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20분…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홍익희의 비트코인 이야기]
2025년 10월 10일 저녁. 미국 증시 마감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100% 관세 예고는 디지털자산(코인) 시장에 즉각 충격을 가했다. 24시간 내내 거래가 가능한 코인 거래 시장 취약성이 한 번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비트코인은 바이낸스 기준 12만2574달러에서 10만4782달러까지 약 14% 급락했고, 이더리움도 12% 넘게 밀렸다. 리플·솔라나·도지코인·아발란체 등 주요 알트코인은 최대 50% 가까운 하락을 기록했다. 유동성이 얕은 거래소일수록 낙폭은 더 컸다.
24시간 동안 청산된 규모는 무려 190억달러(약 26조원). 코인 청산 역사상 최대 기록이다. 로이터는 이를 “중국 관세 발표로 촉발된 글로벌 리스크오프 상황 속 대규모 청산”으로 분석했다. 시장은 이날을 ‘마의 금요일’로 기억한다. 대규모 청산이 몰릴 때마다 노출되는 익숙한 패턴이지만, 이번에는 체계적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해졌다.
“버튼이 20분간 먹히지 않았다”
디페깅과 자동 청산이 만든 연쇄 폭발
폭락이 절정에 달하던 시각, 일부 투자자들은 손을 쓸 수 없었다. “매수 버튼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불만이 커뮤니티를 가득 메웠다. 글로벌 1위 거래소 바이낸스는 “핵심 매칭엔진과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는 정상 가동됐다”고 설명했으나, 사용자 경험은 달랐다. 실제로 화면은 응답하지 않았고, 일부 코인은 ‘0달러’로 표시되는 디스플레이 오류도 발생했다.
이런 현상은 급변동 국면마다 반복돼왔다. 주문 체결은 정상인데 UI만 얼어붙는 ‘반쪽 마비’ 상황이다. 중앙화 거래소 특유의 구조적 병목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매칭엔진은 초당 수십만건을 처리하는 거래소의 심장이다. API는 기관 트레이더와 알고리즘 트레이딩 봇이 접속하는 통로다. 이 두 기능이 멈추지 않았다는 것은 기관·봇의 주문은 계속 체결되고 있었다는 의미다. 반면 사용자 인터페이스(UI)는 과부하에 걸렸다. 주방은 돌아가는데 주문서가 멈춘 식당과 같은 상황이었다. 결국 초단타 알고리즘이 시장을 장악한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실질적으로 매수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태는 몇몇 담보자산의 가격 괴리(디페깅)에서 시작됐다. WBETH·BNSOL·USDe 같은 코인이 기준가 대비 20~30% 급락하면서 담보가 무너졌다. 알고리즘 청산이 줄줄이 발동됐다. 자동 매도 물량이 폭증했고, 매수 호가는 비어갔다. 주문서의 유동성이 증발한 것이다.
문제는 이 디페깅이 단순한 가격 급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장 간 연결 구조의 균열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코인은 여러 체인·브리지·포지션 구조로 얽혀 있어 하나의 자산에서 발생한 충격이 순식간에 다른 자산으로 번진다. 이번 사례는 그 상호 연동성이 얼마나 취약한지 다시 보여줬다.
동시에 거래 요청량은 평소 대비 수십 배로 늘었다. UI 서버는 실시간 데이터를 감당하지 못했고 사용자 화면은 멈춰 섰다. 바이낸스는 이를 “일부 플랫폼 모듈의 일시적 글리치(glitch)”라고 규정했지만, 원인은 구조적이었다. 중앙화된 단일 인프라가 극단적 변동성 앞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극단 상황에 대비한 ‘부하 분산 시스템’이나 ‘장애 유발 구간 격리’ 방식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한 셈이다.

드러난 중앙화 거래소 ‘단일 집중’의 민낯
바이낸스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보상책을 발표했다.
먼저 디페깅 피해 보상액을 2억8300만달러 책정했다. WBETH·BNSOL·USDe 담보 포지션이 특정 시간대 강제 청산된 사용자에게 청산가와 종가 차액을 보상하고 수수료를 환급했다. 또 ‘투게더 이니셔티브(Together Initiative)’라는 이름으로 4억달러를 마련했다. 개인에게 최대 6000USDC까지 지급하고, 기관에는 유동성 1억달러를 지원했다. 이는 ‘법적 책임이 아닌 신뢰 회복 조치’임을 강조했다.
