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하기도 바쁜 배우가 왜 인터뷰에 도전하냐면 [배우 차유진 에세이]
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차유진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차유진 기자]
나는 지금껏 인터뷰이였다. 배우라는 직업상 인터뷰어보다 인터뷰이에 더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오마이뉴스에 '배우 차유진 에세이'를 연재하며 무작정 도전한 인터뷰 글이 어느덧 세 편이나 쌓였다.
처음에는 자전적 산문을 쓰는 것보다 수월할 거라 여겨졌다. 기존의 인터뷰이 경험을 토대로 질문에 따른 답변을 잘 정리해 독자에게 여과 없이 전달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쉽게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세계를 글로 옮기는 일 역시, 배우가 역할을 맡을 때처럼 막중한 책임과 깊은 성찰이 뒤따름을 낯선 여정 속에서 생생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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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샤어머니와 길고양이 |
| ⓒ 차유진 |
다리를 다친 '밤톨이', 한쪽 눈을 잃은 '콩알이' 등 많은 길고양이들을 구조하고 보살핀 아름다운 선행을 글에 가득 실어 편집기자님께 송고했다. 어떤 평이 돌아올지 은근히 기대됐다. 좋은 인터뷰이를 섭외했다는 칭찬은 예상했지만 돌아온 답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딱 이런 느낌이었다.
"배우님, 인터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인터뷰에도 기승전결이 있고 주제와 흐름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인터뷰이의 선행 일화에만 기대어 장황하게 나열하다 보니 정작 샤샤 엄마를 통해 인터뷰어로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전면 수정에 들어갔다. 그 뒤로도 "도입부가 약하다", "후반부가 대의적으로 흐른다", "질문에 비해 답변의 양이 많다"는 폭풍같은 조언을 들으며 글의 결을 다듬어갔다. 샤이니, 꼬질이, 봄이, 가을이의 영화 같은 이야기도 눈물을 머금고 덜어냈다. 통편집의 아픔은 연기할 때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인터뷰 ① : 이 동네 길고양이는 엄마도 이름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샤샤 엄마와 길고양이들이 주고받는 서슴없는 교감을 보며, 꾸준한 헌신과 돌봄으로 쌓인 신뢰야말로 사랑의 가장 진실한 형태임을 깨달았다. 길 위의 생명에게 헌신과 따뜻한 손길로 다가가는 샤샤 엄마의 첫 인터뷰 글은, 편집기자님의 따끔한 충고를 한 사발 들이킨 끝에 게재 되었다. 혹독했지만 값진 신고식이었다.
좌충우돌 첫 인터뷰 데뷔식을 치르고 조신히 지내던 차, 다시 불을 지핀 것은 다름 아닌 편집기자님이었다.
"배우님,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으세요?"
묻는 말에 좋아서 냉큼 대답하고 말았다.
"네, 여백서원이요."
세계적인 괴테학자 전영애 교수가 3000여 평의 여백서원을 조성하고 개방해 나눔을 실천한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뒤로, '진정한 어른으로 산다는 건 뭘까'란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명한 학자와의 인터뷰가 실제로 성사될 거라곤 기대하지 못했다.
그러던 올해 초, 편집기자님이 본격적으로 일을 추진하더니, 3월에 전영애 교수님 섭외와 인터뷰 일정 조율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는 어른을 간장 종지 만한 내 삶의 그릇과 마주하려니 부담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질이 부족하면 양으로 메우라' 했던가. 먼저 부족함을 인정하고 식견을 넓히는 시간이 절실했다. 전영애 교수의 책들을 반복해 읽고, 관련 다큐멘터리와 영상 자료를 찾아보며 질문지를 다듬었다. 기존 인터뷰와의 중복을 피하기 위한 세심한 노력도 기울였다. 그렇게 두 달간 공들여 만든 질문지를 편집기자님께 보냈건만, 돌아온 건 격려가 아닌 단호한 퇴짜였다.
"배우님은 전영애 교수님을 왜 인터뷰 하시려는 건가요?"
왜 그분을 만나려 하는지, 무엇을 묻고 싶은지, 어떤 고민을 품고 여백서원을 찾으려 했는지가 질문에서 드러나지 않았다는 조언이었다. 인터뷰이의 존경스러운 과업에 눌려, 인터뷰어로서 방향을 잃은 채 지도 없는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었다. 배우로서 작품을 분석할 때도 지나친 탐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때가 있듯이 말이다.
