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갈등' 中·日 대사 나란히…日 "인태 평화", 中 "규범 선택적 적용"
대만 문제를 놓고 중·일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 대사와 미즈시마 고이치(水嶋光一) 주한 일본 대사가 18일 국립외교원이 주최한 서울외교포럼에 나란히 참석했다. 양국 대사는 대만 문제나 상대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미즈시마 대사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다이 대사는 “국제 규범의 선택적 적용”을 비판하며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났다.

이날 다이 대사와 미즈시마 대사는 포럼의 첫 번째 세션인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 한국의 실용외교'에서 패널로 발언했다. 두 대사는 세션 시작 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짧은 인사를 나누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미즈시마 대사는 "인도·태평양(인태) 지역의 안정과 번영은 글로벌 안정에도 필수적"이라며 "일본의 핵심 정책은 동맹·유사입장국과 협력을 강화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태 지역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자주의가 기후변화, 사이버 문제, 허위정보 확산 등 글로벌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일본은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해 책임 있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즈시마 대사의 발언은 원론적이지만, '인태 지역의 안정'을 언급한 건 대만 해협을 둘러싼 긴장 국면과도 맞물려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양국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반면 다이 대사는 "일부 국가는 냉전적 사고방식을 고수하며 배타적인 소규모 그룹을 만들고 국제 규범을 선택적으로 적용한다. 지정학적 경쟁과 진영 간 대립이 재점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 역내 동맹과 다양한 소규모 안보 협력체를 구성해 대중 압박을 강화하려는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발언이다.
그는 또 "특정 국가들은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고 인위적인 장벽을 세워 분절화를 가속화한다. 다자무역 체제의 정상적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미국을 향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미·중 관계 전망에 대해선 “비관적이지는 않으며, 조심스럽지만 긍정적으로(cautiously positive) 바라본다”라고 말했다.
양국 대사는 최근의 갈등 고조 국면을 의식한 듯 기자들의 질문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날 중국 베이징에선 양국 갈등 진화를 위해 류진쑹(劉勁松) 중국 외교부 아주사장(국장)과 전날 방중한 가나이 마사아키(金井正彰) 일본 외무성 대양주국장 간 국장급 협의가 열렸다.
미즈시마 대사는 세션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양국 외교부 차원에서 협의가 진행 중이므로 (중·일 갈등에 대해선) 답하기가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다이 대사도 "중·일 관계에 대해서 묻는 것이라면 말하기 어렵다"라며 답을 피했다. 다만 다이 대사는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미를 향해 “대만 문제에 불을 지르지 말라”고 하는 등 대만 문제에 대해 줄곧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한편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포럼 기조연설에서 "핵 없는 한반도(A nuclear-free Korean Peninsula)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절대적 과제"라며 "한국 안보에서 최우선 과제는 전쟁을 예방하고 한반도가 무력 충돌의 발화점(flashpoint)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날 북한이 한·미가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 시트)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쓴 걸 문제삼은 가운데 조 장관이 "핵 없는 한반도"를 강조한 것이라 눈길을 끌었다.
포럼 개회사에 나선 최형찬 국립외교원장은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원장은 “한국은 지난해 말 시대착오적인 계엄 선포로 민주주의가 큰 위기에 직면했지만, 놀라운 민주적 회복력을 보이며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며 “대한민국 신정부는 더 안전하고 번영하며 글로벌 책임을 다하는 국가로 나아가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첫 세션은 이문희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미국의 대외 기조와 한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비중 있게 이어졌다. 웡 카이 쥔 주한 싱가포르 대사는 "한국 신정부의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은 아세안의 발전·성장과도 맥락을 같이한다"며 "한국과 싱가포르는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와 안정을 적극 지지하고, 글로벌 도전 과제 해결에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잭 쿠퍼 미국기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미국이 방향을 제시하면 동맹이 따르는 구조였지만, 이제는 동아시아 국가들도 역내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미국에 의견을 적극 개진해야 한다”며 “한국도 글로벌 질서와 한·미 동맹 방향 설정에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재성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실용외교가 국제적 역할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한국이 국익과 국제적 책무(commitment)를 어떻게 조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견국의 모범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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