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책, 돈도 보관할 수 있는 만능 가구 '반닫이'
[한기홍 기자]
|
|
|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소목장 박명배의 반닫이 전시회가 12월 6일까지 열린다. |
| ⓒ 한기홍 |
우리 전통 가구의 뛰어난 비례미를 보여주는 가구를 만들어온 소목장 박명배(75)가 이번에는 반닫이를 우리 곁으로 들고 왔다. 어느 집에나 있었던 가장 친숙한 생활 가구였던 반닫이에는 장수와 행복이라는 보통 사람의 염원을 담은 장석이 돋보인다.
고결한 선비의 거처를 차지하는 품격 있는 사랑방 가구와 달리 반닫이는 사랑방과 안방은 물론이고 대청마루, 심지어 창고에 자리잡고 있어도 다 어울리는 팔방미인이다.
간결하나 세련된 사랑방 가구나 품위 있게 화려한 안방 가구를 갖추지 못한 집은 있어도, 반닫이 없는 집은 없을 정도로 반닫이는 밥상과 함께 우리네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동반자였다. 그래서 "반닫이는 단순히 하나의 가구가 아니라, 지나온 생활문화의 흔적과 삶의 이야기가 깃든 깊은 아름다움을 지닌 가구"라고 박명배는 말한다.
수복강령, 염원을 드러낸 아름다운 장석
생활에 가장 밀접한 가구여서일까, 투박한 사각형 상자 모양의 반닫이를 장식하고 있는 금속 장석은 장수와 행복, 조화와 평안을 상징하는 문자와 문양으로 꾸며져 있다. 우리 전통 가구에는 온갖 좋은 상징을 뜻하는 길상문과 장식이 곳곳에 있지만 반닫이의 장석만큼 염원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은 드물 듯싶다.
|
|
| ▲ 박명배는 각 지역별 반닫이 작품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책장을 결합한 책장반닫이, 위에 수납장을 얹은 반닫이장, 작은 알반닫이까지 다양한 형식의 반닫이를 선보이고 있다. |
| ⓒ 한기홍 |
왜 하필 이렇게 장석이 중요한 반닫이에 박문열 두석장의 작품을 안 쓴 것일까 의아해 하니 "너무 비싸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우리나라 최고 두석장의 솜씨를 빌리려면 돈이 많이 들겠지만, 어쩌면 그는 반닫이에 장석이 중요하니, 굳이 자신이 장석까지 맡아한 게 아닐까.
그는 젊은 시절 처음 들어간 최희권 교수(당시 서라벌예대 공예과) 공방에서 목공 작품은 물론이고 쇠도 다루어본 경험이 있다. 그런 경험이 아니어도 50년 넘게 가구를 만들어왔으니 장석은 그에게도 친숙한 것일 테고, 또 모든 장인이 그렇듯 그 역시 손으로 하는 건 무엇이든 재미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장석 역시 전문가의 영역인데, 소목장이 장석의 명작이라 할 평안도 반닫이의 숭숭이 장석까지 멋지게 해낸 솜씨가 놀랍다.
솜씨도 솜씨지만 그의 작품 수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초대전이나 해외전시도 있었지만 그는 보통 4~5년에 한 번씩 전시회를 열곤 했는데 이번엔 3년만이다. 본래 손이 빠른 사람인 건 알았지만 이제 그의 나이 일흔 다섯이고 몸은 더욱 여위었는데, 작품의 속도나 작업량은 더욱 빨라지고 늘어나는 것 같다. 과연 노익장이다.
지방마다 개성이 다른 반닫이의 매력
반닫이는 이처럼 장석이 중요하고, 지방마다 다른 반닫이의 특징을 결정하는 데도 때로 장석이 큰 구실을 한다. 조선시대 반닫이의 슈퍼스타인 평안도 박천의 숭숭이 반닫이는 섬세하게 투각된 숭숭이 장석이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곱다.
|
|
| ▲ 이번 전시는 소목장 박명배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 전통 조형예술의 동시대적 가치를 탐색하는 특별한 기회로 볼 수 있다. |
| ⓒ 한기홍 |
지방마다 다른 특색을 보이는 반닫이는 쓰임새 역시 다양한 만능선수다. 옷이나 이불호청, 베갯잇을 넣을 수도 있고, 책이나 제기, 문서를 보관할 수도 있다. 따로 돈궤가 없다면 돈인들 못 넣으랴. 사랑방용 반닫이는 책이나 문방도구 놓기 편하도록 높이가 낮고 세로폭도 좁다. 대신 길이가 길어 단순하고 소박한 멋이 있다. 목재도 오동나무나 소나무를 주로 썼고, 장석 또한 무쇠장석으로 절제미를 살렸다.
