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일본 차례"…전문가가 본 '한미 핵잠 협상'에 담긴 뜻 [월간중앙]

2025. 11. 2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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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리포트] 글로벌 전문가들이 본 한·미 핵 잠수함 협상 의미

우라늄 농축·비확산 우려 시험대…억제력 판도 바꿀 무제한 잠항 능력
한반도 해역선 핵추진 잠수함 운용 효율성 의문…바다 위의 깊은 고민

2024년 11월 18일 부산작전기지에 미국 해군 로스앤젤레스급 원자력추진잠수함(SSN) 컬럼비아함이 군수품 적재와 승조원 휴식을 위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해군은 컬럼비아함 입항을 계기로 한·미 해군 간 함정 방문 등 교류협력을 통해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공고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져 북한이나 중국의 잠수함을 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핵추진 잠수함(핵잠) 도입의 필요성을 공식화했다. 곧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의 핵잠 건조를 승인했다”고 밝히며, 한동안 물밑에 머물렀던 한국의 ‘핵잠 추진론’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번 발언은 한국의 핵잠 구상이 더는 군사기술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미·중 경쟁과 확장억제 체제 재편이라는 동북아 전략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물밑에서 이어져 온 핵잠 논의는 한·미 원자력협정, 핵확산금지조약(NPT),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체계 등 제도적 제약 속에서도 지속돼 왔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기술적·정치적 지원 신호가 확인되며, 논의는 한층 ‘실행 국면’에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핵잠은 단순한 전력 증강 사업이 아니라,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 틀 속에서 어느 수준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외교·안보의 시험대다.

〈월간중앙〉은 핵잠 도입이 한반도 안보 환경과 동북아 전략 균형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진단하기 위해 브라이언 클라크(Bryan Clark·미국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 안드레이 바클리츠키(Andrey Baklitskiy·유엔군축연구소 선임연구원), 알레시오 파탈라노(Alessio Patalano·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교수), 나임 살릭(Naeem Salik·파키스탄 전략비전연구소 박사), 드미트리 스테파노비치(Dmitry Stefanovich·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국제안보센터 연구원) 등 국제 전문가 5인의 견해를 들었다.

1 나임 살릭(Naeem Salik) 파키스탄 전략비전연구소(South Asian Strategic Vision Institute) 박사.2 드미트리 스테파노비치(Dmitry Stefanovich)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국제안보센터 연구원.3 브라이언 클라크(Bryan Clark) 미국 허드슨연구소(Hudson Institute) 선임연구원. 4 안드레이 바클리츠키(Andrey Baklitskiy) 유엔군축연구소(UNIDIR) 선임연구원.5 알레시오 파탈라노(Alessio Patalano) 런던 킹스칼리지(King’s College London) 교수.

“억지력 강화 vs 불확실성 증대”

브라이언 클라크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핵잠이 “한국이 아시아 전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더 높은 생존성과 효율성으로 방어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전투기나 수상함 중심의 현재 방어 구조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며 “북한이나 중국 지도자들이 한국 영토나 해상 접근을 위협할 때 신중히 판단하게 하는 억지력을 제공한다”고 짚었다.

