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우의 시선] 항소 포기와 배임죄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대한민국 승소 결정으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대한) 4000억원의 정부 배상 책임은 모두 소멸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낸 중대한 성과”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2022년 취소 소송 제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뒤늦게 숟가락 얹으려 하지 말고 당시 이 소송을 반대한 데 대해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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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스타 소송은 배임”이라던 민주
대장동 판결 나자 “배임죄 폐지”
국힘도 무작정 반대 말고 대안을
」

실제로 당시 민변 소속으로 론스타 관련 정보공개 청구를 이끌었던 송기호 경제안보비서관은 “판정 무효가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며 “통상 3년이 걸리는 심리 기간 수백억원의 복리 이자만 불어날 것”이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근거 없는 자신감” “역사의 죄인이 될 것” “소송 지면 이자를 대신 낼 거냐”고 압박했다. 한 전 대표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추후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민주당 내에서 나왔다”며 “내부 직원들에게 만약 배임죄가 된다면 내가 감옥에 가겠다고까지 말하며 겨우 다독였다”고 주장했다.
소송에서 패소했다면 한 전 대표는 배임 혐의를 받았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 제정한 형법상 배임죄와 62년 상법에 들어간 특별배임죄가 있다. 형법상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를 위반해 손해를 끼치면 처벌한다’는 규정이다.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이다. 임무가 직위와 관련이 있는 업무라면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해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이 강화되고, 범죄 이득액이 5억원을 넘으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에 따라 3년 이상, 50억원이 넘으면 5년 이상 무기까지 형량이 뛴다. 상법상 특별배임죄는 ‘기업 경영진이 회사의 재산상 이익을 해할 목적으로 임무를 위배할 경우’로 한정되기 때문에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에 가깝다.
배임죄, 특히 업무상 배임죄는 경영자가 선의로 내린 결정이라 해도 결과적으로 회사의 손해로 돌아오면 처벌이 가능하다. 검찰의 자의적이고 사후적인 판단에 따라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7월 1차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까지 확대하면서 이런 리스크가 한층 커졌다. 판례 중심의 불문법을 따르는 미국·영국에서는 배임죄라는 항목이 아예 없다. 문제가 생기면 사기죄로 처벌하거나 주주대표소송 등 민사로 해결한다. 대륙법 계통의 독일·일본 등에는 배임죄가 있지만, 법률상 위임관계일 경우나 고의로 손해를 입힐 목적이었다는 점을 확인한 경우에만 처벌한다. 우리 대법원도 이미 2011년에 판례를 통해 “배임을 넓게 해석하면 계약 자유의 원칙을 국가 형벌권이 침해할 수 있다”며 적용 범위를 최소화했다.
민주당이 배임죄 폐지를 들고나오자 국민의힘은 반사적으로 “이재명 구하기를 위한 꼼수”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배임죄 폐지 반대라는 결론만 보면 참여연대와 같다는 게 아이러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재계에서 “민사 분쟁 수준의 경영판단을 검찰이 형사사건으로 몰고 간 경우가 많았다”며 환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민의힘이 “총수 일가와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기 어려워진다”는 참여연대의 우려에 공감하는 건 아니다. 대장동 재판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1심 재판부는 “지역주민이나 공공에 돌아가야 할 막대한 개발 이익이 민간업자에게 갔다”며 업무상 배임을 인정해 대장동 일당에게 징역 4년에서 8년을 선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배임죄를 폐지하면 이들은 2심에서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면소 판결을 받게 된다.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대통령 역시 재판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배임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헌법기관인 대통령 이재명은 배임죄 폐지 여부와 관계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다. 그러면 퇴임 후 자연인 이재명을 단죄해야 한다는 복수심만 남는다. 그러니 “배임죄의 모호성과 과잉처벌을 가장 집요하게 비판해 온 국민의힘이 갑자기 집단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것이냐”(백승아 민주당 원내대변인)는 비아냥에도 시원하게 대꾸하지 못한다. 정 대장동 재판이 걸린다면 조속히 대체입법안을 마련하거나 ‘진행 중인 사건에는 계속 적용한다’는 부칙을 넣으면 그만이다. 거대 여당이 협의도 없이 얼씨구나 폐지한다면? 수천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기고도 아무 처벌 없이 구치소를 나서는 대장동 일당의 모습을 온 시민과 함께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면 된다. 그거야말로 적나라한 ‘이재명 구하기’의 결과일 테니까.
김창우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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