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연기를 비장애인 배우가? 이젠 달라져야 한다
[김성호 평론가]
'장애인이 연기를 하네? 와! 대단하다.'
"이런 태도는 존중이 아닙니다. 무시일 수 있어요. 비장애인 배우를 바라볼 땐 어떤가요. 연기가 어떤지, 캐릭터와 어울리는지를 보고 진지하게 비평하잖아요. 그런데 장애인에 대해선 전혀 아니죠. 똑같이 바라봐 주세요. 장애인 배우에게도 연기를 평가하고 이야기해 주세요. 그럼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장애인 배우도 자기 일에 진심인 전문가예요. 그런데 장애인 역할이 주인공이면, 하나 같이 비장애인 유명 배우가 캐스팅됩니다. 실감 나게 연기하는 모습에 감탄할 때도 있지만, 왜 장애인 역할까지 비장애인에게 맡겨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아요. 활발히 활동하는 장애인 배우가 있어도 전문가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요."
연극과 뮤지컬, 영화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15년 차 장애인 배우 김경민의 말이다. 그는 지체장애인 배우들이 실제 모습 그대로 출연하는 영화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에서 주인공의 친구 현경 역할을 맡아 올 한 해 전국 여러 영화제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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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 스틸컷 |
| ⓒ 한국영상자료원 KMDb |
김경민의 말처럼 한국 영화계에선 장애인 역할을 비장애인 배우에게 맡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오아시스>의 문소리, <말아톤>의 조승우, <얼굴>의 권해효와 박정민, <형>의 도경수 등 당장 떠오르는 영화만도 여럿이다. 박정민의 경우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을 연기했다. 뇌성마비, 자폐, 시각장애 등 다양한 장애가 이들 영화의 주요한 설정으로 활용됐다. 해당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배우 활동을 하는 이들이 없어서일까. 장애인 배우는 비장애인만큼 탁월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일까.
앉아서 쉽게 글을 쓰고 싶진 않았다. 제작 일선에서 장애인이 배제되고 있다면, 그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수소문해서 한국 영화판에서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장애인 배우, 제작 일선에서 장애인과 협업을 진행한 이들 십여 명이 실명 또는 익명으로 응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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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얼굴에서 시각장애인을 연기한 권해효 배우 |
|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현실은 그 이상이기도 하다.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으로 제12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이현빈 감독은 지체장애를 가진 두 배우와 찍은 작품을 언급하며 '효율'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상업영화 스태프로 일하며 장비와 공간, 스태프와 배우 인건비까지, 제작현장에선 시간이 돈이란 걸 알게 됐다"며, "장애인 이동권 문제야말로 장애인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영화의 주연으로 장애인을 캐스팅하는 건 효율성을 얼마간 내려놓는 선택이란 것이다.
장애인과 협업해 본 적 없는 이들에겐 협업 그 자체가 문턱이기도 하다. 삶 가운데 장애인을 들여본 적 없는 이들은 장애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편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업영화 관계자는 "눈이 잘 안 보이는 배우를 써야 했는데, 현장 상황에 맞게 급히 바꾼 동선을 몇 번이나 다시 설명해야 했다"라며, "주연도 아니고 시간이 촉박한데 촬영은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되지, 눈이 안 보여서 원하는 대로 딱 다닐 수도 없지…. 당시엔 나도 답답하기만 했는데 시각장애인 입장에선 오죽 힘들었겠나 싶다"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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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터널스 영화 <이터널스>(2021) 스틸컷. 슈퍼 히어로 마카리 역할을 맡은 청각장애인 배우 로런 리들로프. |
| ⓒ IMDb |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와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 비중 있는 배역으로 출연한 청각장애인 로런 리들로프가 좋은 예다. 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액션을 소화해야 하는 액션영화에서, 제작진은 청각 신호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 겪는 고충을 사전에 예비하지 못했다. 촬영이 거듭 지연될 뻔한 위기는, 안젤리나 졸리가 레이저포인터로 시각 신호를 주고 후반 작업에서 특수효과로 지우는 방안을 제안한 뒤에야 해소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제작진은 리들로프와의 현장 소통에 필요한 수어통역사를 상시 고용하는 등 수고를 들여야 했다.
장애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을 반영한다고 말해온 예술, 대중매체는 장애를 없는 듯이 취급했다. 장애인 배우가 존재함에도 비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편이 편하고 익숙하며 투자에도 도움이 되니까. 불편 대신 효율을 택한 선택이었다.
BBC 드라마 <이어즈&이어즈>에서 비장애인과 오디션을 치러 자기 배역의 캐릭터를 장애인으로 바꿔낸 루스 메딜레이, <왕좌의 게임> 주역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장애인 배우가 된 피터 딘클리지는 장애인 배우가 장애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활발히 펼쳐나간다. 경험 많은 비장애 배우보다 더 진정성 있고 있는 그대로 연기가 될 것이란 점, 사회적 낙인을 지우고 장애를 더 친숙하게 여기는 계기가 되리란 점, 장애인 역할은 장애인 배우를 위한 자리로 남겨져야 한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된다. 그 반대편에 있는 불편의 무게가 결코 이 이상이 되지는 못한다고 나는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장애인 연기는 장애인에게 맡겨주세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온라인 웹진이음 68호 발행 https://www.ieum.or.kr/user/webzine/view.do?idx=800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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