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1위 화장품, 한국거야? '티르티르' 국내선 안 통한 이유

김경미, 노유림 2025. 11. 25.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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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수출품목 1위 화장품, 해외공략의 역사

■ 경제+

「 지난 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위해 방한한 캐럴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올리브영에서 구매한 K뷰티 인증샷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고 의아하다는 반응(댓글)이 제법 있었다. 레빗 대변인이 선택한 제품이나 브랜드가 정작 한국에서 최고 인기 제품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그가 헛다리를 짚은 걸까. 잘나가는 수출 산업은 으레 떠오르는 대기업이 있지만, K뷰티의 주인공은 대기업이 아니다. 국내보단 해외에서 먼저 알려져 한국에 역진출하는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낸, 작지만 강한 인디 브랜드들이 K뷰티를 이끌고 있다. 이들에겐 지구 반대편의 여심을 먼저 홀린 비법과 이유가 있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위해 방한한 캐럴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자신이 구매한 K뷰티 인증샷을 SNS에 올렸다. [사진 인스타그램·유튜브 캡처]

◆“차라리 광야로” 해외로 눈 돌린 이유=뷰티 브랜드 ‘티르티르’의 김용철 이사(전 대표)는 국내 뷰티 시장 환경을 ‘별들의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치열하고 후발 주자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판매사는 총 3만6000여 개다. 이런 현실에 수많은 업체가 좌절과 포기를 경험했다. 하지만 간절하게 고민하는 이들은 기어코 돌파구를 만들어냈다.

2019년 문을 연 티르티르는 ‘도자기 크림’으로 국내 시장에서 반향을 얻었다. 하지만 국내 매출 200억원 달성 이후 정체기가 찾아왔다. “남들이 안하는 해외 시장에서 제대로 해보자”며 일본과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도 이때쯤이다. 2022년 일본에 처음 선보인 ‘마스크 핏 레드쿠션’은 동양인 피부에 맞춰 3종류 색으로 제품을 출시했고, 2023년 미국에 진출하며 20가지 색상으로 늘렸다. “전 세계 모든 여성의 피부색에 맞춘다”며 흑인이나 라틴계열 등 유색인종 모델을 기용했다. 한 흑인 뷰티 인플루언서는 이 제품이 자신의 피부색과는 맞지 않다는 아쉬움을 리뷰로 남겼는데, 이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리뷰 3주 만에 30가지 색상의 제품을 인플루언서에게 선물했는데, 흑인 피부와 찰떡같이 맞는 색상 덕분에 화제를 모은 것이다. 지난해 티르티르의 매출은 2736억원, 이 중 해외 매출이 90%를 차지한다.

해외에서 쌓아올린 K뷰티의 인지도는 내수시장에서 활약하던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선사했다. ‘다이소 립밤’ ‘저렴이 샤넬’로 유명한 손앤박의 김한상 대표는 “해외 소비자도 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고가 명품 화장품 대신 저렴이로 대체하는 현상이 확산됐다”며 “SNS에서 한국의 가성비 화장품이 인기를 얻으며 ‘대만의 올리브영’인 코스메드, 미국 왓슨스 등에서 제품을 팔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인디 브랜드들의 해외 도전 성과는 뷰티 산업의 체질을 바꿔놨다. 2023년부터 국내 중소기업 수출 품목 1위는 줄곧 화장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K뷰티 수출액은 55억1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박경민 기자

◆한류가 연 기회, 움켜쥔 K뷰티=해외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K뷰티 브랜드들엔 공통점이 있다. 현지 소비자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치밀한 분석이다. 2019년 뷰티 브랜드 ‘아누아’를 론칭한 더파운더즈는 그해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재팬에 입점하며 일본 시장부터 두드렸다. 국내 뷰티 시장보다 규모가 월등한 데다 K콘텐트 마니아층이 꾸준히 형성돼 있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물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현지 공략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소비자 심층 인터뷰였다. 대기업의 고급 제품과 드럭스토어 저가 제품으로 양분돼 있는 일본 뷰티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가 원한 건 딱 그 중간을 메워줄 제품이었다.

