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경찰 2000명 늘리겠다...폭풍전야 ‘노동의 역습’ [스페셜리포트]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 제조 공장. 현장 관리자 박상철 씨(가명)는 “요즘은 산업안전 점검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한다”고 했다. 얼마 전 노동청으로부터 받은 공문에는 ‘산업재해 예방 특별근로감독 실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제출해야 할 자료만 수십 가지, 담당 직원 세 명이 일주일을 꼬박 매달렸다. 현장을 방문한 근로감독관은 추가 자료 보완을 요구하고 재방문을 기약했다. 박 씨는 “예전엔 가장 두려운 기관이 국세청이었는데 지금은 노동청으로 바뀌었다”며 “한번 감독이 들어오면 사실상 수사 대응 수준으로 모든 인원이 달라붙는다. 업무 강도와 압박감이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최근 노동청 조사 통보가 잇따른다. 산업안전·근로시간·임금체불 등 항목별 점검이 동시에 이뤄지며 인사팀과 법무팀은 사실상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했다”며 “노조 요구도 덩달아 늘어나 요즘은 노무 대응이 업무 대부분이 됐을 정도”라고 한숨 쉬었다.
경기 지역에 위치한 중견 제조 업체 A사는 올해 상반기 6개월 동안 근로감독을 네 차례나 받았다. 임금체불, 산재 특별감독, 근로시간 기획 감독, 하도급 근로자 계약 실태 조사 등이다. A사 관계자는 “근로감독관이 서류를 보고 ‘의심이 든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조사 절차로 넘어간다”며 “검찰·경찰보다 더 무섭다. 계속되는 서류 업무를 못 버티고 이직을 결정한 직원도 여럿”이라고 했다.
정부 정책 무게 중심이 ‘자본’에서 ‘노동’으로 이동하는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시장 원리가 희미해진 자리를 노동 우선주의가 대체하는 움직임이 확연하다. 기업을 향한 정책에서 투자와 육성 같은 키워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노동 안정과 근로자 보호가 그 앞에 서 있다. 친(親)노동 정부에 힘입어 노동권 보호를 외치는 근로자 목소리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이른바 ‘노동의 역습’이다.
이재명정부는 최근 근로감독관 2000명 증원을 천명하며 기업 현장 통제력을 강화 중이다. 노동권을 둘러싼 정치적 이슈도 끊이지 않는다. 노조에 힘을 실어주는 노란봉투법 시행이 코앞이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촉구는 거세며, 정년 연장 논의도 한창이다. 정부·여권·노동계가 한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기업 한숨은 커지고 있다. “노동권 보호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요즘은 해도 너무하다” “원활한 기업 활동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등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노동경찰 증원, 노동계 인사 중용
“근로감독관 2000명을 증원하겠다.”
올해 11월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발표한 근로감독관 증원 계획은 이번 정부 들어 강화된 노동 우선주의를 잘 보여준다. 산업재해 사고 예방을 위해 전국에 배치된 근로감독관과 산업안전감독관(약 3000명)을 기존 대비 무려 두 배 가까이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건설·조선업 등 산재 빈발 업종은 현장을 상시 점검하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문재인정부 시절, 근로감독관을 기존 2000명에서 3000명까지 1000명 늘렸는데 이번엔 그 두 배 수준이다.
근로감독관은 단순한 행정 공무원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101조에 따라 사법경찰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공무원이다. 기업과 사업주를 피의자로 조사하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수 있는 ‘노동경찰’이다.
근로감독관 증원은 숫자 그 이상 의미를 가진다. 노동부는 행정 권력을, 노동계는 제도적 정당성을 얻는다. 반면 기업에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과 여론이 자연히 확산된다. 한국 사회 권력 중심이 노동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다. 익명을 요청한 한 행정대학원 교수는 “근로감독관 증원은 단순한 공무원 확충이 아니라 노동 권력의 제도화”라고 분석했다.
이재명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노동 중심 사회’를 주요 국정 기조로 내세웠다. 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 임명은 상징적인 조치였다. 김 장관은 철도노조위원장과 전국운수산업노조 초대위원장, 민주노총위원장을 지낸 국내를 대표하는 노동 운동가다. 사상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 등장은 “노동계가 정책 전면에 복귀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김 장관뿐 아니다. 최근 신설한 대통령실 공공갈등조정비서관에 선발된 주진우 전 서울시 정책특보는 과거 민노총 정책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내정이 철회되긴 했지만, 한노총 출신으로 노동전문매체 ‘참여와혁신’ 대표를 역임했던 박송호 대표 역시 노동비서관에 임명되기도 했었다. 노동권 인사는 아니지만, 과거 참여연대 위원으로 노동권 강화 목소리를 내왔던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임명도 결이 비슷하다.
여론마저 ‘노동 편’에 가깝다. 리얼미터가 올해 10월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정부가 기업을 더 강하게 감독해야 한다”는 응답은 62.3%이었다. “과도한 규제”라는 답변율은 23.8%에 불과했다. 한 야당 관계자는 “이제 노동을 보호해야 표를 얻는 시대가 됐다”며 “노동 표심으로 정권을 얻은 정부인 만큼, 앞으로도 정책 드라이브를 더욱 거세게 걸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노동 정부와 여대야소 정국 속에서 기업은 외롭다. 경영계는 근로감독 강화와 노동 우선주의에 따른 ‘정책 리스크’를 토로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 노동 정책이 경제 논리보다 정치 공학에 매몰된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 시행에 이어 근로감독관 숫자까지 늘어나면 서류 업무가 급증하고 산업 현장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5호 (2025.11.19~11.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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