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진출해야만 프로야구 선수?"...한국여자야구연맹, 여전히 '사회인 리그 올인' [더게이트 이슈분석]

황혜정 기자 2025. 11. 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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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야구, 직업의 시대
-WBAK, 사회인·엘리트 분리해야
-국민대, 엘리트 첫 발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포수 김현아가 전체 4순위로 미국 프로여자야구 무대를 밟는다. (사진=WPBL)

[더게이트]

여성이 '프로야구 선수'를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지난 21일(한국시간) 미국 여자 프로야구리그(WPBL·Women's Pro Baseball League) 드래프트에서 김현아, 김라경, 박주아, 박민서 네 명의 한국 선수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보스턴 1라운드 4번, 뉴욕 1라운드 11번, 샌프란시스코 2라운드, 뉴욕 6라운드. 숫자만 놓고 보면 '성공 스토리'지만, 그들이 지나온 길을 들여다보면 다른 문장이 떠오른다. "한국 안에서는, 여전히 길이 없다."
한국여자야구 대표팀. (사진=BFA)

WPBL 4명 나왔는데...한국 안엔 아직 '직업의 길'이 없다

네 선수는 공통적으로 "국내에 여자 프로리그가 없기 때문에 애초에 '직업으로서의 야구'를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사회인 여자야구 팀에 얹혀 뛸 수 있는 야구장을 찾아 전전했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어 사비로 야구 레슨장을 다녔다. 누군가는 진로 때문에 야구를 포기했고, 누군가는 "허황된 꿈"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도 버텼다.

이들이 WPBL까지 간 건 구조 덕이 아니다. 구조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이 끝까지 버틴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 더 분명해진다. 이제 질문은 "어떻게 버텼냐"가 아니라 "다음 세대는 이렇게까지 버티지 않고 갈 수 있느냐"여야 한다.
2023년 LX배 여자야구 대회 결승전 당시 모습. 서울 후라가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

사회인 vs 엘리트, 같은 풀에 섞어놓고는 답 안 나온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은 지금까지 사실상 '사회인 여자야구' 중심의 조직이었다. 전국 여자야구 주말리그 운영, 전국 여자야구 대회 개최, 대표팀 선발까지 대부분이 성인 동호인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 안에 유소녀도, 엘리트 지망생도, 직장인 클럽 선수도 뒤섞여 있다.

지금 구조에선 "사회인 리그 선수 = 국가대표 후보 = 유소녀 롤모델"이 한 풀 안에서 모두 처리된다. 사회인(생활체육) 야구와, 앞으로 프로를 지향할 유소녀·엘리트 야구는 애초에 목표가 다르다. 사회인은 참여·저변·커뮤니티가 우선이고, 유소녀·엘리트는 경기력, 육성, 진학, 진로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WBAK는 두 영역을 구분하지 않은 채 한 그릇에 담아왔다. 결과적으로 사회인은 사회인대로, 유소녀는 유소녀대로 모두 손해를 보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BFA)
국민대 여자야구부, '엘리트 트랙' 태동의 첫 신호

올해 국내에는 조용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하나 생겼다. 국민대학교에서 여자야구부가 창단되며, 엘리트 여자야구 선수를 키우기 위한 대학 팀이 첫발을 뗐다. 단순 동아리가 아니라 '여자야구 선수를 전제로 한 육성 시스템'을 갖춘 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들은 지난해 겨울부터 일찌감치 선수 모집을 마치고 훈련에 들어가 주 5일 매일같이 엘리트 남자 야구 선수들처럼 구슬땀을 흘리며 체계적으로 야구를 배우고 있다.

이 변화는 숫자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국민대 여자야구부의 등장은 여자 선수도 대학–국가대표–해외리그로 이어지는 엘리트 라인을 탈 수 있다는 신호탄이다. 그동안 남자 선수에게만 주어졌던 정규 루트가, 비로소 여성 쪽에서도 씨앗 단계로나마 만들어진 셈이다.

국민대 사례를 시작으로, 비슷한 엘리트 여자야구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면 유소녀–고교–대학–대표팀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본격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이 지점을 살리지 못하면 WPBL 4인 세대는 '한 번 지나가는 역사적 이벤트'로 끝난다. 반대로 이 지점을 붙잡으면, 국민대 여자야구부는 한국 여자야구 엘리트 트랙의 1번 노드가 된다.

프로구단-아마추어 여자야구 첫 연계 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됐지만 단 1회 대회로 그쳤다. (사진=롯데)

WBAK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선부터 그어라

이제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구호가 아니라 '선 긋기'다.

첫째, 사회인 여자야구와 유소녀·엘리트 야구를 제도적으로 분리해 설계해야 한다. 사회인·동호인 리그는 지금처럼 참여 확대와 지역 리그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되, 유소녀·엘리트는 초·중·고–대학을 잇는 연령별 리그, 선수 데이터 관리, 지도자 양성, 국가대표 상비군 시스템으로 별도 트랙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국민대 여자야구부를 시작으로 '엘리트 허브'를 늘리는 계획을 내놔야 한다. 여자야구부를 가진 대학을 얼마나 늘릴지, 그 아래 단계인 고교·중학교에 어떤 방식으로 팀을 심을지, 이 선수들이 국가대표와 WPBL 같은 해외 무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협회 차원의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유소녀 전담 조직·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성인 클럽과 유소녀가 같은 틀 안에서 관리되는 구조로는 엘리트 육성을 논할 수 없다. 유소녀 리그, 엘리트 캠프, 해외 트라이아웃 지원, 진학 컨설팅까지 전담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국내에 전국 유일 야구소녀를 위한 '천안 주니어 여자야구단'이 존재하지만, 자체적으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상위 기관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와 공조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구상해야 한다.

더그아웃에서 응원 중인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사진=BFA)

WPBL 4인은 '기적 세대'가 아니라, 로드맵 1페이지여야 한다

미국 여자 프로야구 리그(WPBL)에 진출한 네 명의 선수는 '길이 없는 시대에 억지로 길을 만들었던 세대'다. 그들이 보여준 건, 한국 여자야구 선수도 충분히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실력과 경쟁력이다.

이제 남은 건, 그 길을 제도로 만드는 일이다. 사회인 여자야구는 생활체육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고, 국민대 여자야구부로 대표되는 엘리트 유소녀 야구는 완전히 다른 트랙으로 키워져야 한다.

지금 한국 야구장은 여성 관중으로 절반이 채워진다. 하지만 '야구를 직업으로 삼는 여자아이'는 아직 예외다. WPBL 4인이 보여준 가능성이 다음 세대에게는 더 이상 예외가 되지 않도록, 이제는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이 방향과 선을 그어야 한다.

질문은 단순하다. "여성도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럼, 한국 여자야구는 그 시대에 맞는 판을 깔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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