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최고령 리어왕', 90세 연기대상…'천생 배우' 이순재 별세
성실하게 연기했다. 끝의 끝까지도. 한국전쟁 상흔이 남은 땅에 배우란 직업을 알렸고, 무심히 쇼츠를 넘기는 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무대 위로 꺼냈다.
연극, 드라마, 영화. 매체도 가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종횡무진(縱橫無盡). 지난해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특별 연극을 선보인 그는 “예술이란 영원히 미완성”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정의하던 ‘최고령 현역 배우’ 이순재가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91세. 데뷔 69년만이다.

25일 소속사 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는 이순재가 이날 새벽 별세했다고 밝혔다.
90세 받은 상에도 눈물 흘렸다


꿈 많은 고등학생에서 ‘종횡무진’ 배우까지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에서 지내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라 대전에 정착했다. 호적상으로는 1935년생이다. 대전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연극 ‘햄릿’ 무대에 오르며 연기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대학 재학 중엔 연극반을 재건해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동인제 극단 ‘실험극장’을 창단하며 연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의 연기 역사는 한국 현대사와도 맥을 같이한다. 1980년 11월, 전두환 정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그가 몸담았던 TBC가 문을 닫았다. 이후 그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활동 무대를 KBS, MBC로 넓혀갔다.
대중 앞에 한 발 더


그런 그에게 ‘야동순재’라는 격 없는 별명까지 붙은 건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때문이었다. 그는 가족에게 큰소리를 치지만 밖에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허당 할아버지 이순재를 연기했다. 몸을 사리지 않은 그의 연기는 최근까지도 각종 플랫폼을 통해 회자되며 대중에게 웃음을 안겼다.
담당의 “휴식해야” 말할 때까지 무대에 섰다

2022년엔 동시에 네 편의 연극을 소화했고, 그해 12월부턴 러시아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통해 조연(쏘린) 출연과 첫 상업 연극 연출을 병행했다. 2023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수작인 ‘리어왕’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 연극의 주연을 맡은 그는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지난해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에스터를 1달 정도 연기하다 담당의로부터 휴식을 권고받고 하차했다. 여력이 닿는 데까지 무대에 오른 것이다.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달라”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라며 “연기를 쉽게 생각했던 배우들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렸다”고 말한 그는 특별무대에서 누구냐 묻자 출연한 드라마·영화·연극의 개수를 통해 자신을 소개했다. 이순재의 출연작은 모든 매체를 합해 약 400여편에 달한다.
당시 그는 ‘끝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며 연극 ‘리어왕’의 한 장면을 연기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전하고 싶었던 말은 모두 무대 위, 카메라 앞에 남아있었던 셈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0호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6시20분이다. 장지는 이천 에던낙원이다.
■ 더중앙플러스-천생 배우 이야기
「 "영원히 도전하라"…89세에 200분짜리 연극 소화했던 이순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9388
」
최혜리 기자 choi.hye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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