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는 제주4·3 수형인 직권재심 "70여년 한(恨) 풀어드립니다"
불법군사재판 1711명, 일반재판 421명 등 2132명 명예 회복
일반재판 희생자까지 확대됐으나...행방불명 수형인 신원확인 '과제'
제주4·3 당시 군.경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수형인에 대한 법원의 직권재심이 본격 시작된지 3년여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불법군사재판에 의해 투옥됐던 수형인, 일반 재판을 통해 옥살이를 한 수형인에 이르기까지 직권재심을 통한 명예회복은 상당부분 진척됐다. 11월 현재 시점에서 불법군사재판 수형인 1711명, 일반재판 수형인 421명 등 2132명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아직 갈길은 멀다. 아직도 명예회복을 하지 못한 수형인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4·3 직권재심의 그간 추진과정 및 성과, 그리고 과제는 무엇인지 정리해본다. <편집자 주>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속하므로 피고인들은 무죄"
지난 2022년 3월29일 오전 11시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제주4·3 수형인 희생자 40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4·3 당시 영문도 모른채 군.경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불법적 군사재판에 회부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수형인들이 74년만에 모두 범죄자라는 오명을 벗은 것이다.
이날 판결은 직권재심을 통한 첫 무죄선고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직권재심은 제주4·3 당시 부당한 재판으로 형을 선고받았던 사람들에 대해 법원이 직권으로 재심을 열어 무죄를 선고해주는 절차를 말한다. 일반적 재심은 재심 개시 결정을 하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직권재심은 합동조사를 통해 바로 재심이 열리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수형인 중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난데다, 남아 있는 생존 수형인의 경우 대부분 90세를 넘는 고령인 점을 감안한 결정이다. 직권재심이 본격화된 후 대상자 신원확인에서 재심 개시, 선고에 이르는 과정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2022년 3월 첫 선고를 시작으로 불법군사재판에 의한 2530명의 수형인 희생자 가운데 올해 10월28일까지 무죄 선고가 이뤄진 수형인은 총 1711명에 이른다.
이들은 4·3당시 최소한의 적법한 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행해졌던 계엄 군사재판의 '초사법적 처벌'을 받았다.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투옥됐던 수형인 중 상당수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상부명령에 따라 집단처형(총살) 됐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후, 비로소 직권재심을 통한 명예회복으로 뒤늦은 위로를 받게 된 것이다.
◇ 4·3진상조사 이뤄졌지만...뒤늦게야 시작된 수형인 명예회복
제주4·3 수형인 명부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제주4·3특별법 제정이 추진되던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15일 추미애 국회의원(현 법제사법위원장)이 정부 기록보존소가 보관하고 있던 4·3당시 군법회의 수형인 1650명의 명부와 1321명 일반재판 기록을 전면 공개했다.
군법회의는 1948년 12월과 1949년 6~7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는데, 1차에서는 871명, 2차에서는 1659명 등 2530명이 불법적인 처벌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수형인 명부 공개 이후 '빨갱이' 소리를 듣던 제주4·3 진상규명 운동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1999년 12월 제주4·3특별법이 제정돼 2000년 1월 12일 공포됐다.
4·3수형인 명부 공개로 제주4·3특별법이 제정돼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4·3의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했지만, 수형인들의 명예회복은 더디게 이뤄졌다.
2005년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제주4·3위원회)에서는 수형인 명부에 기재된 희생자들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문과 불법 구금 등 수사와 기소 절차 모두 잘못됐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판결문 조차 없었던 점, 판결 절차도 모두 잘못됐던 점이 인정돼 수형인 대부분 희생자로 인정됐다.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은 2017년이 돼서야 본격 시작됐다.
2017년 4월19일 4·3수형인 생존자 18명이 제주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1년 5개월 만인 2018년 9월 4·3불법 군사재판에 대한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진행된 재심 재판에서 검찰은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을 구형했고, 2019년 1월17일 당시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도 피고인 18명 전원에 대해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4·3수형인들이 무죄라는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다만 이 사건 이후의 재심에서는 공소기각이 아니라 무죄 판결이 내려졌는데, 이는 단순히 법적인 유.무죄 판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형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다.