보상 규모만 보면 대형 은행권의 긴급 유동성 공급 조치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하지만 코인 시장은 법적 규율이 느슨해 거래소의 선의에 의존하는 구조가 지속돼왔다. 자발적 보상으로 위기를 넘길 수는 있어도 제도적 안전판을 대체할 수는 없다.
총 6억달러 이상을 투입했지만, 정작 핵심 질문은 남아 있다. “왜 버튼이 멈췄는가?” 아직도 바이낸스는 기술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설명되지 않은 공백은 신뢰를 더욱 흔들었다. 투명성이 부족할수록 시장 불신은 누적된다. 거래소가 제시하는 숫자보다 이용자들이 경험하는 장애가 더 강력한 신호로 작동하는 까닭이다. 이번 사태는 하나의 버그가 아니라 구조적 위험을 드러낸 사건이다. 전 세계 현물·파생 거래의 60% 이상이 바이낸스에서 이뤄진다. 단 한 번의 장애가 곧 전 시장의 정지로 이어지는 구조다.
리스크 관리 체계도 투명하지 않다. 매수 제한이나 자동 청산 기준이 어떻게 설정돼 있는지는 외부에서 알 수 없다. 거래소가 유지하는 보험 기금도 패닉 상황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손실 규모가 기금 흡수 능력을 넘어서자 최종 안전장치인 ADL(자동 레버리지 해제)이 발동됐다. 시장은 결국 거래소의 내부 기준에 따라 급제동이 걸린 셈이다.
거래소가 영업을 중단하지 않는 한, 사용자들은 이 내부 기준을 알 수 없다. 이러한 불투명성이야말로 신뢰를 약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멈추지 않았던 탈중앙화 거래소
신뢰 복원을 위한 제도 설계 필요
흥미롭게도 같은 시각 탈중앙화 거래소(DEX)는 중단 없이 작동했다. 유니스왑·아베·하이퍼리퀴드 등 온체인 기반 거래소는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에서 자동 처리되기 때문이다.
DEX가 체인 혼잡으로 느려질 순 있어도 ‘버튼이 먹히지 않는’ 식의 중단은 거의 없다. 이는 중앙 서버를 두지 않는 구조적 특성 덕분이다. 장애 발생 원인이 통째로 블록체인에 기록되기 때문에 특정 기관이 원인을 숨길 수도 없다. 이번 사태가 남긴 과제는 분명하다. 사고 원인 규명이 먼저다. 기술 로그·체결 로그 공개 등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돼야 한다. ‘기술 공시 의무’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장애 발생 시 응답시간·가용률·API 상태를 실시간 공개하도록 제도화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극단 상황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방식도 논의될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표준화된 절차지만 코인 시장에서는 여전히 초기 단계다.
코인 거래소는 ‘검증 가능한 거래소(Verifiable Exchange)’로 전환이 촉구된다. 핵심 거래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주문·청산 내역을 외부에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코인베이스가 운영 중인 ‘베이스체인(Base Chain)’이나 글로벌 거래소 OKX의 ‘준비금 증명 롤업(Proof-of-Reserves Rollup)’이 선행 사례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신뢰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금융시장 규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일이다. 검증 가능한 거래소는 그 대안을 제시한다. 글로벌 보험 기금 표준화에 대한 논의도 나온다. 바이낸스의 6억달러 보상은 자발적 선택이다. 향후에는 가상자산서비스제공자(VASP) 포럼 등 국제 협의체를 통해 상시 일정 비율을 적립하는 공동 보험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코인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 시장이기 때문에 단일 국가의 규제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초국경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다.
10월 10일의 20분은 짧았지만, 시장의 신뢰가 멈춘 시간이기도 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신뢰는 단 하나의 오류로 무너질 수 있다. 투명한 보고와 검증 가능한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한, 같은 사고는 다시 발생한다.
암호화폐 시장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거래의 자유는 투명성 위에서만 유지된다”는 상식을 제도와 기술로 증명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단 하나의 버튼이 며칠이 아니라 몇 초라도 멈추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6호 (2025.11.26~12.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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