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명랑운동회’로 일요일을 깨웠다

황지영 2025. 11. 25.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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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변웅전 전 의원. ‘안녕하세요 변웅전입니다’ 500회 특집 방송 때 모습이다. [중앙포토]

“굳센 체력, 슬기로운 마음, 명랑운동회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경쾌한 목소리로 늦잠을 깨워주던 목소리의 주인공, 1970~80년대 인기 프로그램 ‘명랑운동회’ 진행자이자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던 변웅전 전 의원이 별세했다. 85세.

24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전날 밤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1940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산농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63년 KBS(당시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최평웅 전 아나운서의 회고록 『마이크 뒤에 숨겨둔 이야기들』(2023)에 따르면, 고인은 젊은 시절 방송사고를 내 지방 발령을 받았다. 자정 ‘대공뉴스’를 진행하고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복귀해 새벽 2시 뉴스를 진행하다 낸 사고였다.

이 사건은 그에게 큰 시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지방 발령으로 전국을 돌며 다양한 공개방송과 좌담 프로그램을 맡아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그 경험이 제 능력을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약 1년 뒤 서울로 복귀했을 땐 대형 프로그램 진행력을 갖춘 아나운서가 돼 있었고, 1969년 MBC로 스카우트됐다.

이후 당시 최고의 예능 PD였던 김경태(1935~95)에 발탁돼 MBC 인기 프로그램 ‘유쾌한 청백전’ ‘묘기대행진’ ‘명랑운동회’ 등을 진행했다. ‘명랑운동회’는 코미디언 등 유명인들이 출연해 철봉에 매달려 풍선 터트리기, 손 안 대고 떡 먹기 등 각종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국민적 인기를 끌었다. 고인은 지난해 한국아나운서클럽 인터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실제로 재미있는 상황들이 많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게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잘 전달된 것”이라고 회상했다.

고인은 ‘유쾌한 청백전’ 보조MC로 고향 후배 이상용(1944~2025)을 발굴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MBC에서 50년간 가장 존경받는 아나운서이자, 아나운서실을 빛낸 선배에게 주는 헌정패를 받았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말이 느린 충청남도, 그중에서도 가장 느리다는 서산·태안에서 초·중·고를 나온 처지에서 각고의 노력, 눈물겨운 노력이 없었다면 절대 아나운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목숨을 건 비장한 각오로 임하니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치에는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을 맡으며 발을 들였다. 이후 15·16·18대 총선 서산·태안 지역구에서 3선 의원이 됐다. 그의 뛰어난 언변은 정치 무대에서도 빛을 발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라는 정치적 용어를 만들어냈다. 2011년 자유선진당 대표로 선출됐을 땐 “야당다운 야당을 하겠다. 작은 만큼 매운 정당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족으로 부인 최명숙씨, 아들 변지명·지석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다. 장지는 판교 자하연.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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