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시각각] ‘과민성 불황증후군’을 넘어서

서경호 2025. 11. 2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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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논설위원

“정부가 여전히 기업 물정을 잘 몰라요.”

지난주 대기업 임원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수출 대기업에 “환율 안정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거론하며 “수출 대금 환전을 왜 미루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달러를 쌓아두고 있는 게 아니고요. 글로벌 차원의 실시간 자금 소요를 계산하며 달러를 단기 자산으로 굴리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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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경기 대응은 과도한 경향
통화완화·재정확대도 환율 높여
환율·집값이 거시정책 우선순위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요 수출기업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그의 말을 요약해 보면 기업이 환율 안정에 협조(?)할지 말지는 기업인의 애국심보다 내외 금리 차가 중요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3.85~4%로 한국(2.5%)보다 최대 1.5%포인트 높다. 달러 자산으로 운용하면 4%대 수익이 나오는 단기 금융자산이 많으니 수출 대기업들이 굳이 수익률 손해를 감수하며 달러를 환전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달러당 1470원대 중후반에서 움직이는 현재의 고환율이 유지되거나 더 높아질 가능성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따른 대미 투자 부담과 거주자의 해외 증권투자 열풍도 환율 불안 요인이다.

환율은 한 나라의 전반적인 경제 기초체력을 반영한다. 지난달 말 원화 가치는 주요 교역 상대국과 비교한 실질 구매력을 기준으로(실질실효환율)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시장의 경고라고 봐야 한다. 지금의 고환율이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이 달러를 조달하지 못하는 ‘달러 가뭄’은 아니지만, 환율 수준 자체가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수입물가가 오르고 중소기업의 수입 원자잿값 부담이 커졌으며 유학비로 허리가 휜다는 기사가 요즘 눈에 띄게 늘어난 게 그 방증이다.

그렇다고 무슨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 즉 거시경제를 잘 운용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완화적 통화정책과 재정적자 확대’가 환율 상승 압력이라며 “금리 기조의 적정성을 점검하는 한편 국내총생산(GDP)의 4%를 웃도는 재정적자를 2~3%로 낮추고 재정준칙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윤종원 전 경제수석의 지적에 공감한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사라진 불황(Recession recession)’이라는 기사에서 “경제 불황이 멸종 희귀종만큼 귀해졌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불황이 줄면서 경제의 잠재적 위험이 커졌다는 점이다. 슘페터가 강조한 ‘창조적 파괴’가 잘 작동하지 않게 됐다. 불황은 고통스럽지만 경쟁력 없는 시장 참가자를 퇴출하는 구조조정 역할을 한다. 더 경쟁력 있는 쪽에 자원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한다. 이런 ‘불황의 미덕’이 없어지면 어찌 될까. 금융 위기와 재정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불황을 겪은 경험이 없으니 경제 주체가 주식 등 위험 투자에 거침이 없어지고 불황을 막기 위한 정부의 재정 비용은 점점 비싸졌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잠시 조정을 받고 있지만 올 들어 급등한 증시는 여전히 불안하고 재정적자와 나랏빚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25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3846.06)보다 93.81포인트(2.44%) 상승한 3939.87에,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856.44)보다 11.74 포인트(1.37%) 오른 868.18에 거래를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1477.1원)보다 1.2원 내린 1475.9원에 출발했다. 뉴시스

불황을 앞에 두고 정부가 두 손 놓고 있으란 얘기는 아니다. 정부가 적절한 수준의 경기 대응을 넘어 과도하게 대처할 유인이 많다는 지적을 하고 싶은 거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수술하려면 환자 체력부터 보강해야 한다”며 경기부양 방안부터 찾는 관료를 숱하게 봤다. 불황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넘치도록 정책 대응을 하는 정부의 행태를 ‘과민성 불황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싶다. 불황은 이왕이면 피하는 게 좋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대가를 치르진 말아야 한다.

막바지 예산 심사에 돌입한 국회가 현금 살포 예산이라도 좀 줄여서 대외적으로 재정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길 간절히 희망한다. 기준금리 동결이 예상되는 이번 주 한국은행 금통위에서는 금리인하 기조 중단이라는 선제적인 시그널이 나왔으면 한다. 지금 거시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환율과 집값 안정이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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