클라크 선임연구원이 전략적 효용을 강조한 반면, 런던 킹스칼리지의 알레시오 파탈라노 교수는 국제정치적 반작용을 우려했다. 파탈라노 교수는 “핵잠 도입의 정책 발표와 실제 능력 구현은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추진 선언’은 북한과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 단기적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지만, 실제 개발 단계에 들어가면 IAEA 등 국제 규정에 따른 절차를 밟게 돼 오히려 긴장이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파탈라노 교수는 또 “한국의 선택은 일본 등 다른 국가들이 유사한 길을 모색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핵잠 개발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장거리·지속 잠항이 가능한 차세대 추진체계 연구를 확대하며 관련 의욕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내부에서도 원자력 추진 기술의 도입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오커스(AUKUS) 체제 이후 일본이 ‘핵잠 경쟁’에 참전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 같은 도미노 효과는 곧바로 중국과 러시아의 경계심을 자극한다. 파키스탄 전략비전연구소(SVI)의 나임 살릭 박사는 “한국의 핵잠 도입은 기존의 동북아 전략 균형을 흔들며, 북한의 적대적 반응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이 자체 핵잠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계기로 작용해 역내 안보 환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으며, 중국 역시 이를 부정적으로 인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국제안보센터의 드미트리 스테파노비치 연구원은 “한국의 핵잠 확보는 미국 동맹국 해군의 임무 분담을 확대해 미 해군이 러시아와 중국 견제에 더 많은 자산을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며 “결국 이는 역내뿐 아니라 세계적 군비경쟁 심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스테파노비치 연구원은 또 “동북아에는 실질적인 안보 구조가 부재하지만, 한국의 핵잠 개발이 계기가 되어 역내 군사안보와 위험 감축을 위한 대화체가 만들어진다면 장기적으로 안정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유엔군축연구소(UNIDIR)의 안드레이 바클리츠키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와 중국의 반응에 주목했다.

바클리츠키 선임연구원은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의 핵잠을 미국 동맹의 역내 군사력 강화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며 “재래식 무기만 탑재하더라도 해상로 통제 능력을 높이고, 중국·러시아 해군의 핵전력 구성요소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북한은 이를 자국의 해상 기반 핵전력 개발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0월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한·미 양국이 핵 비확산 의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호주 모델이 던진 질문…한국형 핵잠의 한계와 과제

한국은 핵보유국이 아니기에 핵잠을 개발하려면 미국의 협조뿐 아니라 IAEA와의 별도 안전조치 협정 마련이 필수적이다. 자칫 NPT 위반 논란으로 번질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추진 연료로 저농축우라늄(LEU)을 선택하면 비확산 우려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LEU는 U-235 비율이 20% 미만으로 무기 전용 위험이 낮다. 반면 고농축우라늄(HEU)은 20% 이상(무기급은 통상 90% 이상)으로 확산 우려가 크다. 미국은 핵잠에 HEU를 사용한다.

살릭 박사는 “한국은 NPT 체약국으로서 무기급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저농축우라늄(LEU)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잠수함 원자로 연료가 IAEA의 직접 검증 대상에서 예외로 다뤄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한국의 핵잠 추진은 비확산 체제 내에서 새로운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클라크 연구원은 “LEU 사용은 비확산 위험을 상당 부분 줄인다. 한국은 이미 LEU 원자로를 운용하고 있지만, 아직 자체 농축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며 “LEU는 출력이 낮고 비교적 자주 연료를 교체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한국 해군의 작전 반경과 임무 특성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클리츠키 연구원은 “LEU가 일부 위험을 줄이더라도 IAEA 안전조치협정에서 해군 추진용 핵연료가 예외로 다뤄지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며 “향후 한국이 자체 농축 능력을 확보하려는 유혹을 받는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비확산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비확산 체제의 모범국가’로 인정받아온 외교적 신뢰와 직결된 사안이다.

