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 드라마 한 편이 바꿨다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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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16일 서울 경복궁을 관람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사자보이즈'의 갓을 쓰고 수문장교대식을 지켜보고 있다. |
| ⓒ 권우성 |
커피의 역사에서도 방송이나 영화 등 대중 매체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적지 않다.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은 1993년 12월 스타벅스의 탄생지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남녀 주인공이었다. 서로 다른 공간에 살던 두 사람이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극적으로 만나 키스하는 마지막 장면이 관객 모두를 심쿵하게 만들었다.
정확히 5년 후인 1998년 12월 31일에 개봉된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두 사람은 남녀 주인공으로 다시 만났다. 뉴요커 톰 행크스는 "스타벅스는 결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결정하도록 만들기 위해 존재하죠. 커피 한 잔을 사기 위해 여섯 가지 결정을 해야 하니까요. 숏인지 톨인지..."라는 메시지를 여주인공 멕 라이언에게 보내고, 역시 뉴요커인 멕 라이언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톰의 메시지를 떠올린다.
이들은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시내를 걸었고, 이들이 사랑하던 스타벅스가 이듬해 여름 이대 앞에 1호점 문을 열었다. 이 땅의 청춘남녀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거리를 걸으며 뉴요커 기분을 내는 새로운 유행이 생겼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 불러온 열풍
커피 소비 증가와 함께 우리나라 신문이나 방송, 영화 등에서 커피는 노출 빈도를 서서히 늘려왔다. 우리나라 중앙과 지방 일간지, 공중파 방송 등에서 커피를 다룬 기사나 프로그램이 1000건을 넘긴 것은 다방 전성시대의 막바지였던 1991년이었고, 2000건을 넘긴 것은 카페 창업 붐이 한창이던 1994년, 3000건을 넘긴 것이 스타벅스 1호 개점 이듬해인 2000년이었다. 2001년에 4000건을 넘긴 후 커피 관련 기사의 증가는 더뎠다. 5년이 지난 2006년이 되어서야 5000건을 넘어섰다.
그런데 1년 후인 2007년에 갑자기 7484건의 커피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전년 대비 40퍼센트가 증가한 것이다. 2008년에는 1만 2000건 넘는 커피 기사가 등장하였다. 1년 사이에 무려 62퍼센트가 증가한 것이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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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7월 2일부터 2007년 8월 27일까지 방영된 MBC 월화 미니시리즈 <커피프린스 1호점> |
| ⓒ MBC |
커피 기업의 손자로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결(공유)과 이곳에서 일하는 바리스타 은찬(윤은혜)이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주인공 두 사람이 연기한 '바리스타'라는 낯선 직업을 단기간에 인기 직업으로 각인시키고, 이들이 만드는 드립커피는 단숨에 청춘 남녀 모두가 찾는 인기 상품으로 등극하였다.
2005년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파티시에' 열풍을 불러온 데 이어 이번에는 바리스타 열풍이었다. 이 드라마 이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수험생이 급증했다. 예컨대 2005년부터 바리스타 자격증을 수여하기 시작한 한국커피교육협의회(현재의 한국커피협회)의 자격시험 응시자는 매회 40퍼센트씩 증가할 정도였다. 신문마다 방송마다 "바리스타 되고 싶으세요?" "바리스타 도전기" "바리스타계 슈퍼스타 ○○○씨" 등의 기사와 방송이 넘쳐났다.
더불어 커피메이커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10만 원 전후의 커피메이커로부터 100만 원이 넘는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자고 나면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 등장했다. 집에서 커피를 갈고 내려 마시는 홈카페 문화가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간단한 그라인더와 드리퍼 판매 열기도 뜨거워졌다.
세계적인 커피생두 경매인 '컵오브액셀런스'(Cup of Excellence)에서 한국인이 처음으로 최고급 생두 낙찰을 받은 것도 이 해였고, 한국인들이 탐험대를 꾸려서 커피의 고향인 아프리카와 홍해 연안 국가 탐방에 나섰던 것도 이 해였으며, 전국의 많은 전문 대학에서 바리스타 학과를 앞다투어 개설하기 시작한 것도 이 해였다. 커피프린스 1호점 열풍이 불러온 변화였다.
커피의 인기와 함께 범람한 가짜뉴스
문제는 가짜뉴스의 범람이었다. 커피의 인기와 함께 커피 관련 가짜뉴스가 크게 범람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사람 1인당 커피 소비량이었다. 많은 신문에서 우리나라가 1인당 커피 소비량에서 세계 11위, 혹은 12위, 혹은 13위에 올랐다는 뉴스를 쏟아냈다. 간혹 국제커피기구(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 통계를 출처로 들먹였다. 당시 국제커피기구의 통계에서는 회원국도 아니고 커피 소비량이나 수입량이 대단하지도 않았던 한국의 커피 관련 정보는 제공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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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말연시를 앞두고 초콜릿·커피·케이크 가격이 치솟는 '디저트플레이션'(디저트+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커피는 지난달 전년 대비 14.7% 올라 5개월 연속 10%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
| ⓒ 연합뉴스 |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카페에서, 자판기 앞에서, 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생뚱맞은 보도도 있었다. KBS는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대학생 절반, 카페인 금단 증상'이라는 무시무시한 보도를 하였다. 우리나라 대학생 2명 중 1명꼴로 커피 금단 증상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커피 금단 증상보다 더 위험한 카페인 중독이 염려된다는 경고까지 하였다.
당시 보도가 사실이었다면 20년이 지난 지금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커피 금단 증상 혹은 카페인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커피와 함께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 뉴스는 당시 국내의 한 대학 병원이 제공한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바탕을 둔 가짜뉴스였다.
요즘 우리는 가짜뉴스, 가짜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언론사의 이념성에 오염된 것이 뻔한 가짜뉴스가 넘치고, 언론 자유에 편승한 현수막이 물결치는 세상이다, '정보화 시대' 혹은 '지식산업 시대'라는 거창한 구호와 함께 시작된 것이 21세기다. 축적한 정보와 지식의 양이 자산인 시대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불과 25년 만에 우리는 '정보'와 '가짜뉴스'를 구분하는 탁월한 능력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누구나 존경할 만한 멋진 정치인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전 국민이 목격한 내란을 부끄러움 없이 두둔하는 정치인, 판결문 작성할 시간 정도만 필요한 재판을 잡고 해를 넘기는 내란재판부를 두둔하는 정치인, 증거 조작과 협박으로 죄를 조작해 내는 법 기술을 인정받아 입문한 정치인, 이런 저질 정치인들이 사라지고 제대로 된 정치인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입이 거칠고 행동이 천박한 품격 없는 '정치인'(politician)이 아니라 누구나 존경할 만한 '정치의 장인', 즉 '폴리스타'(polista)라는 새로운 직업 집단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의 저자)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2007년 <국민일보> <한국경제신문> <한겨레> <전북일보> <디지털타임스> <매일신문> <중앙일보>에 실린 커피 관련 기사 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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