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이산맥 암각화 찍던 사진작가의 단순하지 않은 기록

이완우 2025. 11. 2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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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인화초중고등학교 추억 사진 재능기부, 형정숙 작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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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우 기자]

 고창 선운사의 가을 단풍
ⓒ 형정숙
형정숙 작가는 지난 14일, 고창 선운사 단풍길을 걸었다고 했다. 늦가을 햇살이 단풍잎을 투명하게 비추고, 길가의 은행나무가 노란 바람을 풀어놓는 풍경을 오래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단풍은 금방 져버려요. 하지만 사진으로 남기면 그때의 공기와 색까지도 오래 기억되죠. 오늘 학생들의 표정도 그런 색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지난 19일, 임실 인화초중고등학교 강당에서 형정숙 작가의 재능기부 추억의 사진 촬영 행사가 있었다. 그녀가 선운사에서 담아온 가을의 기운은 인화초중고 강당에서 '추억의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한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 잔잔한 미소, 서로를 향한 격려는 단풍길의 은은한 색과 닮아 있었다.

늦깎이 학생들이 카메라 앞에 서는 날
 형정숙 사진작가의 재능기부 추억 사진 촬영 무대와 장비
ⓒ 형정숙
오랜 세월을 돌아 다시 학교에 온 늦깎이 학생들에게 이날은 잊지 못할 하루였다. 임실 인화초중고등학교 강당 단상 위에 작은 스튜디오가 꾸려졌고, 동료 사진작가인 여진모, 김태윤이 함께 준비한 '추억 사진 재능기부' 현장이 펼쳐졌다. 재학생 21명이 차례대로 단상 위에 올라 환한 표정을 지었고, 셔터를 누르는 작가들의 손끝도 덩달아 밝아졌다.

"원하시면 한복을 한번 입어보세요. 오늘의 기억을 더 아름답게 남기면 좋잖아요."

형정숙 작가가 조심스레 꺼내어 놓은 한복 몇 벌은 이날 촬영의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교복 대신 한복 자락을 살짝 쥐고 미소 지었고, 친구와 함께 팔짱을 끼거나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긴장을 풀었다.

인화초중고 강당 단상은 마치 이들을 위해 준비된 듯한 공간이었다. 높이도 적당하고, 뒤편의 따뜻한 조명과 커튼이 자연스러운 배경이 되어 주었다. 매년 이어지는 재능기부 촬영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추억'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임실 인화초중고등학교 추억 사진 촬영에 참여하며 한복을 입고 웃고 있는 학생들
ⓒ 김태윤
2022년, 장애인복지센터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을 때만 해도 형정숙 사진작가는 '장수 사진 재능기부'를 이렇게 오래 이어갈 줄 몰랐다고 한다. 그저 "어르신들이 예쁘게 남았으면 좋겠다"라는 작은 마음으로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촬영을 거듭할수록 그는 사진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는 장수 사진의 정형화된 틀을 바꾸기 시작했다. 먼저 어르신들에게 입혀드릴 한복을 직접 마련하였다. 색동고름, 자수 문양이 곱게 박힌 옥색 적삼, 붉은 잔꽃 치마까지 하나둘 늘어났다. 꽃길 같은 느낌을 위해 종이꽃 반지와 손수 만든 꽃다발도 준비했다. "장수 사진의 구도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이 담겼으면 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어느 날, 아흔둘의 어르신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촬영을 준비하던 형 작가는 손가락에 종이 꽃반지를 끼워드렸다. 순간, 그 어르신은 소녀처럼 수줍게 웃었다. 그 미소는 나이를 잊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진은 연출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순간이구나." 형정숙 작가는 그날 그 사실을 새롭게 마음에 새겼다.

하동 화개에 사는 노부부의 촬영은 또 다른 여운을 남겼다. 여러 컷을 찍다가 그는 문득 두 사람의 뒷모습을 담고 싶어졌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그분들의 인생 같았어요. 평생을 함께 걸어온 길,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동행의 깊이가 있었습니다." 렌즈 속 두 사람의 어깨는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고, 고향 산천을 바라보는 시선도 닮아 있었다. 형정숙 작가는 그 장면을 "말 한 마디 없는 인터뷰"라고 표현했다.
 노부부의 동행 뒷모습. 2024.7.10.
ⓒ 형정숙
담양 수북면 어르신들과의 작업은 더욱 따뜻했다.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일상의 이야기를 작은 책으로 묶었고, 형정숙 작가는 그 책에 실을 '인생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과 그림, 글이 한 페이지에서 만나는 작업이었다. "그분들은 한 권의 책이 되었어요. 그냥 사진이 아니라 그분들의 삶을 편집하는 과정 같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올여름 '동행' 촬영이었다. 농사로 허리가 굽고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그는 문득 기존 구도를 모두 버리기로 했다. "오늘은 다 벗어버려요. 양말도 벗어보고, 자세도 바꿔보고." 그 말에 촬영장은 갑자기 즐거운 실험실이 되었다.

그는 무릎베개 사진을 제안했다. 할머니가 "내가 언제 영감 무릎베개를 해봤을까?"라며 웃자, 할아버지는 아내 엉덩이를 토닥이며 "고생 많이 했지"라고 말했다. 주변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맴돌았다. 지켜보던 여진모 작가는 "이건 어디서 떠올린 거냐?"라며 혀를 내둘렀다.

