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안의 시시각각] 임은정·백해룡 드림팀 아니었나

지난달 12일 이재명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과 백해룡 경정이 함께 세관 마약 외압 의혹을 파헤치게 됐다는 발표에 더불어민주당에선 환호가 나왔다. “3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속 시원한 결정이다. 임 검사장과 백 경정을 믿는다”는 김병주 최고위원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임 지검장과 백 경정은 윤석열 정부 시절 검찰과 경찰의 대표적 내부고발자였다. 그런 두 사람이 지난 정부의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이다. 그런데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임 지검장과 백 경정이 근무 중인 동부지검에선 불협화음만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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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엔 “눈빛만 봐도 위로”라더니
세관 마약 의혹 사건 수사 충돌
이 대통령 지시 불구 불협화음만
」

세관 마약 사건은 2023년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이 필로폰을 밀수하는 과정에 세관 직원이 가담했고, 백 경정팀이 수사에 나서자 검찰·경찰은 물론 대통령실까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특히 백 경정은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내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사업을 했다는 공개 발언까지 했다. 이 수사는 최소한의 성과가 보장돼 있다. 백 경정과 사건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김찬수 경무관은 국회에 출석해 대통령실 외압과 관련해 상반된 증언을 했다. 최소 한 명은 거짓말했다는 얘기다. 두 경찰 간부 중 누가 허위 증언을 했는지를 밝혀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두 사람이 정반대 증언을 하면 진실 규명이 쉽지 않다. 1997년 발생한 ‘이태원 살인사건’의 경우 두 명의 미국인 중 범인을 확정하는 데 19년이 걸렸다. 그러나 다른 목격자가 없었던 이태원 사건과 달리 이번 외압 의혹은 수사에 관여한 인물이 많다. 20명 넘는 수사팀이 달라붙으면 퍼즐을 금세 맞출 수 있다.
핵심은 검경과 대통령실의 외압 의혹이다. 더 나아가 백 경정이 언급한 대통령 내외 마약사업 주장까지 밝혀낼지도 관심이다. 백 경정 참여 없이는 규명하기 힘든 수사다. 임 지검장과 백 경정의 합동수사는 여기서 틀어졌다. 임 지검장은 수사 외압의 피해자인 백 경정이 자기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이 대통령의 판단과 배치한다. 이 대통령은 “특히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백 경정을 합동수사팀에 파견하라”고 했다. 누가 봐도 사건의 몸통인 수사 외압을 규명하라는 취지다.
백 경정은 “이 사건의 실제 범죄자는 대검”이라며 “검찰이 ‘셀프 수사’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수사 외압 피해자라는 백 경정의 말을 믿는다면 검찰이 범죄자란 얘기도 귀담아듣는 게 순리다. 그러면 검찰 역시 당사자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건 아이러니다. 백 경정을 동부지검에 초대한 사람이 임 지검장이다. 임 지검장은 지난 7월 검사장으로 파격 발탁된 직후 백 경정과 채 해병 사건의 폭로자인 박정훈 대령을 초청했다. 당시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임 지검장은 “내부고발자의 애환, 의심, 불안을 잘 알고 있다”며 일정을 강행했다. 박 대령은 불참했으나 백 경정은 동부지검을 방문했다. 임 지검장과 면담한 뒤 “검사장님과 비슷한 고난을 겪어 눈빛만 봐도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에 참여하게 된 백 경정이 동부지검 합수단 역시 수사 대상이라고 주장하며 독자적인 수사팀을 요구하면서 두 사람의 대립이 지속하고 있다. 검찰 수사를 불신하는 백 경정이 보라는 듯 임 지검장은 자신 휘하에 있는 합수팀원에 대해 “대견하다 못해 존경스럽다”는 칭송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검찰의 장례를 치르는 장의사”를 자임하며 공소청의 보완수사권까지 반대해 온 임 지검장이 검사가 주도하는 직접수사를 치켜세우니 어리둥절하다.
이들의 대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답답하다. 두 사람은 의혹이 증폭돼 온 이 사건에 대해 이제는 답을 내놔야 한다. 자신들이 비판해 온 검경 수사 방식을 탈피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온 두 사람이 협업은 고사하고 지리멸렬한 잡음만 발산한다면 이 대통령과 여권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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