◇ 이어진 개별 재심 청구...'군사재판 무효화' 대신 '직권재심' 도입
첫 재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4·3수형인들의 개별적인 재심 청구가 이어졌다.
이에 4·3수형인 명부에 오른 2530명에 대해 4·3특별법을 통한 '일괄적 무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1948년과 1949년에 있었던 불법군사재판을 무효화하는 내용의 4·3특별법 개정안이 2020년 발의됐다.
그러나 이 개정안 통과는 순탄치 않았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사법부의 권한을 침해할 우려'를 제기하며, 수형자들이 재심제도를 통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4·3특별법은 2021년 6월 시행됐고, 법무부는 2021년 11월 4·3당시 군사재판에 대한 직권재심 청구를 지시했다.
광주고검은 제주4·3사건직권재심합동수행단을 구성해 직권재심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2022년 2월10일 첫 직권재심 청구가 이뤄졌다.
이후 4·3당시 군사재판 희생자 뿐만 아니라 일반재판을 받고 수형생활을 한 희생자에 대해서도 직권재심이 이뤄지는 등 청구 대상이 확대됐다.
제주4·3희생자로 아직 등록되지 않았지만, 직권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수형인도 생겨났다.
박화춘 어르신은 지난 1948년 12월 스물두 살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어린 딸과 함께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 수형생활을 했다.
당시 군법회의에서 박 어르신은 남로당과 공모해 폭동을 일이키려 했다는 누명을 썼는데, 재판도 없이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에 거주하지 않고 타 지역에 거주하는 생존수형인을 위한 출장재심 공판도 진행됐다.
올해 5월22일 생존수형인 ㄱ씨 거주지 인근인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진행된 재심에서 4·3재심 전담 재판부는 ㄱ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ㄱ씨는 4·3당시인 1949년 4월30일 내란음모 및 방조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는데, 직권재심을 통해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됐다.
그는 4·3희생자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증거와 기록이 충분한 것으로 제주도와 4·3직권재심합동수행단은 판단했다.
이에 ㄱ씨에 대해서는 4·3특별법이 아닌 형사소송법에 따른 재심이 청구됐고,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 연좌제 피하려 '거짓 이름' 대기도...수형인 희생자 신원파악 '과제'
현재까지 확인된 4·3일반재판 수형인 중 직권재심 대상자는 1800여명에 달한다.
2530명의 군사재판 수형인을 합하면 직권재심 대상자는 4330명을 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최근까지 군사재판 수형인 1711명과 일반재판 수형인 421명 등 2132명이 직권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남아있는 기록은 수형인명부 등 1940~50년대의 것이었고, 희생자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수형인 명부 조차도 정확하지 않았다. 당시 희생자들이 가족들에게 연좌제로 인한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아명(兒名) 등 이름이나 본적, 성씨 등을 다르게 말한 경우가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530명의 수형인 가운데 신원이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590여명에 대해 추가 확인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제주4·3희생자 및 유족 가운데 군사재판과 형무소 등 키워드를 통해 수형인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마을별 집성촌과 돌림자 등을 근거로 수형인과 희생자들의 연관성을 검증했다.
1950년 부산교도소에서 사망이 확인된 한 수형인의 경우, 과거 서귀면 동홍리 제적부에서 기록을 발견해 신원을 특정할 수 있었다.
이처럼 4·3직권재심합동수행단과 제주도는 수형인의 유족이나 마을 주민들을 수십차례 만나고, 기록과의 긴 싸움을 통해 신원이 특정된 희생자들의 재심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들 가운데 80여명의 수형인들은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희경 제주도 4·3지원과장은 "직권재심을 통해 4·3희생자들이 억울한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고 있지만,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는 수형인 희생자들이 있다"며 "이 분들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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