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역 마루노우치처럼 종묘 개발하자? 번지수 잘못 짚었다

임병식 2025. 11. 2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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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종묘 앞 개발... 종묘는 단순한 공원 아냐, 공간 가치 전반적으로 고려해야

[임병식 기자]

▲ 종묘 정전 지난 주말(23일) 들린 종묘. 종묘는 조선 왕조의 제의 공간으로서 역사적, 정신적 가치는 건물을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 임병식
세계유산 종묘가 지위를 유지하느냐 박탈당하느냐 갈림길에 섰다.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종묘 코앞에 최고 141.9m, 40층 높이 고층 건물이 들어설 전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 4지구는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밖이며 시야를 압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세계유산 보호의 핵심은 단순한 높이 규정이 아니다. 유산을 구성하는 경관과 공간적 의미가 훼손되는지 여부다. 종묘는 담장 속 건물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종묘와 하늘과 배후 산세, 열린 시야, 의례가 이어지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 체계를 이루고 있다.

유네스코는 서울시 계획은 종묘의 가치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며 한국 정부에 세계유산 영향 평가를 공식 요구했다. 영향 평가는 세계유산을 보유한 국가라면 따라야 하는 국제 기준이다. 이를 무시하면 한국은 세계유산 관리 능력을 의심받고,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다리 건설을 강행했다가 2009년 세계유산에서 삭제됐다. 드레스덴 시민들은 다리를 얻었지만, 도시 브랜드와 국제적 위상은 잃었다. 이번 사안은 기관끼리 권한 다툼이 아니라, 한국이 세계유산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는지 드러내는 시험대다.

시야, 배후 산세, 처마 선... 종묘의 가치는 '안'에 머물지 않아
▲ 정전에서 바라본 하늘 종묘 정전에서 바라본 남산 쪽 하늘은 시원하게 열려 있다. 그러나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이 공간에 40층 높이 고층 빌딩이 들어설 전망이다.
ⓒ 임병식
서울시는 도심 재생과 상권 활성화, 사업성 확보를 명분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종묘의 하늘을 가리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종묘와 180m 떨어져 있다는 건 본질이 아니다. 종묘는 조선 왕실에서 제사를 지낸 공간으로, 제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늘이다. 하늘이 막히는 순간 제의 공간으로서 의미는 크게 훼손된다. 종묘의 가치는 건물 내부에 머물지 않는다. 열린 시야, 배후 산세, 처마 선이 만들어내는 수평적 경관과 제례 행렬이 이동하던 공간의 깊이와 방향성에 있다.
도쿄역 일대 마루노우치 모델을 사례로 들며 종묘 일대 고층 개발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그들 말대로 도쿄역에서 고쿄(황궁)으로 이어지는 마루노우치 주변에 30층 넘는 초고층 빌딩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도쿄역과 종묘는 역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전혀 다른 공간이다. 도쿄역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근대 건축물인 반면 종묘는 한 왕조의 정신적 가치가 수백 년 동안 켜켜이 쌓인 곳이다. 그러니 도쿄는 하는데 왜 서울은 하지 않느냐고 윽박지른다면 단견이다. 차라리 세운 4지구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도록 서울시를 압박하는 게 솔직하다.
▲ 도쿄역 마루노우치 도쿄역과 고쿄(황궁)을 잇는 마루로우치 주변에는 고층 빌딩이 형성돼 새로운 명소로 부상했다. 그러나 도쿄역과 한 왕조의 정신문화가 켜켜이 쌓인 종묘를 나란히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다.
ⓒ 임병식
오히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곳은 베이징 천단(天壇)과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이다. 두 곳 모두 종묘처럼 제사를 지내는 제의 공간이다. 그렇지만 주변 경관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중국은 천단 일대를 유산 구역과 완충지역으로 설정하고, 고도·시야·경관축을 법제화해 보호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밀어붙일 수 있는 체제임에도 제례 공간과 역사 경관을 국가 정체성과 문화 외교 전략 자산으로 이해한 것이다. 천단은 국가 이미지 강화, 관광 경쟁력 확보, 문화 외교 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 베이징 천단 중국 정부는 명청시대 황제가 제사를 지낸 천단과 천단 주변 경관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주변에 경관을 해치는 고층 건물은 법적으로 허가를 금지하고 있다.
ⓒ 임병식
다른 국제사례 또한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독일 쾰른 성당은 라인강 일대 고층 계획으로 위험 목록에 올랐으나 시민사회·정부·전문가 논의를 거쳐 계획을 수정하고 완충구역을 설정했다. 프랑스는 더 엄격하다. 문화재 주변 500m 이내에서 개발 행위는 국가 건축가(ABF)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비토 권이다. 파리 또한 센 강변 세계유산 구역에서는 건물 높이와 재료, 지붕 선까지 법으로 규제한다. 일본 교토 역시 도시 전체를 저층 중심으로 유지하며 5성급 호텔조차 경관에 맞춰 설계한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경관을 공공재이자 국가 브랜드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24일 오전 기자와 통화한 서울대 환경대학원 임저스틴희준 교수는 "개발업자가 고층 개발을 제시하면 서울시는 걸러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거꾸로 서울시가 나서 대규모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여론 수렴 없이 강행하니 황당하다"면서 "많은 나라에서는 경관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뷰 컨트롤(경관 규제)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유산은 명예가 아니라 책임... 지금 필요한 건

지난 주말 종묘 정전에서 바라본 남산 쪽 하늘은 훤히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 40층 건물이 들어선다고 생각하자 숨이 막혔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숨이 막히느냐"고 반문했지만, 종묘에라도 다녀오고 그런 주장을 하는지 묻고 싶다. 누구라도 종묘 앞에 40층 건물이 들어서면 개방감은 사라지고, 제의적 상징성이 훼손된다는 데 공감한다. 다시 말하지만 종묘는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조상과 하늘을 잇는 의례 공간이다.

종묘 시야가 가려지면 수백 년 축적된 유산을 영구적으로 잃는다. 개발 이익은 10~20년이면 소진될 수 있지만, 세계유산 경관을 잃는 손실은 회복 불가능하다. 도시는 다시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종묘의 시야는 한 번 가리면 다시 열리지 않는다. 국가유산청이 사업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기존 기준인 55~71.9m 범위에서 개발하라는 것이다.

한국은 문화 선진국을 자처한다. 세계유산을 대하는 태도에서 후퇴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을 대하는 한국의 인식 수준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유산은 명예가 아니라 책임이다. 지금 필요한 건, 개발 속도를 늦추고 전문가와 시민 의견을 모으는 일이다. 나아가 보존과 개발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사업 지연에 따른 재산상 피해는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용적율을 높여주는 방식은 근시안적이다. 종묘의 하늘을 지키는 것은 존재 방식과 공간의 기억을 지키는 일이다. 서울이 세계도시로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길도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병식씨는 국가유산청 정책자문위원(순천향대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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