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갈등]리버풀·드레스덴·빈이 말하는 세계유산 갈등의 현재

이종길 2025. 11. 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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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는 도시에는 영예이면서 동시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삭제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세 건뿐으로, 리버풀과 오만의 아라비안 오릭스 보호구역(2007), 그리고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2009)이다.

유네스코는 도시 전체의 높이 체계와 역사적 조망축이 흔들릴 수 있다며 우려를 여러 차례 표했고, 2017년 빈 역사 도심을 세계유산 위험목록에 등재했다.

그러나 세 도시 모두 세계유산 제도와의 충돌 속에서 삭제 또는 위험목록 등재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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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리버풀, 항만 재개발로 세계유산에서 삭제
교량 건설 드레스덴, 주민투표 끝에 같은 운명
빈은 2017년 고층 호텔 계획으로 위험목록에
에버튼 신축 구장 디자인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는 도시에는 영예이면서 동시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보존과 개발이 충돌할 때, 도시의 미래를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영국 리버풀, 독일 드레스덴, 오스트리아 빈이 겪은 논쟁은 이 질문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지금 서울 종묘 앞 고층 개발을 둘러싼 갈등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리버풀의 항만·상업지구는 200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지만,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 지역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했다. 대규모 워터프런트 개발인 '리버풀 워터스'와 항만 주변의 축구장 건설 등이 항만 경관과 역사적 진정성을 크게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위원회는 결정문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여주는 속성이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상실됐다"고 밝혔다. 리버풀 시는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조앤 앤더슨 시장은 "유네스코가 현장을 직접 방문하지도 않은 채 판단을 내렸다"며 "깊은 실망과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발을 밀어붙인 측 역시 리버풀 시였다. 수십억 파운드 규모의 해안 재개발 사업은 이미 도시 스카이라인을 크게 바꿔놓고 있었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을 삭제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세 건뿐으로, 리버풀과 오만의 아라비안 오릭스 보호구역(2007), 그리고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2009)이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2004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됐고, 두 해 뒤 유네스코는 계곡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4차선 발트슐뢰셴 다리 건설 계획을 문제 삼아 이 지역을 위험목록에 올렸다. 도시와 강, 주변 경관이 어우러진 문화경관 전체가 유산의 핵심인데, 대형 교량이 그 축을 훼손한다는 판단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궁전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에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두고 몰려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럼에도 드레스덴 시는 2005년 주민투표에서 67.9%의 찬성을 얻어 다리 건설을 강행했다. 시민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교통 체증과 생활권 단절이었다. 결국 2009년 세계유산위원회는 드레스덴 엘베 계곡을 목록에서 삭제했다. 독일 내부에서도 논쟁이 격렬했다. 보존 진영은 "세계유산 삭제라는 불명예스러운 선례를 남겼다"고 비판했고, 개발 진영은 "민주적 절차가 선택한 결과"라고 맞섰다. 세계유산 제도와 지방자치의 원리가 충돌한 대표적 사례다.

오스트리아의 빈 역사 도심은 오랫동안 모범적인 세계유산 관리 지역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도심 인근에 60m급 고층 호텔과 재개발 계획이 발표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유네스코는 도시 전체의 높이 체계와 역사적 조망축이 흔들릴 수 있다며 우려를 여러 차례 표했고, 2017년 빈 역사 도심을 세계유산 위험목록에 등재했다.

빈 시의회에서는 "빈도 살아 있는 도시여야 한다. 개발을 멈출 수는 없다"는 주장과 "역사 도심의 스카이라인은 회복하기 어려운 자산"이라는 문화재 당국의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오스트리아는 일부 계획을 조정하며 유네스코와 장기 협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위험목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종묘 앞 고층건물 허용을 두고 서울시와 정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은 10일 촬영한 종묘 정전. 연합뉴스

세 도시의 사례는 세계유산 제도가 개별 건물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높이, 밀도, 시야 등을 유산의 구성 요소로 본다는 점을 보여준다. 리버풀은 항만 재개발을, 드레스덴은 교량과 교통 편의를, 빈은 도심 성장과 고층 개발을 택했다. 그러나 세 도시 모두 세계유산 제도와의 충돌 속에서 삭제 또는 위험목록 등재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고층 개발 논쟁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며 "앞선 도시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살피는 일은, 종묘를 둘러싼 논쟁의 향후 방향을 가늠할 가장 현실적인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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