안방용 반닫이는 폭도 넓고 세로 폭도 깊어 수납공간이 넓다. 의복이나 침구류 등 넣을 것이 많은 여성용이기 때문이다. 무늬도 화려한 느티나무나 먹감나무를 썼고, 장석도 주석이나 백동을 활용해 장식성을 높였다. 대청마루나 광에 놓는 반닫이는 방에 놓는 것보다 덩치가 크고, 장석도 큼지막한 무쇠로 달았다.
박명배는 각 지역별 반닫이 작품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책장을 결합한 책장반닫이, 위에 수납장을 얹은 반닫이장, 작은 알반닫이까지 여러 가지 반닫이를 선보였다. 장석을 쓴 방법도 특이하고 편리하게 되어 있어서 그가 고안한 것이려니 했는데 아니라고 한다. "다 옛 사람들이 했던 것"이라고 한다. "옛사람의 아이디어는 상상 초월"의 경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나이든 명장의 완숙한 세계
그는 젊은 시절 이렇다 할 소목장 아래서 착실하게 도제수업을 오래 받는 대신 대학교수의 공방을 거쳐 소목장 허기행 선생한테서 70~80가지에 달하는 전통 짜맞춤(결구법)을 익혔다. 완성된 기술 위에 예술을 입혀준 이는 4대 국립박물관장이었던 고 최순우 선생이다.
최 선생은 그에게 조선시대 사대부 사랑방 가구의 특징인 절제된 비례미, 인위적인 장식을 멀리하고자 한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었고, 꼼꼼한 도면의 중요성도 일러주었다. 최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 그는 홀로 각종 공모전에 참가하여 동아공예대전 대상을 거쳐 마침내 1992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10년 국가무형유산 제55호로 지정되어 명실상부 이 땅 최고의 소목장이 된 그는 1994년부터 국가유산진흥원 평생교육원에서 소목을 가르쳐왔다. 그렇게 배출한 그의 제자들은 '목야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그는 해마다 제자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어왔다. 이제 그 제자 중에는 공예대전에서 큰 상을 타고 공방을 연 이도 여럿 된다. 그는 다 이룬 것 같은데 그의 작업 욕심은 여전하니 벌써 다음 전시회가 궁금해진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미감이 어떻게 현대적 언어로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나무의 결을 따라 흐르는 세월의 시간 속에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리고 나무가 속삭이는 생명의 울림은 이번 전시를 통해 전통이 현대의 미감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고요히 보여준다. 더불어 이번 전시는 소목장 박명배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 전통 조형예술의 동시대적 가치를 탐색하는 특별한 기회로 볼 수 있다.
■ 전시개요
*전시명 : 인간문화재 소목장 박명배展
"나무결에 길상을 새긴 예술, 한국의 반닫이"
*전시기간 : 2025년 11월 11일(화) ~ 12월 6일(토)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 : 10:00 ~ 19:00 (18:30분 입장마감)
*전시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전시구성 : 박명배 소목장의 자연과 순수의 美를 추구하는 작가 철학과 섬세한 손 끝으로
탄생한 전국 팔도 반닫이 34 점을 포함한 총 40여 점 전시
*전시주최 : 영산공방, 박명배
*전시주관 : 마이아트예술기획연구소
*전시후원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진흥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한기홍은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공채 24기)에 입사했다. 이후 월간중앙에서 오랜 기간 기자로 일했다. 사회팀장, 정치팀장을 거쳐 선임기자로 다양한 분야 인물 인터뷰 기사와 탐사보도에 참여했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현상을 시대적 흐름과 견줘보며, 여러 인물 간의 조화와 긴장관계를 들여다보고 싶은 꿈이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국 편이냐, 일본 편이냐'...지금 그 질문은 곤란하다
- 거대 양당의 전직 대통령 사랑... 민주당은 김대중, 국힘은?
- 공수처의 '굴욕'
- 전 세계 반체제 인사 130명, 왜 베를린에 집결했나
- 최측근 법정증언 "선물을 카트로 실어올렸다... 김건희 부탁 받고 거짓 진술"
- "'정치 집단행위 검사가 교사 처벌?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해야"
- MZ 즐겨 찾는 함덕 해수욕장 '일등공신'을 싹둑 베어버린다고요?
- 취업담당부서는 꺼린 영화, 그걸 본 고교생들의 공통된 반응
- 고교학점제 긍정률 극과 극, 평가원 "70%"·교원단체 "5%"...왜?
- 숙박앱의 '할인 쿠폰'에 숨겨진 불공정행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