스테파노비치 연구원은 “저농축우라늄 기반 핵 연료는 NPT 체제 내에서 비교적 다루기 쉬운 사안이지만, 향후 IAEA가 군사용 핵기술 이용에 대한 별도의 감시체계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파탈라노 교수는 “호주의 사례에서 보듯, 핵잠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상징성이 강한 사안”이라며 “LEU 선택이 비확산 우려를 자동으로 해소하지는 않지만, 국제사회와의 신뢰 구축을 위한 외교적 설명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커스(AUKUS)의 일원인 호주는 핵잠을 ‘미국·영국과의 전략적 기술동맹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호주는 영국의 차세대 설계를 바탕으로 미국의 핵추진 기술을 결합한 차세대 핵잠(SSN-AUKUS)을 추진 중이며, IAEA가 해군 원자로 연료에 어떤 감시체계를 적용할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호주는 “우라늄 농축·핵연료 생산·해군용 사용 핵연료 재처리 프로그램은 추진하지 않겠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월 29일 경북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확대 오찬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한반도 해역, 핵잠 운용의 현실성은?”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을 경우 ‘자율성’에 변화가 생길지도 주목된다. 미국이 농축우라늄을 공급하더라도 원자로 모듈, 연료 주기, 정비 등은 별도 협상 대상이기 때문이다. 앞서 호주의 사례에서도 봉인 코어(sealed core)와 정비 문제가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핵심 쟁점은 결국 ‘누가, 어디서, 어떤 절차로’ 연료와 정비를 관리하느냐다.

살릭 박사는 “만약 미국이 한국 핵잠에 HEU 연료를 제공한다면 오커스 협정 때와 같은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며 “특히 중국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한국은 미국의 연료 공급에 의존하게 돼, 미국이 공급량을 조절함으로써 핵잠 운용 규모를 간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클라크 연구원은 “대부분의 HEU 원자로는 운용 기간 내 재급유가 필요 없기 때문에 기술적 종속성은 제한적”이라며 “연료 해체 등 일부 절차를 미국에서 수행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반면 파탈라노 교수는 “훈련·운용·정비·폐기 전 과정에서 ‘제도적 의존’은 불가피하며, 한국은 그 비용과 이익을 현실적으로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핵잠은 단순한 무기 체계가 아니라 동맹 구조와 자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스테파노비치 연구원은 “연료 공급과 정비를 누가 담당하느냐에 따라 의존 정도가 달라지겠지만, 미국 의존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핵잠 보유가 한·미 동맹의 구조적 균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클라크 연구원은 “핵잠은 재래식 미사일과 어뢰 공격 능력을 강화할 뿐 미국의 확장 억제를 대체하지 않는다”면서도 “핵잠은 한국이 향후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경우, 세컨드 스트라이크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어 북한에 대한 억제 효과를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 실태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25년 3월 8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좁은 해역에 ‘거대 전력’

한반도 주변 해역은 작전 반경이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핵잠의 전략적 상징성에 비해 실제 운용 효율성은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살릭 박사는 “한국 주변의 작전 환경을 고려할 때 핵잠은 일종의 사치가 될 수 있다”며 “현대식 디젤전기추진(AIP) 잠수함으로도 한국의 방위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핵잠 도입은 북한의 대응을 촉발해 오히려 안보 환경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바클리츠키 연구원은 “한국 인근 해역 중심의 작전에는 디젤 잠수함이 비용 효율적이고, 경우에 따라 더 조용할 수도 있다”며 “정치적 부담도 훨씬 적다”고 말했다.

파탈라노 교수 역시 “핵잠은 장거리 순찰이나 원거리 작전에는 압도적 장점을 가지지만, 한국 해역에서는 디젤 잠수함의 은밀성과 기동성이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핵잠의 가장 큰 장점은 ‘장시간의 잠항’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국 해군이 장시간 수중에서 생존하며 재래식 미사일 공격을 수행할 수 있다면, 억제력 측면에서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결국 핵잠 논의는 단순한 무기 체계 도입이 아니라,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동맹과 자율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갈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살릭 박사는 “핵잠이 미국의 확장 억제와 한국의 독자 억제력 사이의 경계를 흐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들은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를 운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이 같은 군사적 진전이 장기적으로 한국이 독자 핵능력을 확대하려는 유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결국 관건은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이 얼마나 신뢰할 만하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반면 스테파노비치 연구원은 “핵잠은 미국의 확장 억제를 강화함과 동시에 한국의 제한적 자주 억제력도 높이는 이중 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만약 한·미 동맹이 약화된다면, 핵잠은 한국의 독자적 억지 및 원해 전력 투사 수단의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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