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 다만 고요히 앉아 있고 싶을 때
[전사랑 기자]
완연한 가을을 마음껏 느껴보기도 전에 겨울이 오는 듯하다. 너무 빠르게, 또 한해를 넘겨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차분히 앉아 지나가는 한 해를 바라볼 여유가 간절하다.
보는 이를 깊이 끌어당겨서 깊은 명상으로 인도하는 작품들이 있다. 일상적인 번잡함을 넘어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부처의 모습을 그려온 김원교 작가의 작품이 그러하다. 고요한 명상으로 안내하는 가을의 전시, 김원교의 <다만 고요히 앉아 있을 뿐이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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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전경 |
| ⓒ 전사랑 |
"퇴직 후 전업작가가 되니 행복할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일들로 많은 고민과 인생의 풍파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때마다 경주 남산의 불상들과 우리나라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불상과 유물들의 은은한 미소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작가는 원래 전시 제목을 "제심징려", 즉 "마음을 다스려 사유를 맑게 하다"로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그만큼 고요히 앉아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생각을 맑게 하고자 한 수행의 결과물이자, 한 획 한 획의 붓질이 작가의 기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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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시 남산에 위치한 부처골 감실 석불좌상 |
| ⓒ 김원교 |
경주 남산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시대 부처상은 실물로 만나기가 쉽지는 않다. 산기슭 곳곳 자연석을 깎아 조각한 불상이기에 약탈을 비켜갔지만 옮길 수도 없고 자주 찾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유홍준 현국립중앙박물관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쉽게 찾아뵙기 어려운 경주의 불상들에 대해 이와 같이 고백한 바 있다.
"나는 그래도 이 부처님을 원망하거나, 미술사에서, 문화사에서 푸대접받고 있는 이 부처님을 가엾게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의 그 넉넉한 모습이 135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이 자리에 건재함을 축하드렸다.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자연 암석을 깎았기에 어떤 도굴꾼도 당신을 겁탈하지 못하였고, 바위를 깎아 감실을 만들었기에 풍화의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관광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사람의 손때를 입지 않았으니 어느 불상이 당신처럼 본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상처받지 않은 행복이 있었겠느냐는 축복이었다."
김원교 작가는 이 축복받은 경주 남산 곳곳에 위치한 부처상,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의 불상의 감동을 먹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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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교, <고요히 앉아_남산> 연작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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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교, <고요> 연작, 2025 |
| ⓒ 전사랑 |
"걸음을 굴 밖에서 굴 안으로 옮기면 마음도 또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우러러보는 자는 그 모습의 장엄과 미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완전히 내적인 영의 세계다... 움직임보다도 고요함 속에 사는 것이다. 종교의 의미는 석굴암 속에서 다하는 느낌이다... 여기에선 종교도 예술도 하나다."
이 연작은 석굴 조각의 감동을,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환기시키는 오마주이자, 새로운 작법으로 석굴암에서 현재로 끌어낸 실감 나는 현대적 재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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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교, <제심징려>, 2024-5 |
| ⓒ 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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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심징려> 에 그려진 반가사유상 |
| ⓒ 전사랑 |
미물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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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교, <문향>, 2024. |
| ⓒ 전사랑 |
예를 들어 김원교의 식물 작품은 집안에 부를 가져다준다고 해서 인기를 끌었던 '해바라기 그림' 같은 단순한 상징으로서의 그림과는 결이 다르다. 그의 식물은 시간의 흔적을 품은 존재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쪼그러져가는 감, 찻주전자에 담가둔 시들어가는 꽃 한 송이 등,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생의 흔적을 머금은 고요한 꽃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담담하게, 가는 시간을 받아들이며 시들어가는 생명에 깃든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머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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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교, <머문기억> 연작, 2024. |
| ⓒ 전사랑 |
그 시절은 지났으나 기억은 머물렀고 한 집안의 유물이 되고, 작품이 되었다. 집을 정리하고 실버 타운에 모신 작가의 부모님은 딸들 몰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지금은 편찮으신 와중에도 작가의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낚시를 실컷 하시고 경기도에서부터 직접 운전해 딸의 전시를 보러 오셔서 <머문 기억> 작품을 한 점 사가셨다 한다. 신혼의 설렘 못지않은, 노년의 생을 향한 단단한 의지와 애정이 느껴졌다.
전시를 모두 보고 나오는 길, 문득 깨달았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한 해를 붙잡으려 조급해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그대로의 시간에 머물러 감사할 것.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온기가 차 올랐다.
삼세영 갤러리
서울 종로구 평창동
11시-18시(일, 월 휴관)
11월 29일까지
무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창비, 1993. 천자목, 김성철, <서라벌 역사기행>, 도서출판 두르가, 2010. 유홍준, <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창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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