2022년 봄, 이 회사는 큐텐재팬의 대표 할인행사에 기초 제품 4개를 5만 원대 후반 가격으로 판매하는 한정 기획세트를 출시했다. 상자는 심플하고 세련된 한국 감성으로 디자인했다.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더파운더즈 관계자는 “할인 기간에만 살 수 있는 한정템이라는 점도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 이후 많은 K뷰티 브랜드들이 ‘세트 플레이’를 통해 일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난 8월 출간한 『K뷰티 트렌드』에서 “K뷰티 기업들이 고객관계관리(CRM) 데이터가 아닌 리뷰 데이터로 관점을 달리하고 있다”고 적었다. 치밀한 분석과 소비자 관점 지향을 통해 ‘필요하지 않아도 사고 싶게 만드는’ 노력이 K뷰티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소비자 구매 주기에 맞춰 기존 제품을 다 쓸 시점에 판촉을 시도하는 1세대 마케팅 방식과 차별화된다. 2023년 아모레퍼시픽에 인수된 코스알엑스는 2022년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기업과 손잡고 글로벌 소비자 리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34개국 60개 언어, 134개 유통 플랫폼에 남겨진 소비자 게시물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신제품을 출시해 큰 인기를 얻었다.

◆운칠기삼, 팬데믹과 이커머스=K뷰티 부흥은 때도 잘 맞았다. 2017년부터 중국 시장에 집중해 왔던 조선미녀는 한 한령으로 수출길이 끊기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판로가 막힌 상황에서 조선미녀 운영사인 구다이글로벌은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꼭 중국에 있는 중국인한테만 팔란 법이 있느냐’는 생각에서 차이나타운 점령을 목표로 미국 시장에 나섰다. 의외로 벽안의 금발 소비자들까지 한방화장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삼, 매실, 쌀 등 천연 재료를 앞세워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스토리텔링 소재로 삼은 덕분이다. 2020년 1억 원대였던 매출은 미국 시장의 성공에 힘 입어 2023년 1400억원으로 뛰었다.

팬데믹은 K뷰티 도약의 연료로 작용했다. 글로벌 소비자의 관심이 천연 재료를 활용한 스킨케어, 이른바 ‘클린뷰티’에 집중되며 단계별 기초제품에 충실한 K뷰티의 특징이 재조명됐다. 이커머스 플랫폼의 폭발적인 성장은 오프라인 유통망을 뚫지 못한 K뷰티 브랜드에 호재로 작용했다. 신화숙 아마존글로벌셀링코리아 대표는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활성화하며 온라인 시장이 빠르게 커졌고, 뷰티 기초관리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며 “국내 화장품 브랜드가 아마존에 대거 진입하며 해외 소비자와 접점을 넓혔고 ‘K뷰티 붐’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승승장구’ K뷰티, 앞으로도 잘될까=국내 화장품 대기업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는 박 모(35)씨는 비밀스러운 이중생활 중이다. 1년 전 론칭한 본인의 뷰티 브랜드 마케팅 때문이다. 그는 “브랜드가 잘 성장한다면 회사는 그만두고 온전히 내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뷰티의 성공 신화에 박씨 같은 투잡부터 유통업계, 투자업계, 글로벌 빅테크 출신까지 K뷰티호 승선을 노리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제품 기획부터 유통까지 책임지는 ODM과 손잡고 뷰티 브랜드 창업에 도전한 업체가 올해만 4000여 곳이다. 뷰티 브랜드 창업이 손쉬워진 이유는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제조사개발생산(ODM) 업체 덕분이다. 간단한 제품 콘셉트만 제시해도 가격대에 맞춰 빠르면 6개월 이내에 상품화가 가능하다.

신흥 뷰티기업으로 몰리는 인재들의 경력도 다양하다. 2024년 처음으로 대규모 공개채용을 실시한 더파운더즈의 연구개발(R&D), 사업 직군과 별개로 ‘최고경영자(CEO)-스태프’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구글, 프록터앤드갬블(P&G), 사모펀드 등 구성원의 출신 회사도 다양하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뷰티 소비자를 분석하는 관점 자체가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K뷰티의 남은 과제 하나는 오프라인 판로 개척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지에서는 백화점과 드럭스토어가 여전히 뷰티업계의 주요 판매처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브랜드를 경험하고 신뢰를 쌓는 공간으로 여전히 유효하다”며 “온라인에서 다진 입지를 오프라인으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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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노유림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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