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포기 김장 대장정, 시식 포문 연 아기참새들

전둘진 2025. 11. 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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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별일 없지? 그날 김장하기로 했어."

감 수확이 끝나고 한숨 돌리면 기다렸다는 듯 김장 날짜가 잡힌다.

어머님은 김장 1주일 전부터 미리 대용량의 양념장을 준비하신다.

김장이 시작되면 비로소 겨울 한복판에 서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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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함께 찾아온 우리집 김장 풍경

[전둘진 기자]

"주말에 별일 없지? 그날 김장하기로 했어."

감 수확이 끝나고 한숨 돌리면 기다렸다는 듯 김장 날짜가 잡힌다. 김치 담그는 날은 빼놓을 수 없는 연례 행사이자 한 해의 진정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날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날은 돌아왔다. 날짜가 잡히면 그날 하루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김치 대장정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김장 1주일 전부터 미리 대용량의 양념장을 준비하신다. 재료 다듬기부터 시작해 황금 비율 양념장 제조에 이르기까지 분주한 날은 계속된다. 김장철 막이 오르면 일찍 김장을 끝낸 집은 여유롭게 겨울을 시작하고 일부 공공기관에선 김장김치 나눔 행사로 차가운 계절에 온기를 더하기도 한다.

김장이 시작되면 비로소 겨울 한복판에 서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시댁의 배추김치는 배추농사부터 시작해 모든 과정을 손으로 완성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배추를 수확하는 일부터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일까지 일사불란하게 이어간다. 김장하는 당일 아침, 100포기 배추는 냉수에 목욕재계하고 비로소 붉은 양념옷 입을 채비를 마친다.

오늘만은 주인공, 밥상 무대 오른 김장 김치
 김장철 풍경.
ⓒ seiwa_ on Unsplash
해질 무렵이면 흩어져 있던 일가친척이 시댁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고요하던 집이 순식간에 활기로 들썩인다. 거실에는 김장용 비닐이 레드카펫처럼 깔리고 뽀얀 배추가 새침한 얼굴로 입장한다. 배추 부대가 속속들이 등장하면 그때부터는 속도전이다. 잎사귀 사이에 맛깔스러운 양념이 차곡차곡 쌓이면 밀린 이야기꽃은 그 위에 풍미를 더한다.

방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아이들은 김치 양념 냄새에 이끌리듯 거실로 나온다. 한 아이가 김치 시식의 포문을 열면 잇따라 나온 아이들이 아기 참새같이 일제히 모여든다. 먹기 좋게 쭈욱 찢은 김치를 차례차례 입에 넣어주면 귀여운 참새떼는 알싸한 입김을 내뱉으면서도 이내 김치맛을 잊지 못해 다시 달려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 팔, 다리에는 김치 불꽃이 늘어가고 해 질 무렵 시작된 김치 축제는 어둑해져서야 막이 내린다. 빈 김치통이 불룩해진 배를 만족스럽게 두드리면 드디어 저녁상에도 김치가 오른다. 늘 밥상의 조연에 불과하던 김치도 오늘만은 명실상부 주인공으로 헤드라이트를 듬뿍 받는다. 빨강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김장 김치가 뽀얀 김을 내는 수육과 짝을 이뤄 밥상 무대로 나온다. 너나 할 것 없이 젓가락질이 바빠진다. 김치꽃이 활짝 피고 지도록 밥상에도 웃음과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처럼 매년 김장을 담그는 집도 있지만 주문해서 김치를 사 먹는 집도 적지 않다고 한다. 클릭 한 번이면 김장 김치가 집 앞에 도착하니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사 먹는 김치가 시간과 수고로움을 덜어주기는 하지만 아직은 어머님표 김치보다 맛있는 김치를 먹어보지 못했다. 깊은 손맛과 가족의 정성이 담긴 김치는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귀한 음식이자 온기로 꽉 채운 사랑이다. 맛도 일품이지만 함께 만든 음식이기에 더 특별하고 값지다.

김장은 우리의 전통 음식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족 간의 정이 돈독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해 먹을 김치를 담그면서 일 년을 마무리하며 다가올 해를 함께 그려보기도 한다. 김장의 시작과 끝에서 겨울은 한층 더 깊어간다. 추위와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을 김치가 환하게 비춘다. 어우렁더우렁 만든 김장 김치는 한 해 동안 우리네 밥상을 맛있게 채우고 헛헛한 마음까지 속속들이 채워줄 것이다.

온몸은 뻐근하지만 두둑한 김장통 만큼 마음도 풍성해졌다. 맛깔스러운 김치와 함께 남은 한 해도, 우리네 삶도 맛있게 익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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