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위는 지금 어디쯤일까?
[완도신문]
뜨끈한 국물 한 숟갈에 "속이 풀린다"고 말할 때, 위 안에서는 칼도 녹일 만큼 강한 위산과 그 위산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보호막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는 점액으로 된 얇은 막을 깔아 스스로를 지키는데, 이 막이 튼튼할 때는 라면, 삼겹살, 김치찌개를 먹어도 잘 버팁니다.
다만 스트레스, 술, 짠 음식, 야식, 그리고 헬리코박터균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이 보호막이 닳고 벗겨지면서 점막이 붉고 예민해지는 "표재성 위염", 표면이 살짝 헐어 군데군데 하얗게 보이는 "미란성 위염"이 생깁니다. 이 단계는 위의 겉층만 다친 상태라 술·매운 것·짠 것·공복 커피를 줄이고, 식사 속도를 늦추고, 한 입을 20~30번씩 씹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자극과 위염이 몇 달, 몇 년씩 반복될 때입니다. 점막 세포가 계속 상처를 입다 보면 살집이 빠지듯 위 점막이 점점 얇아지고 마르게 되는데, 내시경으로 보면 촉촉한 분홍빛 대신 창백한 점막과 나뭇잎 잎맥처럼 비쳐 보이는 혈관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위축성 위염", 쉽게 말해 "마른 위"입니다. 이 단계부터는 위산 분비와 소화 능력이 떨어지고, 위암과의 거리도 조금 가까워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입니다. 이 균은 위산 속에서 살기 위해 주변의 산도를 중성에 가깝게 바꾸는 물질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만성 염증을 일으켜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 위암으로 이어질 위험을 높입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30~50% 정도가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위 내시경을 할 때 한 번쯤은 균 검사도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상피화생은 "위에 있어야 할 위 세포가 줄고, 그 자리를 장(소장·대장) 세포와 비슷한 세포가 대신 채운 상태"를 말합니다. 원래 위는 위산으로 음식을 분해하는 곳인데, 점막이 장처럼 변해 "흡수하는 벽"으로 바뀌는 셈이라 기능 면에서 손해입니다.
내시경에서는 주변보다 하얗고 엠보싱 휴지처럼 몽글몽글한 패턴으로 보입니다. 장상피화생이 있으면 없는 사람보다 위암 위험이 몇 배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간 위암으로 진행할 확률은 0.1~0.3%, 10년을 합쳐도 1~2% 정도로 보고됩니다. 즉 위험이 높아진 것은 맞지만 "곧 위암"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헬리코박터를 없애고 수년간 지켜봤을 때 장상피화생의 정도가 줄어들거나 더 나쁜 형태에서 덜 나쁜 형태로 바뀌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어, 장상피화생은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위를 더 챙겨야 한다"는 경고에 가깝습니다. 관리의 첫 단계는 헬리코박터 제균입니다. 감염이 확인되면 위산을 줄이는 PPI(프로톤펌프억제제)와 항생제 두 가지 이상을 2주 정도 함께 복용해 균을 없애는 치료를 하고, 두 번까지 치료하면 80~90%는 성공합니다. 두 번째는 자극을 줄이는 것입니다.
소금에 절인 음식, 젓갈, 짠 국물은 위에 "짠물 샤워"를 반복하는 것과 비슷하고, 너무 센 불에 오래 구워 겉이 까맣게 탄 고기나 생선도 위와 장에 부담이 됩니다. "오늘 짰으면 다음 끼니는 싱겁게", "불판에서 너무 태우지 않고 탄 부분은 떼고 먹기" 같은 작은 조절만 해도 위는 한결 편해집니다.
공복의 진한 커피도 속쓰림과 역류를 악화시킬 수 있어 식후 한두 잔, 너무 뜨겁지 않은 온도로 마시는 편이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위도 나이를 먹습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던 음식이 어느 순간부터 더부룩하고 오래 머무는 느낌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이때 "천천히, 많이 씹어 먹기"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처방입니다. 한 가지 기억해 둘 점은, 위염·위축성 위염·장상피화생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불이 나는 듯한" 속쓰림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늘 소화가 더디고, 명치가 묵직하고, 밥만 먹으면 윗배가 쉽게 더부룩한 정도만 느끼는 분도 있고, 아무 증상 없이 살다가 검진 내시경에서 처음 이 말을 듣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대로 전형적인 속쓰림과 신물 올라오는 느낌은 위염보다는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는 역류성 식도염에서 더 흔합니다. 그래서 "나는 속쓰린 적이 없으니 괜찮다"보다는 나이·가족력·식습관·과거 내시경 소견을 함께 보고 1~2년에 한 번은 내시경으로 점검해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평소 속이 더부룩할 때 잠깐 도움이 되는 제산제나 점막 보호 성분, 병원에서 처방하는 PPI 계열 약은 "증상 조절"과 "위산으로 인한 손상 줄이기"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이미 생긴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을 완전히 되돌리는 약은 아닙니다. 음식 선택도 중요합니다. 굴·홍합·조개류처럼 아연과 비타민 B12가 풍부한 해산물은 위축성 위염에서 자주 동반되는 영양소 부족과 빈혈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연어·고등어 같은 등푸른 생선의 오메가-3 지방산은 염증을 완화하고 점막이 회복되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전복·낙지·문어에 풍부한 타우린과 아미노산은 피로 회복과 점막 세포 재생에 필요한 재료를 공급합니다. 결국 위염, 위축성 위염, 장상피화생이라는 이름은 "위가 망가졌다"는 선고가 아니라 "이제는 나를 조금 더 챙겨 달라"는 위의 신호에 가깝습니다. 헬리코박터가 있다면 한 번 제대로 없애고, 짜고 탄 음식과 과음을 줄이고, 공복 커피와 폭식을 피하고, 1~2년에 한 번씩 내시경이라는 안전벨트를 매 주는 것, 이 네 가지만 지켜도 위암 위험은 크게 줄어듭니다. 위는 생각보다 재생력이 뛰어난 장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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