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일기예보에 나오는 군밤타령...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을 통해 다시 한 번 'K-POP은 세계적인 문화'라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더불어 한국의 드라마·음식·뷰티 산업 등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면서, 관광객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2025 K문화>는 세계인들의 삶에 더 밀접하게 다가가고 있는 한국 문화를 보여주며, '한류'의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 방향성을 모색해봅니다. <기자말>
[이정복 기자]
아시아에서 시작한 한류가 전 세계로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접두사 K가 붙었다. K-드라마, K-팝, K-푸드, K-영화, K-뷰티 등 이른바 K-컬처라 일컬어지는 문화적 현상이다. 이것이 일시적이거나 일부 마니아층에서만 소비되는 현상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이 수많은 보도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라는 브랜드는 이미 일상에 매우 가깝고 친밀하게 다가와 있다. 거리는 현대·기아 자동차가 점령하였고, 삼성·LG의 가전제품은 프리미엄 제품으로서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현지 마트에서는 라면과 김치를 비롯하여 각종 스낵, 아이스크림, 음료, 화장품, 고추장, 된장, 김 등 상당히 많은 한국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미디어에선 연일 한국 관련 소식이 전해지고 학생들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웹툰을 보며, OTT 서비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거의 실시간으로 즐긴다. K-드라마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회사 동료나 이웃(특히 아시안계)을 통해 접하게 되고, K-팝 공연은 매진 사례를 기록한다. 실제로 올해 콜드플레이와 오아시스가 공연한 토론토 로저스 스타디움에서 한국의 블랙핑크와 스트레이 키즈도 공연을 했다. K-팝 가수들은 이제 공연 규모나 관중 동원력 등에 있어서 월드 스타 뮤지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되었다.
나아가 우리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한글과 한국어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영역을 가리지 않고 그 영향력을 확대 중이다. 캐나다 사회에 미치는 이러한 영향력으로 인해, 지난 6월 캐나다 상원이 10월을 한국문화의 달(Korean Heritage Month)로 발표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 문화의 영향력 확대는 한인 사회와 기업, 캐나다 현지인에게 주목할 만한 몇 가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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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EXPO CANADA 2025 행사 포스터 및 행사장 |
| ⓒ K-EXPO 홈페이지 갈무리 |
K-스타일의 모든 것(All About K-Style)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K-박람회는 여러 정부 기관과 관련 협회가 화장품, 식품, 소비재 등 한류 관련 산업의 수출 촉진을 목적으로 수출 상담 등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일반 대중 대상의 문화 체험·전시·공연도 함께하는 범정부 차원의 행사이다. 방문객만 3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또한 지난 8월 22일부터 사흘간 열린 토론토 한인 대축제 (Toronto Korean Festival)에서도 그 분위기는 이어졌다. 이 행사는 캐나다에 정착한 한인동포의 사업과 한인 지역 사회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2001년부터 시작했다. 원래 행사명은 한인 한가위 대축제(Korean Harvest Festival)였지만 최근 들어 한류의 확대와 함께 K-컬처 축제의 성격으로 전환하였다. 30여 개의 먹거리 매장과 애틀랜타 한복쇼 및 K-팝 장기자랑은 물론, 한국에서 날아온 아이돌 그룹의 공연 등 모든 현지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캐나다 최대의 K-컬처 행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올해 행사에는 10만 명 정도가 참가했다고 추정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현지인의 호응과 참여가 늘고 있다.
군밤타령이 왜 나와?
캐나다는 일찍이 '다문화주의'가 국가 기조로 법제화되어 있을 정도로 타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열린 사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예컨대 영어도 Centre(Center 센터), Colour(Color 컬러)와 같이 전통 영국식 영어를 사용한다. 그래서일까. 한국 넷플릭스 드라마의 시청 순위도 미국에 비하면 대체로 낮은 편이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열린 사고로 타문화에 대한 관심과 존중은 크지만, 그것이 소비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서 소비되는 한국 문화는 꽤나 생활밀착형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 최대 민영방송사인 CTV에서는 해마다 설날이면 일기예보 화면 배경음악으로 '군밤타령'이 흘러나온다. 듣는 순간 귀를 의심하면서도 오히려 K-팝 가수의 1위 소식보다도 가슴 설레는 문화적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한편 캐나다에서 한국 문화에 대해 본격적인 닻을 올린 건 공영방송사인 CBC에서 2016년부터 방영한 TV 시트콤 Kim's Convenience(김씨네 편의점) 일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생활하는 한인 이민 가족의 일상을 재미있고 사실성 있게 묘사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고, 시즌4까지 제작되었다. 극 중에서 출연진들이 사용하는 "엄마", "아빠", "여보", "아이참" 등의 한국어 단어가 유행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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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9월 BTS 해밀턴 공연을 찾은 캐나다 팬들 |
| ⓒ 본인 촬영 |
첫인사는 "한국말 할 줄 알아?"
