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써붙인 올해 목표 3개를 다 이뤘어요" 안양 주장 이창용의 거짓말같은 2025년 [케터뷰]

[풋볼리스트=안양] 김정용 기자= 이창용은 흔히 FC안양 특유의 응집력과 유대감을 상징하는 선수로 인식되곤 한다. 실제로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잘 결집하는 것도 사실이고, 인터뷰에서 진솔한 어조로 구단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오히려 이 점에 이창용의 축구적인 성취가 가려진 면도 있다. 이창용은 30대 중반에도 계속 성장했다. 지난해 생애 첫 개인수상인 K리그2 시즌 베스트 11 선정에 이어 올해는 K리그 통산 300경기, 안양 소속 K리그 100경기, 그리고 K리그1 시즌 베스트 11 후보 선정에 이르렀다. 후보는 6명. 거칠게 말하면 올해 K리그1 최고 센터백 6명 중 하나가 이창용이라는 이야기다. 누구나 기량을 인정하는 외국인 야잔과 안톤, 전현직 국가대표 홍정호 변준수와 나란히 서 있다.
한때 '센터백으로는 신체조건이 기준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창용은 어떻게 중앙 수비수로서 성장을 이뤘을까. 시즌을 마무리해가는 그를 만나 이번 시즌을 정리했다.
▲ 우리 팀은 끝까지 신뢰를 주죠
"안양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어요. 고향은 광주고, 살던 곳은 용인이고. 2021년 말 당시 안양에 대한 이미지는 뭐랄까, 좀 약한 팀, 깔고 가는 팀. 그런 이미지였죠. 그런데도 이우형 감독님(현 단장)이 절 부르시면서 '너 아니면 안 돼'라고 하신 게 정말 중요했어요. 아니, 용병을 보내고 그 자리에 절 쓴다잖아요. 제가 프로 선수로서 이런 대우를 또 받아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높게 쳐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1부 구단과도 협상을 하고 있었는데 안양으로 결정을 했어요. 아, 물론 대우라는 건 돈도 포함이죠."
이창용의 말대로 그가 오기 전까지 안양은 K리그2에서도 하위권인 시즌이 더 잦았고, 사상 처음으로 2위에 오른 직후였다. 이창용은 일시적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안양의 전력 강화를 꾸준한 우상향 곡선으로 굳힌 요인 중 하나다. 그를 영입한 뒤 K리그2 3위, 6위, 1위를 차지했고 이번 시즌은 K리그1에서 일찌감치 잔류를 확정했다. 그리고 이창용은 안양 2년차부터 주장 완장을 찼다.
"분위기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밖에서 선수들끼리 자주 만나고, 안양 특유의 문화를 이어가는데 신경을 많이 썼죠. 선수들의 축구 실력은 높여줄 수 없지만, 축구 실력을 다 발휘하게 해 줄 수는 있어요. 그러려면 좀 실수해도 보듬어줘야 돼고 자주 모여야 돼요. 모여서 실없는 장난을 치다 헤어져도 괜찮아요. 서로 실수를 커버해주는 관계를 만드는 게 감독님이 원하시는 바 같았어요. 딱 그거 하나 정도는 해야겠다 싶었죠."
서로 '보듬어준' 대표적인 사례를 묻자, 이창용은 최근 있었던 모따의 인종차별 사건을 떠올렸다. 모따는 페널티킥에 실패한 뒤 인종차별적인 메시지를 잔뜩 받고 라커룸에서 눈물을 흘렸다. 안양 선수들은 다음 소집까지 이 일을 마음에 담고 있다가, 모따를 처음 마주쳤을 때 각자의 방법으로 위로하는 마음을 전했다. 대놓고 "모따! 별 거 아냐"라고 응원하는 말을 하는 선수, 툭툭 치는 선수, 장난을 거는 선수, 여기에 의무 트레이너와 지원 스태프까지 충분히 마음을 표현해줬을 때 모따는 심리적인 상처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안양이 외국인 선수 영입 성공률에서 K리그 상위권을 유지하는 비결도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외국인 선수 중 두세 명 정도는 시즌 끝날 때 즈음 도태되기도 한다. 안양은 부상만 아니라면 선발이든 교체든 시즌 끝까지 꾸준한 기여도를 보였다. 이창용도 "외국인 선수가 제 기량을 보여주려면 몇 경기 부진했을 때 의기소침해지지 않아야 하거든요. 다른 구단에서는 용병이 서너 경기 못 하면 그 뒤로는 경기에 못 나가요. 우리 팀은 재정이 부족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끝까지 신뢰를 주죠"라고 말했다.
▲ 저도 포백을 소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신뢰는 선수들끼리만 주고받는 게 아니다. 안양 팬들의 응원 문화는 경기력으로 직결된다. 안양은 야유가 거의 없고, 팀이 부진할 때도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서포터 문화로 유명하다. 이창용이 전에 뛰었던 팀 중에는 자기 팀 선수에게 더 거친 욕설이라는 방식으로 애정을 드러내는 팀도 있었다.