질문을 만드는 일이 이렇게도 힘든 일이었다니(그동안 저를 인터뷰해주신 기자님들 감사합니다).일상에서 제대로 질문하지 않고 살아온 습관, 질문을 통해 답을 얻는 연습의 부재가 인터뷰라는 벽 앞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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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애 교수님과의 인터뷰. |
| ⓒ 차유진 |
인터뷰는 결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새삼 체감했다. 어른 말씀에 함부로 끼어드는 거 아니라는 조기교육 덕분에, 준비한 질문이 한참 남았는데도 말을 자르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동행한 편집기자님이 답변과 질문 사이의 틈을 노련하게 마련해 주어 대화를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원고도 몇 차례 수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리고 '사랑이 살린다'는 괴테의 말처럼, 인간에 대한 연민과 편견 없는 시선을 키워가는 일이야말로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며, 좋은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 또한 그 위에 놓여 있음을 마음 깊이 새겨두었다.
[인터뷰 ② : 괴테학자의 통찰 "염치가 사라진 사회, 작은 일부터 바른 선택을 쌓는 게 중요"]
세 번째 인터뷰는 배우가 배우를 만나는 자리로 성사되었다. 계기는 디즈니+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에서 '복근이'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진욱 배우를 인터뷰해 달라는 SNS 속 팬의 열렬한 요청 덕분이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을 번쩍 들었다.
오랜 동료로서, 묵묵히 다져온 김진욱 배우의 길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전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편집기자님이 신스틸러처럼 등장해 미처 예상치 못한 한 마디를 건네주었다.
"제일 어려운 게 지인 인터뷰인데... 계속 힘든 걸 하시네요, 배우님."
몰라서 가능했다. 때론 모르는 것이 약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적인 질문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곱씹으며, 그의 삶을 지탱해온 생각들에 초점을 맞춰 질문지를 준비했다.
은유 작가의 <아무튼, 인터뷰>를 읽으며 인터뷰어로서 자세도 점검했다. 처음 사진작가를 섭외하고 사전 장소 답사와 촬영 콘셉트까지 논의하는 등, 차근차근 인터뷰의 틀을 갖춰나갔다. 고궁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단순한 수직적 관계를 넘어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로서 서로의 고뇌를 공감하며 대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끝까지 이 길을 포기하지 않게 해준 건 곁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저는 옆만 봐요. 위나 높은 곳은 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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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김진욱과의 인터뷰. |
| ⓒ 차유진 |
[인터뷰 ③ : '목포 유치장에서 데려온 복근이' 김진욱 배우를 만났습니다]
독백처럼 자유롭게 써내려가는 산문과는 달리, 인터뷰 글은 타인의 삶이 온전히 전해지도록 끝까지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서 송고 버튼을 누른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몰아친다. 마치 무대 위에서 소임을 다한 후, 막 뒤에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서툴지언정 계속 인터뷰에 도전하는 이유
'선 넘지 말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요즘,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시간을 청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나 같은 I형 인간이라면 입을 떼기까지 마음을 수차례 다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왜 인터뷰에 계속 도전하는가.
나는 스스로를 잘 키워내고 싶다. 그러려면 배움의 자양분이 필요하고, 그 공급원은 결국 사람에게서 온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의 의미를 성찰하기 위해, 두려움에 머무르지 않고 관계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싶다.
그래서 서툴지언정 또 기다린다. 내 삶을 한 뼘 더 성장하게 해 줄 소중한 인연을. 삶의 부침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희망의 숨을 불어 넣어줄 누군가를. 언젠가 '이 사람이다' 싶은 순간이 오면, 망설임은 용기로 바뀌고 조심스레 말을 건넬 것이다.
"저와 인터뷰해 주시겠어요?"
덧붙이는 글 | “배우로서 인터뷰어가 된 소감을 글로 써보는 건 어때요?” 고목의 은행나무 아래 자리한 서촌의 카페에서, 편집기자님이 툭 건넨 한 마디였다.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영감도 북돋워주고 늘 아낌없이 조언을 전해주는 나의 친애하는 ‘빌런’, 최은경 편집기자님께 깊은 감사와 무한한 애정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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