지금은 더 나아가서 청소년들 사이에선 또래 친구가 한국 사람임을 알게 되면 "한국말 할 줄 알아?"라고 묻는 게 첫 인사처럼 되었고, 성인 사회도 마찬가지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의 자신이 알고 있는 서툰 한국말 한두 마디를 인사말로 던지고, 아는 한국 음식이나 드라마, 가수의 이름을 이야기한다.
이즈음 교민 사회는 모종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코리아'의 대표상품은 '김정은'이었다. 남북한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나마도 한국은 삼풍백화점 붕괴, 대한항공 땅콩 회항, 대통령 탄핵 등 해외 토픽 수준의 뉴스만 소비되어 왔다. 우리끼리는 선진국이 된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한국의 국가이미지는 기대보다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현지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한식도 여전히 냄새나는 음식이라며 스스로 숨겨야 했고, 이름도 영어 이름을 지어 숨겨왔다. 한국어는 집 안에서나 쓸 뿐, 마트나 놀이터 등 남들이 듣는 장소에서 쓰는 언어가 아니었다. 억울하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은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 동남아의 문화적 정체성 뒤에 숨겨져 있었다. 이민의 역사와 이민자 수에서 밀리는 한인사회는 베트남, 필리핀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 이민자들에게 밀리는 비주류였다.
그런데 젊고 어린 학생층을 중심으로 한국의 음악, 언어, 음식 등이 유행하면서 캐나다 사회 전반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이러한 변화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던 한인 자녀들뿐만 아니라 주류 문화에서 소외당하던 교민사회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우리끼리 모여서 서로 잘해보자고 격려하던 잔치가, 현지인들과 함께하는 큰 행사로 탈바꿈하게 됐다. 교민사회의 이 같은 변화는, 더 크고 강력한 문화전파의 교두보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한국어를 배우며 카톡하는 현지인
교민 사회의 변화와 자신감은 캐나다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다거나 실제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 이것이 고무적인 이유는 언어와 문자는 한 사회의 모든 문화적 요소를 담아내는 그릇이자 정체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를 배우겠다는 것은 그 문화의 뿌리를 배우겠다는 얘기나 다름 없다.
스리랑카 출신의 기마샤 아란웰라(24)씨는 어설프지만 K-팝과 K-드라마를 통해 한국말을 독학했다고 한다. 카카오톡도 사용하고 있으며, 판소리를 매우 좋아한다면서 한국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의 인사담당을 맡고 있는 칼리 맥레린(26)씨 또한 자기 이름을 부르는 한국어 발음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인근 워털루 대학교의 세종학당엔 한국어의 인기에 비해 수강인원이 한정되어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제 우리의 말과 글은 우리 문화의 위상을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캐나다에서 한국의 정서를 외치다
한류는 기업의 비즈니스와 마케팅 방식도 바꾸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현대자동차 캐나다는 한글을 전면에 등장시킨 "We Make Wha(위 메이크 와)"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이 캠페인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한국인의 정서'를 캠페인의 핵심 콘셉트이자 키워드로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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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자동차 캐나다의 We Make Wha 광고 캠페인 |
| ⓒ 현대자동차 광고 화면 갈무리 |
도대체 베트남산 오징어에 한글이 왜?
기업 마케팅의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한국적 느낌이 필요한 제품이라면 포장지에는 한글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중국 제품인데 한글이 적혀 있고, 태국이나 베트남산 냉동 제품 포장에도 한글로 생선이름이 적혀있다. 시장 규모를 고려했을 때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글표기는 분명 아니기에 더더욱 낯설고 우습기도 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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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 현지 마트에 진열된 한글 표기 제품들 |
| ⓒ 본인 촬영 |
한국식 메뉴명이 붙은 패스트푸드 신제품이 출시되고, 푸드코트에서도 정체불명이긴 하지만 코리안 스타일의 메뉴가 추가되고 있다. 심지어 입점하는 한식당도 생겨나고 있다. 당연히 한국 사람 먹으라고 현지 업체에서 김치나 갈비를 생산하는 것은 아닐 터이니, 시장을 움직일 만큼 한식에 대한 현지인의 수요가 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제 김치는 한국인 만의 음식이 아니다.
