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바닷속에 묻힌 '흉기'... 이렇게 방치하는 게 말이 됩니까?
[진재중 기자]
"기자님, 기사 잘 봤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심각한 줄은 정말 몰랐어요."
<오마이뉴스>에 '동해안 바닷속 수백억 구조물의 정체'(https://omn.kr/2fz76)기사가 보도된 후, 강릉 남항진 해안가에 사는 한 주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산책하던 바다였는데, 그 아래에 그렇게 망가진 구조물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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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남항진 해변 잠제(수중방파제)가 설치된 지역을 촬영하기 위해 나가는 수중조사팀 |
| ⓒ 진재중 |
해변에는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2000년대 초반 마을이 심각한 침식 위기에 놓였던 일을 떠올리며 다시 찾아온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주민은 잠제(파도의 힘을 줄이기 위해 해안에 설치하는 수중 구조물)가 묻혀 있는 바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닷속 일은 우리가 알 수가 없잖아요. 공사를 한 업체든, 강릉시든, 정부든 점검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게 육지 공사였다면 이렇게 방치했겠어요?"
해변을 걷던 권석봉(80)씨 부부는 드론으로 촬영된 바닷속 영상을 바라보며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왜 이제서야 취재를 하느냐"며 아쉬움을 내비친 그는, 과거 해안침식으로 마을이 침수 위기에 처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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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제가 설치된 바다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남항진 해변의 한 부부. 침식이 반복되는 해변을 보며 이들은 “언제 다시 무너질지 걱정된다”며 깊은 불안을 토로했다. |
| ⓒ 진재중 |
남항진 바다는 겉보기에는 평온했다. 해안가에서 바라보면 비췻빛으로 반짝이는 잔잔한 파도가 이어졌지만, 그 아래 숨겨진 현실은 달랐다. 해변에서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바닷속에는 모래에 반쯤 묻힌 잠제의 잔해가 드러나 있었다.
"이건 위험하죠. 여름에 아이들이 물놀이 하러 들어오면, 저 부서진 콘크리트에 다칠 수도 있어요."
현장에 함께한 남항진 주민 김아무개씨(67)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바닷속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중 촬영을 진행했다. 드론으로 본 해안과 달리, 물속에서는 훨씬 더 심각한 훼손이 드러났다.
기울어진 구조물과 모래에 파묻힌 잔해들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잠제(수중방파제)는 갈라지거나 부서져 해저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바닥을 살피면 돌인지 인공 구조물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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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남항진 모래 속에 파묻힌 잠제와 이리저리 흩어진 바닷속 구조물. 설치 목적과 달리 해저에는 구조물 잔해만 남아 있다. |
| ⓒ 진재중 |
한때 조개와 해조류, 전복이 자리 잡았던 구조물 위에는 생명의 흔적 대신 하얗게 말라붙은 조개껍질만 남아 있었다.
그 표면은 마치 생명이 떠난 폐허처럼 차갑고 텅 비어 있었다. 근처를 지나던 작은 물고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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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남항진 반쯤 모래에 묻힌 잠제 구조물 위에는 조개껍질만 하얗게 붙어 있어, 바닷속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을 보여준다. |
| ⓒ 진재중 |
무너진 틈으로 모래가 빠져나가며 해저 지형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해양생물의 서식처로 설치된 철제 잠제 어초는 녹슬고 휘어져, 방치될 경우 날카로운 철조각이 사람과 생명 모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태였다. 이곳은 더 이상 서식처가 아니라 인간이 남긴 폐기물이 쌓인 '바다의 무덤'에 가까웠다.
수중 영상을 확인한 주민들은 심각한 현실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공사를 했다면 책임을 져야지요. 설치 후 문제가 생기면 보수를 하고, 한 번에 안 되면 반복해서라도 원래대로 해야 합니다. 바로 앞에 두고도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습니다."
한 주민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이런 실태를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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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남항진 수중방파제 해양생물을 보호하고 연안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철구조물이 부서지고 뾰족한 흉기로 돌변해있다. |
| ⓒ 진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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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근 조각이 드러나있는 잠제 |
| ⓒ 진재중 |
해안침식 전문가 김아무개박사는 잠제(수중방파제) 설치 과정의 구조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잠제는 해류의 흐름, 해저 지형, 계절별 파랑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계해야 하며, 설치 이후에도 정기적인 점검과 보수가 필수적입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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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남항진 제 자리를 잃고 이리저리 흩어져 바닷속 흉물로 전락한 잠제 |
| ⓒ 진재중 |
남항진의 바다는 겉보기에는 평화롭다. 파도는 잔잔히 밀려오고, 해안은 고요함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과 흩어진 철 구조물 그리고 오랫동안 방치된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주민의 전화는 단순한 감사 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바다를 지켜달라"는 절박한 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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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남항진 해변 주민들의 쉼터이면서 놀이터인 이곳이 어제 또다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
| ⓒ 진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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