"제 실력이 5라고 치면, 안양에서는 늘 6이나 7이 나왔던 것 같아요. 재계약을 한 이유도 그거예요. 안양에 있으면 경기력이 좋거든요. 사실 못할 때 욕먹는 건 프로 선수의 일반적인 상황이에요. 못하면 질책을 해야죠. 잘한 것만 잘했다고 해야지. 근데 안양은 팬, 구단, 감독님의 방향성이 일치하니까 선수는 신뢰를 받거든요. 외국인 선수들이 그렇듯 저도 경기력이 5에서 7로 올랐어요."
안양에서 이창용이 축구 내적으로 진화했다는 건 뛰는 위치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창용은 20대에 '파이터형 선수'로 분류됐다. 180cm 신장은 수비수치고 작은 편이지만 운동능력과 몸싸움 능력은 덩치에 비해 좋다. 그래서 수비형 미드필더나 스리백의 스토퍼 자리에서 상대를 거칠게 다루는 임무를 주로 맡았다. 그런데 안양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포백의 센터백을 소화하고 있다. K리그 최단신 센터백 중 한 명이다.
"제가 K리그1에서도 포백의 센터백을 볼 수 있는지, 그 의문은 저도 품었어요. 저 자신에게 확신을 갖기 힘들었죠. 이제 나이는 먹었지, 포백은 스리백보다 리스크는 크지, 내 신체조건을 볼 때 이 전술에 적합해보이진 않지. 그럼에도 절 써 주니까 더 고마운 거예요. '이런 날 써준다고?'라는 생각이죠. 그래서 전 주위 사람들에게 늘 이야기해요. 이 팀의 이 감독님 아니면 나 어디 가서 경기 못 뛴다."
실제로 키 때문에 밀린 경험이 많았다. 이창용은 울산HD 시절(2015~2016, 2018) 출장기회를 잠깐 잡았다가 다시 못 뛰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었는데 결국 이유는 키였다. 의경팀 아산무궁화(2017~2018)에서 포백의 센터백을 맡았을 때 잘만 소화했다. 그러나 제대 후 보금자리였던 성남FC(2019~2021)에서는 다시 스리백에서 주로 뛰었다.
"이젠 파이터형이 아니죠. 안양에서 스타일을 많이 바꿨어요. 사실 그럴 계획이었다기보다 부상이 컸어요. 나이는 먹어가는데 부상을 겪고 나니까 계속 거칠게 축구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베테랑 센터백 형들이 어떻게 하시는지 찾아보면서 수비라인 조율과 공간 커버에 대해 연구를 했어요. 살아남기 위해서였죠."
높이나 스피드에서 별 장점이 없는 입장에서 신체 조건 좋은 공격수를 어떻게 막냐고 묻자, 이창용은 '내가 그 정도는 아닌데'라는 듯 많이 밀리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키에 비해 힘이 좋기 때문에 몸싸움은 여전히 자신이 있고, 장신 공격수와 공중볼 경합을 할 때는 상대가 뜨는 탄력까지 이용해 더 높이 뜨는 요령을 익혔다고 했다. "그런 노하우로 여기서 최단신 센터백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 경기력에 만족한 적이 별로 없어요. 아니, 겸손한 게 아니에요. 사실 작년 9월에 크게 다쳤잖아요. 그리고 나서 후유증이랄까 통증이 올해 9월까지 딱 1년 가더라고요. 패스 한 번 할 때마다 아파서 움찔 했어요. 눈치 못 채셨으면 제가 잘 한 거겠죠? 마침내 통증이 없어지니까 울산전에서 K리그1 득점도 넣게 되더라고요. 사실 부상이 다시 악화될 뻔한 적도 있었는데 일단 참고 뛰었어요. 뭐, 경기력이 떨어지면 어차피 절 안 쓰실 거니까 뛸 수 있는 한 뛰어야죠. 사실 저 같은 스타일의 축구선수는 갈비뼈나 발가락뼈에 금 간 정도는 그냥 감수하고 뛸 때가 많거든요. 사소한 부상을 다 말씀드릴 순 없죠."


▲ 방에 문구 3개를 써붙이고 올해를 시작했는데
"제가 올해 초 겨울에 방에 문구 3개를 적어 놨어요. 잔류, 서울전 승리, 만안교. 아내가 이제야 그걸 봤어요. 깜짝 놀라더라고요."
이창용은 올해 목표를 세 가지 써 붙이고 K리그1 시즌에 임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모두 달성했다. K리그1 최종전을 앞두고 이미 잔류는 확정한 상태다. 팬들의 염원인 FC서울전 승리를 달성했다. 그리고 한 골이라도 넣어서 안양 팬들에게 바치는 만안교 세리머니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딱 한 골을 넣었다. 아내가 깜짝 놀랄 만했다. 방에 써붙인 목표를 다 이루는 해는 누구에게도 흔치 않다.
35세 이창용은 은퇴 이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나이다. 이창용은 한때 그 고민을 하다가 오히려 접었다. 세 살 더 많은 신광훈에게 물어봤더니 "그냥 하루하루 살아. 미래 계획 같은 건 생각할 필요 없어"라는 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 선수로서 실력을 오래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그래서 거창한 목표는 잊어버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그날 하루 전력질주하기로 했다. 그게 안양 선수로서 더 오래 남을 수 있는 비결인 것만 같았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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