K마트엔 한국 사람이 없다
한편 온타리오주의 중소도시 워털루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마리 박(60)씨의 사례는 K-컬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1년 전 토론토에서 이주한 박씨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을 대상으로 편의점 사업을 계획하면서 K-푸드 간판을 큼지막하게 걸었다. 하지만 토론토처럼 한인 사회가 크게 형성되어 있지도 않은 지방 도시에서의 상황은 예상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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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MART 내외부 모습 |
| ⓒ 본인 촬영 |
이것은 특정 문화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누가 문화의 수용자이자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단편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박 대표의 인터뷰 첫마디가 인상 깊다. "우린 한국 사람 잘 안 와요."
한국에 있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있다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성공이 의미하는 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캐나다인 감독과 배우가 출연했다는 사실도 인기에 한몫한 <케데헌>은 담고 있는 내용과 서사, 음악 및 캐릭터, 복장, 음식, 장소, 태도 나아가 전통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 전반을 총체적으로 관통한다. 덕분에 그동안 장르로서의 K-팝과 K-드라마와 K-무비, 그리고 상품으로서의 K-뷰티 와 K-자동차와 K-가전, 나아가 K-푸드 등 각각의 연결 고리 없이 산발적이었던 'K-컬처'를 통합된 한국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여했다.
그런데 <케데헌>을 한국의 자본과 제작사가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류의 오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다. '김씨네 편의점'이 그랬듯이 굳이 외국 제작사가 그들의 자본을 들여서 만드는 문화적 소재가 되어야, 비로소 그 문화가 주류가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고 소비되는 문화야말로, K-컬처의 진정한 완성이다.
지금까지의 한류는 정부와 기업 중심의 문화 수출 전략의 일환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문화'라고 얘기하지만, 한국이라는 '브랜드'와 '문화'를 상품으로 포장하여 수출하는 비즈니스의 일환이었다. K-팝도 아티스트들의 '예술혼'이 이뤄낸 결과라기보다는 SM, YG 같은 엔터 기업의 수출 전략과 맞닿아 있었다. 명분은 국위선양이었고 실익은 외화벌이였다. 산업으로서의 한류 전략을 폄하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 사이 한류는 낯선 변방의 문화에서 꽤나 흥미로운 대상으로 부상했다. 물론 모두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문화는 아닌, 떠오르는 대안 문화 정도였다.
하지만 시작이 어떠하였든 간에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표화할 수는 없지만 아카데미 수상, 넷플릭스 1위, 빌보드 1위가 가져온 변화는 한국 문화에 대한 심리적, 물리적 접근성과 허들을 낮췄다. 한국과 관련한 대화의 주제가 다양해지고, 한국의 문화를 어디서든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20여 년 전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던 교포 분이 한국의 문화적 수용성과 혼종성에 대해 한 얘기가 있다. "미국에 있는 건 한국에도 다 있지 않나요?"라고. 그러나 이제 그 말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한국에 있는 건 캐나다와 미국, 아니 세계 어디에도 다 있다"라고.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한국 스타일'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폭발적인 관심과 수요는 대규모 한인 행사를 가능케 하고, 그 성격 또한 '한국 문화 행사'로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우리끼리 즐기는 문화에서, 세계인이 함께 누리는 문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즉 K-컬처는 한국의 콘텐츠에 기반하고 있지만, 세계화의 주체는 캐나다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현지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K-컬처의 진정한 완성은 역설적이게도 이름에서 접두사 K를 떼게 되는 때가 아닐까 한다.
해마다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이 되면 온타리오주의 키치너에서는 옥토버 페스트가 열린다. 독일을 제외한 해외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맥주 축제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이 행사를 남의 나라 문화 행사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쯤 되어야 주류 문화가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인 대축제'가 굳이 이름을 바꾸지 않고, '한가위 대축제'라는 원래 이름을 쓰면서도, 옥토버 페스트처럼 현지인들의 일상에 녹아들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꿔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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