형정숙 작가에게 재능기부는 '무료 촬영' 봉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지난 세월을 어루만지고, 삶의 깊이를 카메라에 담아 다시 돌려드리는 일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제가 드리는 선물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제게 주시는 이야기예요. 그 이야기들이 저를 계속 카메라 앞에 서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재능기부 활동은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동행사진관'이 되었다. 그녀 앞에서 어르신들은 꽃처럼 피어났고, 삶은 다시 한번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추억 사진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알타이산맥에서 발견한 '기록의 힘'
 몽골 알타이산맥으로 가는 초원 (2015년 7월)
ⓒ 형정숙
형정숙 작가는 여진모 작가와 함께 10년 전 몽골의 알타이산맥에서 선사시대 암각화를 조사하는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진행한 2015년 7월 중순의 알타이 탐사였다. 그때 그녀는 '기록이란 무엇인가'를 몸으로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초원을 사흘 달려도 초원이더라고요. 물도 없고, 씻을 곳도 없었어요. 몽골 게르에서 자는 일도 쉽지 않았고, 문명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지요."

하지만 고단함은 곧 경외로 바뀌었다. 알타이의 해는 지고도, 그 밝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해가 산 뒤로 떨어져 어둠이 다가올 시간이었건만, 하늘에는 여전히 잔광이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 시간에 형정숙 작가는 자신이 '모르던 세계'를 마주했다.
 몽골 알타이산맥 바위산 암각화 (2015년 7월)
ⓒ 형정숙
절벽의 바위에는 말과 마차, 사냥하는 사람, 기하학적 상징들까지 수천 년 전 유목민들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그 암각화들을 기록하기 위해 탐사대는 나무 비계를 절벽에 설치했다. 암각화의 눈높이까지 오르기 위해서였다. 바위를 만지지 않도록 천과 얇은 종이를 대고 조심스레 탁본을 떴고, 때로는 산악차량 지붕에 올라 망원렌즈로 멀리 떨어진 암각화의 윤곽을 살폈다.

"그들은 살아서 그림을 새겼고, 우리는 그 흔적을 다시 새기듯 기록했어요. 거기서 '기록의 힘'을 보았습니다. 그 힘이 제 사진에도 흐르고 있지요."

그 경험은 한국으로 돌아온 형정숙 작가의 사진 세계를 완전히 바꾸었다. 사진이란 '빛으로 새기는 탁본'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졌을 순간들
 몽골 알타이산맥 바위산 암각화 앞의 형정숙 사진작가 (2015년 7월)
ⓒ 형정숙
이날 촬영에는 인화초중고등학교 재학생 120여 명 중에서 초등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 8개 학급에서 21명이 참여했다. 이들 대부분은 학업의 시기를 뒤늦게 되찾은 70대가 넘은 만학도들이었다. 농사와 가사, 일터와 가족을 먼저 챙기느라, 때로는 자신을 미뤄두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한 학생은 사진 촬영을 마친 뒤 수줍게 말했다. "나는 평생 사진관에 간 적이 거의 없어요. 오늘 같은 날이 오다니……. 기분이 참 새롭네요." 여진모 작가는 그 말을 듣고, 셔터를 쥔 손을 더욱 조심스레 움직였다. "이분들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표식이죠. 그래서 재능기부를 계속하는 겁니다."

김태윤 작가도 덧붙였다. "우리가 찍는 건 사진이 아니라 '시간' 같아요. 오늘이 이분들에게 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추억의 사진 재능기부 촬영이 끝났다. 사진은 액자에 잘 넣어져서, 며칠 후에 형정숙 사진작가가 학교를 다시 방문해 학생들에게 직접 전달할 예정이다. 그날 강당은 또 한 번 작은 축제가 될 것이다.
 몽골 알타이산맥 암각화가 있는 바위산 앞 비포장도로 차량 위 망원경으로 암각화를 촬영하는 형정숙 작가 (2015년 7월)
ⓒ 형정숙
그날 강당에서 생생히 울리던 카메라의 셔터 소리는, 사실 오래전 알타이산맥의 바람 소리와 이어져 있었다. 형정숙 작가에게 사진은 '현재의 삶을 기록하는 도구'인 동시에 '과거의 흔적을 읽는 창'이기 때문이다. "알타이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일기장이죠. 오늘 찍은 학생들의 사진도 그들의 삶의 일기장이 될 수 있어요."

형정숙 작가에게 추억의 사진 촬영 재능기부는 단순한 봉사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시간을 붙잡아 주는 작업이며,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순간들을 '남게 하는 행위'였다. 세 작가가 나누고 공유해 온 재능기부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작은 감동의 이야기들이 사진 속에 쌓여 있었고, 그 기록들은 지역 공동체를 단단하게 이어주는 힘이 되고 있었다.

형정숙 작가는 언젠가 알타이산맥 암각화 탐사 사진전을 열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 매번 재능기부 촬영을 마칠 때마다 그 꿈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암각화와 오늘의 삶을 함께 보여주고 싶어요. 인간이 남기고자 하는 흔적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느끼게 하고 싶어요."

선사시대의 '기록', 가을 단풍의 '색', 그리고 임실 학생들의 '미소'. 서로 멀리 떨어진 세 시간은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났다. '기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 바로 그것이 형정숙 사진작가가 앞으로도 펼치고 싶은 희망이었다.
 몽골 알타이산맥 암각화가 있는 바위산 앞 비포장도로 차량 위 망원경으로 암각화를 촬영하는 형정숙 작가
ⓒ 형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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