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한계 돌파 시도한 '위키드'의 전략 몇 가지
[김건의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위키드: 포 굿>은 개봉 전부터 예견된 난관을 안고 시작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의 2막은 오랫동안 여러 문제들을 지적 받아왔다. 급격한 전개, 'Defying Gravity'에 필적할 만한 넘버의 부재, 인물 행동의 개연성 부족을 영화는 고스란히 물려받아야만 했다. 1년의 인터미션 후 돌아온 존 추 감독의 속편은 이 구조적 숙명을 어떻게 다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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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키드: 포 굿> 스틸. |
| ⓒ 유니버설 픽쳐스 |
<위키드: 포 굿>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착한 마녀 글린다의 캐릭터를 한 층 더 깊게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전편에서 글린다는 엘파바의 절친으로 기능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고 표면적으로는 가벼워 보이는 인기인. 하지만 속편은 이 캐릭터의 내면을 파고든다. 글린다는 성공과 권력을 통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오즈의 권력층 안에 들어가 그들의 언어로 동물들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다고, 체제 내부에서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이 믿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글린다가 대중 앞에서 화려한 연설을 할 때,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군중이 환호할 때 글린다의 미소는 점점 더 경직된다. 절친인 엘파바가 어떠한 연유로 사악한 마녀로 낙인을 찍혔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실제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오즈의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은 글린다를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그의 인기와 영향력은 동물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체제를 위장하고 정당화하는 분홍빛 베일에 불과하다. 새로 추가된 넘버 "The Girl in the Bubble"은 이 좌절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한다. 글린다는 반짝이는 버블 안에 갇혀 있다. 바깥에서 보면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안에서는 질식할 것만 같다. 마술에 재능이 없는 글린다를 마녀처럼 꾸며주는 버블은 동시에 그가 지닌 마녀로서의 한계를 상징한다. 이 노래는 뮤지컬 원작에 없던 글린다의 내면을 청각적으로 묘사한다. 글린다가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가장 무력하다는 역설을 포착하는 것이다.
영화는 원작 뮤지컬 2막의 약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여러 전략을 동원해 원작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새로운 음악의 추가다. 엘파바를 위한 "No Place Like Home"은 그가 쫓기는 신세가 되어 은신처를 전전하며 느끼는 고독과 향수를 표현한다. 무대 위에서는 짧게 지나갈 수밖에 없었던 감정적 순간에 영화는 숨을 쉴 시간을 준다.
신시아 에리보의 목소리는 엘파바의 내면을 드러낸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여 스스로 사악한 마녀를 자처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악한 마녀이기 이전에 엘파바 개인이다. 새로운 노래는 엘파바 개인의 고독을 표현한다.
새로운 넘버와 함께 배우들의 연기는 대사와 노래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메운다. 피예로가 엘파바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서는 장면에서 조나단 베일리의 표정은 갈등과 결단을 동시에 보여준다.
원작 뮤지컬에서는 이러한 전환이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전 장면들에서 피예로의 미세한 표정 변화, 주저하는 몸짓, 글린다와 엘파바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선을 축적하여 개연성을 일부 확보하고자 한다. 여기에 영화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감정을 다층적으로 묘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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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키드: 포 굿> 스틸. |
| ⓒ 유니버설 픽쳐스 |
2막의 단점들을 상쇄하려는 시도들이 여럿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위키드: 포 굿>은 원작의 구조적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다. 이는 전편보다 줄어든 러닝타임의 문제도 있다. 전편이 160분이었던 것에 비해 137분으로 줄어든 상영시간은 관객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만큼 다루어야 할 캐릭터의 내면 묘사는 얕아졌다. 다루어야 할 서사 또한 전편보다 많은 편이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엇갈린 여정, 피예로의 선택, 도로시의 등장과 주변 인물들이 탄생한 연유 등 속편은 설명해야 할 과제들이 쌓여있다. 영화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풀어내야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은 종종 서사에 끌려다닌다. 피예로가 엘파바 편으로 돌아서는 전환점은 감정적 축적보다는 플롯의 요구에 가깝게 느껴진다. 마담 모리블이 내면의 야망을 드러내는 과정은 몇몇 장면으로 대체되어 사실상 생략되다시피 표현되었다. 전편에서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 엘파바의 내면에 깊게 파고들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속편은 그걸 보장받지 못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추적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속편에서는 인물들을 깊게 들여다 볼 시간이 부족하다. 이는 곧 인물들의 행동 동기가 설득되지 않는 순간들로 누적되는 결과를 낳는다.
한계 극복하려는 시도
음악적으로도 전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Defying Gravity"는 뮤지컬 영화사에 남을 만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엘파바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르며 고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영화를 대표하는 신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속편에서는 그에 필적할 만한 한 방이 없다. 새로 추가된 곡들을 포함해 대부분이 서정적인 발라드 계열이고 인물들의 동기를 음악적으로 표현해낸 영민한 선택이긴 하지만, 관객의 심장을 한 번에 휘어잡는 강력함은 부족하다. "For Good"은 감동적이지만, "Defying Gravity"가 남긴 기억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원작 뮤지컬 2막이 갖고 있던 구조적 문제들을 영화는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급전개로 인한 개연성 부족, 임팩트 있는 음악적 순간의 부재, 압축된 러닝타임으로 인한 심리 묘사의 한계. 이 모든 것이 영화의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의미 있는 것은 극복하려는 시도 자체에 있다. 글린다에 대한 심화된 탐구, 새로운 넘버를 통한 감정선 보강, 배우들의 연기로 메우려는 서사의 틈새들. 완전한 성공은 아니지만, 원작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영화만의 인장으로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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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키드: 포 굿> 스틸 |
| ⓒ 유니버설 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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