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회사까지 동원된 ‘위장 실직’ 시대 현실로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5. 11. 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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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본 실업급여의 민낯

비자발적 실직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실업급여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 실직은커녕 일터에 그대로 다니면서도 실업급여를 챙긴 이들이 적지 않다. 가족을 허위 근로자로 꾸미거나, 현직임에도 허위 이직 신고를 하는가 하면, 해외여행 중 대리 신청으로 부정수급을 받는 사례도 있다. ‘들키기 전까진 이익’이라는 왜곡된 인식에 고용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리고 제도 신뢰마저 무너지는 형국이다.

비자발적 실직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실업급여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신청 창구에 붙은 부정수급 방지 안내문. (연합뉴스)
일가족, 실업극으로 4400만원 챙겨

실직도, 실업 인정도 모두 가짜였다

매경이코노미가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실업급여 부정수급 적발 사례(2024~2025년)’를 보면 허위의 ‘비자발적 이직’ 스토리를 만들어내 실업급여를 부정수급한 주요 적발 사례는 4가지다.

가장 노골적인 사례는 ‘친인척 사업장 허위 근로 후 실업급여 부정수급’한 경우다. A건설 현장 책임자 B씨는 실제 고용한 적이 없는 배우자와 자녀 둘을 허위 근로자로 꾸몄다. 본인 역시 계속 근로 중이었음에도 실업자인 것처럼 서류를 작성, 일가족 네 명이 총 4400만원의 실업급여를 받아냈다. 고용보험수사관의 조사·점검으로 적발돼 실체가 드러났고, 현재 부정수급액 환수·형사처벌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사업주와 조직적 공모한 사례도 대표적이다. ‘회사 측과 공모해 퇴사 사유 거짓 신고 후 부정수급’한 경우다. 10년 이상 직장에 근무했던 C씨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자진 퇴사했음에도 회사 관리자에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회사는 퇴사 사유를 자진 퇴사에서 권고사직으로 거짓 신고했고, C씨는 1600만원의 실업급여를 부정수급했다. 이 사건은 제보로 적발돼 부정수급액 환수·형사처벌 절차에 있다.

‘임금을 현금으로 수급하는 방식으로 부정수급’한 사례도 같은 궤다. 근로자 세 명은 사업주와 공모해 실제 회사를 그만둔 사실이 없음에도 허위 신고를 했다. 근로자들은 실업자인 척 임금을 타인 명의 계좌로 받거나, 현금으로 받는 방식으로 소득 발생을 숨겼다. 겉으로는 실직자였지만 실제로는 계속 근무 중이었다. 이들은 총 3000만원 상당의 실업급여를 부정수급했고, 이 사건 역시 제보로 적발됐다.

‘해외 체류자 대리 실업 인정 부정수급’ 사례도 눈에 띈다. D씨는 실업급여 수급 중 친척 방문과 여행을 위해 해외로 출국했다. D씨는 실업급여 교육 당시 실업 인정은 직접 신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해외 출국 전 친동생에게 온라인 실업 인정 신청을 대리 요청했다. 총 2회에 걸쳐 대리 신청이 이뤄졌고, 약 300만원의 실업급여가 부정수급됐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적발할 때마다 부정수급액 환수와 함께 형사처벌 절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실업급여 부정수급 규모는 증가 추세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실업급여 부정수급 규모는 2022년 268억원, 2023년 299억원, 2024년 322억원 수준이었다. 올해 8월까지 실업급여 부정수급 건수는 1만7246건으로, 총 부정수급액은 230억원 정도다. 추가징수액을 포함한 반환 명령액은 437억원이었으나, 실제 환수된 규모는 289억원 정도로 환수율은 66%에 그쳤다. 저조한 환수율에 ‘시럽급여(달콤한 보너스)’라는 오명까지 붙는다.

실업급여 ‘쇼’에 무너지는 재정

‘18개월 중 180일’로는 못 막아

더 큰 문제는 실업급여가 ‘일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업급여 지급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게 방증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지급된 실업급여는 1조67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9%(1048억원) 증가한 수치다. 수급 요건이 지나치게 관대한 탓이다. 현행법상 최근 18개월 중 180일 이상 고용보험 가입 이력만 있으면 자격이 부여된다. OECD 주요국보다 훨씬 완화된 수준이다. 수급 자격 인정률은 99.7%에 달한다.

실업급여가 ‘일을 하지 않아도 최저임금 근로자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은 문제를 더 키운다. 정부는 2019년부터 실업급여 지급률을 평균임금의 60%로 높이고, 지급 기간도 기존보다 늘려 120일에서 최장 270일까지 지급하도록 했다. 현행법상 구직급여 하한선은 ‘해당 연도 최저임금의 80%(8시간 기준)’로 정한다. 이를 올해 기준으로 계산하면 월 193만원 수준으로, 세후 실수령 기준 최저임금인 약 187만원을 웃돈다.

이에 단기 근무와 실업급여 수급을 반복하는 ‘반복 수급자’도 급증세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 130만3000명 중 2회 이상 수급자는 37만1000명, 3회 이상 수급자는 8만4000명으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동일 사업장에서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하며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도 늘었다. 2019년 9000명 수준이던 동일 사업장 3회 이상 수급자는 2024년 2만2000명으로 2.4배 증가했다. 누적 수급액 상위 10명 중 한 근로자는 동일 사업장에서 21회에 걸쳐 총 1억400만원의 실업급여를 받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실업급여 부정수급 문제에 대해 ‘처벌 강화’와 ‘제도 설계 개선’이라는 두 가지 방향이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업급여는 비자발적 실업자를 위한 마지막 사회 안전망”이라며 “제도를 악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은 물론, 영구 수급 자격 박탈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업주 책임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 교수는 “위장 퇴사나 허위 고용을 유도하는 일부 사업주에 대해선, 수급 신청 전 단계부터 검증할 수 있는 행정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수급자 개인만을 처벌하는 방식으로는 부정수급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수급 요건과 지급 기준의 재조정도 과제다. 전문가들은 ‘18개월 중 180일 근무’라는 실업급여 요건을 ‘24개월 중 12개월 이상’으로 강화하고, 최저임금 대비 하한선 구조를 조정해 ‘일하지 않아도 최저임금보다 더 받는 기형적 지급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보고서를 내고 “최저임금 연동을 해제하고 급여는 평균 임금의 60%에서 산정하되 상·하한을 재정 여력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업급여 지급에 있어 정교한 사전심사와 함께 AI 기반 부정수급 적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새겨들을 만하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단순한 부정수급 횟수 기준만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부정수급 사례를 분석할 수 있는 체계를 먼저 갖춰야 한다”며 “AI 등 기술을 활용해 실업급여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악용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리적인 정책 대안도 설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5호 (2025.11.19~11.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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