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치소를 버무리고 있다. 힘 쓰는 작업은 주로 내가 한다. |
| ⓒ 이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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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춧잎에 넣을 김치소 양념이 완성됐다. |
| ⓒ 이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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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가 배춧잎 사이사이에 김치소를 넣고 있다. |
| ⓒ 이혁진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처럼 김장에 동참하는 사람이 드물 거라는 생각도 착각이다. 집안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친구들도 김장 때만은 협조하는 모양이다.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받아먹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한 고교 동창은 김장에 대비해 몇 달 전부터 마늘을 까고 김장에 쓸 고춧가루를 준비한다고 했다. 그런 친구들은 아내에게 칭찬받는다. 자녀들에게도 격려와 응원을 받는다고 한다. 김장이 힘들기는 해도, 가족을 모처럼 화목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주 친구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우리 집 어제 김장했어"라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도 김장을 서두를 것이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화제에 오르지 않던 이야기다. 이를 보면 요즘 베이비붐 세대는 번거로운 김장 문화에 공감하고 협조하는 세련된 구석이 있다. '은살남'(은퇴 후 살림하는 남자) 입장에서 환영하는 바이다.
우리 집이 김장을 하는 이유는 특히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김장을 굳이 고집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에게 김장의 맛과 추억을 드리는 것도 우리 부부가 챙겨야 할 일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처형이 오랜만에 김장을 갖다 주고 이산가족 단체에서도 나눔 김장을 보내왔다. 올 한 해는 풍성한 김장으로 마무리했다. 올 겨울에는 다양한 김치 손맛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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